당신은 길 위에 있나요, 도로 위에 있나요

길 위의 교육, 도로 위의 교육

등록 2005.01.14 22:33수정 2005.01.1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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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학교에 갑니다. 차가 없기도 하거니와 엎드려 코가 닿을 만한 곳에 학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빨리 걸으면 칠팔분,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십오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그 십오분은 말하자면, 집과 학교 사이에 놓인 길 위의 시간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눈에 띄는 것들이 있습니다. 길 모서리나 돌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풀꽃들. 그런 소박한 꽃조차 피울 수 없는 잡풀들도 많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그들도 잎새마다 빗방울을 하나씩 달고 서로서로 눈부셔 하고 있습니다. 흔한 광경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우산을 든 채 한참을 쪼그려 앉아 있다 보면 마음 속에 고여 오는 것이 있습니다.

비 온 뒤
세상 조촐한 것들이
잎새마다 빗방울 하나씩 달고
눈부셔 하고 있다

길 모서리, 혹은 돌 틈새에서 자란
세상 보잘 것 없는 것들이
흔하디흔한 빗방울 하나에
온 몸을 반짝이고 있다

혼자서는 쥐뿔도 빛날 게 없어
서로 서로 눈부셔 하고 있다.

- 시, '세상 조촐한 것들이' 전문


길과 도로의 차이점


제가 아는 교사 시인 중에 섬진강을 끼고 학교로 출근하는 분이 있습니다. 처음 발령을 받고 얼마 동안은 눈만 뜨면 매일 같이 섬진강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출근길에 만나는 푸른 섬진강과 강 주변의 아기자기한 풍경들로 인해 아침이 기다려지고 하루하루가 마냥 즐거웠습니다. 마치 출근을 하기 위해 직장 생활을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퇴근 시간이 기다려진 것도 물론 석양 무렵 지리산 자락을 품고 있는 섬진강 때문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자신의 기억 속에 섬진강이 지워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그림은 집을 떠날 때의 자신의 모습과 학교에 도착한 모습뿐이었습니다. 그 중간의 그림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한때는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가 되기도 했던 푸른 섬진강, 그 풍요로웠던 길 위의 시간들은 차츰 일상의 속도에 치어 지워지고 만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침마다 섬진강을 따라 달리고 있었지만 길이 아닌 도로를 달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이어주는 수단일 뿐인 도로의 효용은 도로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수단으로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길은 다릅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만나고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이나 짐을 신속하게 이동시켜주는 편리한 교통 수단만이 아닌, 길 자체로서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이태 전에 진주 모 여고 독서동아리 회원들이 순천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들과 대화할 자리가 마련되어 이곳에 올 때 국도로 왔는지 고속도로로 왔는지를 먼저 물어 보았습니다. 고속도로로 왔다고 했습니다. 오면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하자 모두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빨리 당도할 요량으로 서둘러 달려왔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길을 떠난 목적이 여행이었음에도 섬진강 물굽이를 따라 그림처럼 늘어진 아름다운 국도를 타지 않고 진주와 순천을 잇는 최단거리의 도로를 선택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저는 도로가 아닌 길을 통해 학교에 닿고 싶어 조금 일찍 집을 나서곤 합니다. 십분만 여유를 가져도 출근길은 산책길이 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길에서 만나는 들풀들에게 먼저 눈인사를 합니다. 흔한 풀들은 보통 아이들을 닮았습니다. 흔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화려한 꽃을 달지 않았다고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이 세상에 풀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이나 짐승이 있기나 할까요?

일등과는 거리가 멀고 빼어나게 예쁜 구석은 없어도 들풀을 닮아 순박한 아이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길일까 도로일까? 지금 우리 교육은 길 위에 있을까 도로 위에 있을까?

제가 만약 시험 성적만으로 아이들의 무게를 저울질하려 한다면, 학생들이 제에게서 삶의 지혜와 풍요로운 삶을 배우지 못하고 대학에 가기 위한 지식만을 얻고 간다면, 대학이라는 다음 행선지로 옮겨간 뒤에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릴 운명이라면, 저는 길이 아닌 도로의 교사임에 분명합니다.

고등학교 3년은 대학 입학을 위해 존재한다?

언젠가 한 시민단체의 초청으로 청소년인권상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가 그곳에 모인 고등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어느 교장 선생님이 인문고등학교의 목적은 대학 입학에 있다고 말하던데 그 말이 맞나요?"

아이들의 눈빛을 보아 하니 그 말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고등학교 3년이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합니까?"

그 질문에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 젓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길과 도로의 차이점을 말해 준 뒤에 이렇게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교직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돈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저에게 월급을 주지 않는다면 생활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돈 때문에 교직을 선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요? 저는 제자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학교에 갑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열심히 가르칩니다. 감사한 것은 제자들과 사랑한 것밖에는 한 일이 없는데 월급을 꼬박꼬박 준다는 것이지요.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재미있게 공부를 하고 책도 읽고 삶에 유용한 지식을 접하다 보면 자연히 실력이 쌓여서 좋은 대학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지식을 쌓는 것이 바로 입시 위주 교육인데 이것은 길 위의 교육이 아니라 도로 위의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입시만이 있고 여러분의 삶은 없는, 그리고 시험을 치르고 나면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그런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말입니다."

저는 오늘도 걸어서 학교에 갑니다. 겨울인데도 아직도 꽃망울을 머금고 있는 들꽃을 만나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합니다. 그 작은 생명들에게 한참 눈길을 주고 나면 아이들이 그립기 시작합니다. 소박한 들꽃의 웃음을 닮은 우리 아이들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지 <사과나무>에 기고한 글을 일부 고치고 보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지 <사과나무>에 기고한 글을 일부 고치고 보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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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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