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칭찬하면 할수록 무서워져요!

도서관 겨울독서교실 이야기(2)

등록 2005.01.25 11:09수정 2005.01.27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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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글을 쓰는 아이들

글을 쓰는 아이들 ⓒ 안준철

칭찬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칭찬하고, 부모가 자녀를 칭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런데 만약 자녀가 부모를 칭찬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녀에게 칭찬의 말을 들은 부모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번 도서관 겨울독서교실에서 그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부모님을 칭찬해 드리고 그때의 상황과 내용을 글로 쓰거나 만화로 그려 보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체험한 것을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내준 과제였습니다만, 그런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간에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먼저, 5학년 여자아이가 쓴 칭찬 성공담입니다.

부모님 칭찬하기!

저녁 식사 시간에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손으로 칼을 잡고 무를 썰고 계실 때 내가 "엄마, 손이 참 예쁘네요"라고 말을 했다. 그러니 엄마가 손을 보시며 "예쁘긴, 주름만 많은데"라고 말하셨다. 나는 그래도 왠지 즐거웠다.

드디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무 요리가 맛있어서 "엄마, 요리 잘 하시네요"라고 하니 빙그레 웃으시며 "엄마가 요리 잘 하지"라고 하셨다. 이제 아빠를 칭찬하겠고, 부모님을 많이 칭찬해 드려야겠다. 그런데 평소에 부모님이 칭찬을 하는데 내가 칭찬을 하려고 하니 좀 기분이 이상했는데 막상 칭찬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a 부모님 칭찬하기 만화 한 토막

부모님 칭찬하기 만화 한 토막 ⓒ 안준철

저도 이 글을 읽고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딸이 엄마에게 대단한 칭찬을 해드린 것도 아니고 엄마의 반응도 역시 별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고 나자 마치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방안으로 들어온 그런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꾸밈 없이 있는 그대로 쓴 글이라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써온 글과 만화에는 실패담도 많았습니다. 글을 쓴 아이의 심정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그 실패담이 더 웃기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두 남자아이가 쓴 실패담입니다. 하나는 짧고, 하나는 깁니다.


실패담, 하나

아빠와 함께 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 아빠는 라면 끓이는 솜씨가 좋아요.
아빠: 라면은 몸에 안 좋아.

어이가 없었다.

실패담, 둘

부모님 칭찬하기를 어떻게든 끝내려고 쓸만한 것을 찾아 보았다. 생각해 보니 가장 자연스럽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음식 칭찬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께는 "계란말이가 참 맛있어요"라고 했고, 어머니껜 "깍두기가 맛있어요"라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묵묵부답. 안되겠다 싶어 이젠 신발 끈 묶는 것을 가지고 칭찬을 하려고 했다.

내 계획은 이런 것이었다. 밖에 나갈 일이 생겼다. 그런데 신발 끈이 풀렸다. 그래서 아버지께 신발 끈을 묶어 달라고 한다. 그 다음엔 칭찬을 해드린다. 이런 패턴인데 밖에 나갈 일이 없었다. 그래서 또 실패. 한참을 고민하다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으로 하기로 하고, "아버지,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말하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맞춰 주지 않았다. 중1 예비수학을 하는 데 좀 많이 틀린 것이다. 해 보기도 전에 참담한 실패였다(……)


a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 책 표지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 책 표지 ⓒ 안준철

부모님 칭찬하기는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쓴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것입니다. 교직 경력 19년째인 김상복 선생님이 바로 그 주인공이지요. '나와 엄마아빠를 바꾼 몰래 쓴 칭찬일기'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책의 원래 제목은 <엄마, 힘들 땐 울어도 괜찮아>입니다. 이 책에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칭찬 성공담도 많지만 실패담도 그 재미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른바 NG 상황. 예컨대 이런 것들입니다.

NG 하나

아침 일찍 못 일어날 때마다 깨워 주시는 아빠

아빠: 어서 일어나라.
나: 아침 일찍 깨워 주시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빠: 앞으로는 더욱 더 일찍 깨워 주마.

우리 가족은 칭찬할수록 무서워져서 앞으로의 생활이 무지무지 걱정된다.

NG 둘

신발 끈을 못 매서 헤매는데 엄마가 대신 매주셨다.

나: 어떻게 그렇게 잘해? 난 안돼….
엄마: 병신이여? 이것도 못하게?
나:(속으로) 그려, 나 병신이여….


이번에 처음 해 본 부모님 칭찬하기에는 성공도 아니고 실패도 아닌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6학년 남자아이가 엄마 설거지하는 것을 도와드린 이야기인데, 아마도 처음에는 칭찬을 해드린다는 것이 그렇게 되었겠지요. 결과적으로는 말로 하는 칭찬보다도 더 아름다운 행동을 한 셈이지만 말입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제목: 쓱쓱싹싹 우리 엄마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엄마, 제가 도와드릴까요?" 그랬더니 엄마께서는 "그러면 고맙지…"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 옆에서 설거지를 도와드렸다. 스카치브라이트에 참 그린을 묻혀 그릇과 컵들을 쓱쓱싹싹 문지른 다음 물로 깨끗이 헹구었다. 그릇과 컵들을 깨끗이 헹군 다음 그릇 받침대에 올려 놓았다. 그릇과 컵들이 반짝반짝거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엄마와 함께 TV를 보았다. 조금은 힘들었지만 재미있고 보람이 느껴졌다. 앞으로 엄마를 자주 도와드려야겠다.


부모님 칭찬하기와 함께 시장 체험도 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때와는 달리 날씨가 너무 추워서 할 수 있을까 염려도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추운 날씨에 직접 매서운 추위를 맞보면서 글을 써 보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 추위에 떨면서 고생하시는 분들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저는 시장에 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어느 핸가 모 잡지사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물어서 통계를 냈는데 두번째로 많이 나온 것이 아기의 맑은 눈망울이었습니다. 그럼 첫째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미소였습니다. 순수하고 해맑은 아기의 눈망울도 아름답지만 아기를 키우며 마음 고생을 하신 엄마가 지어 보인 사랑의 미소가 더 아름답다고 사람들은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눈으로 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시장 체험을 통해서 이런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쓰는가? 새삼스럽게 이런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질 때가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글을 쓰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글쓰기를 통해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드러나 있는 화려한 아름다움보다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감추어진 진짜 아름다움 말입니다. 이번 시장 체험을 통해 그런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성싶은 아이들이 쓴 글입니다.

a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 안준철

시장 체험 하나

오늘 시립도서관 독서교실에서 중앙시장을 갔다. 바람이 매서운 이 추운 겨울에 할머니들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다. 시립도서관에서 중앙시장까지 막상 걸어가 보니 정말로 추웠다. 난 단지 몇 분을 걸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추운데 저기 앉아 계시는 할머니께서는 괜찮으실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할머니들 앞에 공짜로 도넛을 맛보는 코너가 있었다. 그땐 배가 무지 고팠는지 내 의무도 기억 못한 채 그곳으로 쌩하고 달려갔다. 그리고 도넛을 먹었다. 엄청나게 먹고 나서 다시 관찰을 시작했다. 할머니께서는 손님이 오셨을 땐, 빙긋이 웃으며 대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가만히 앉아서 돈을 세는 일을 하셨고, 주위를 둘러보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팔 것을 정리하시기도 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추운 곳에서 고생하시는 모습이 안되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우셨다. 갑자기 지난해 10월달 돌아가셨던 우리 외증조 할머니가 생각났다. 시장에서 콩을 팔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콩 할머니'. 우리 할머니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콩 사세요! 콩이요! 콩나물 사세요!"라고 외치시던 그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이젠 주어진 시간도 다 끝났다. 그땐 한시라도 더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한번 더 체험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중앙시장에서 계시는 할머니들께서는 우리 콩할머니처럼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아주 작디 작은 소망 하나가 생겼다.

a 이제 제대로 봐야지!

이제 제대로 봐야지! ⓒ 안준철

시장 체험, 둘

중앙시장에는 사람들로 법석거린다. 오토바이 소리, 발걸음 소리, 차 소리 등. 여러 가지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이 다니면서 말하는 이야기 소리도 들린다. 이른 아침에 나와 가게도 없이 바가지에 물건을 담아 파시는 할머니도 있다. 그 할머니는 가족을 위해 이 추운 겨울에 두터운 옷과 담요 하나로 추위를 이겨내신다. 그래도 물건 팔 때 손이 얼어 추우실 것 같다. 내가 만약 상인이라면 하루도 못 버티고 장사를 그만 둘 것이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날마다 나와 추위를 몰아내고 장사를 하신다. 또 손님들이 물건값을 깎아 달라고 하면 할머니들은 흥정을 하여 하나라도 더 팔려고 노력하신다. 날마다 이른 아침에 나와 늦은 야밤에 들어가는 할머니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나이도 많이 들어서 몸도 불편하실 텐데도 그 어려움을 참고 일하신다. 그러고 보면 가족에 대한 사랑인가 보다. 또 할머니들이 일하시니까 손도 까칠해 보이고 손에 주름살도 많이 잡혔다. 신발도 고무신을 신고 있어서 발도 무척 시려우실 것 같다.

사람들이 다니니까 먼지도 있고 오토바이와 차의 매연 냄새도 나고, 또 담배 피는 아저씨들이 담배 피는 담배 냄새도 일하면서 맡을 것 같은데… 그런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엄청 나쁠 것 같다. 나는 이른 아침에 나와 그런 냄새를 맡고도 소비자들에게 흥정하여 물건을 팔고 손발도 시려울 텐데 그런 것 다 견디고 일하시는 할머니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다음 주면 겨울독서교실이 끝납니다. 아이들은 부모님 칭찬하기나 시장체험과 같은 이런 인생 공부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식별하는 눈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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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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