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에 맛보는 가을정취

추월산의 추동

등록 2005.01.16 15:33수정 2005.01.1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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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추월의 넉넉한 후덕으로 벌 안의 들판은 늘 풍요롭다.

추월의 넉넉한 후덕으로 벌 안의 들판은 늘 풍요롭다. ⓒ 한석종


a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에 홀로 우뚝 서서 세찬 칼바람을 막아내고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에 홀로 우뚝 서서 세찬 칼바람을 막아내고 있다. ⓒ 한석종

대나무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담양읍내로 접어들면 내내 시야를 가로막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 신비스러운 산봉우리와 마주하게 된다. 마치 머리를 곱게 빗어 내리고 함초롬히 누워 있는 여인네 같기도 하고, 열반하기 직전 큰스님의 해탈한 모습 같기도 하다.

비록 높이는 해발 729m 밖에 지나지 않지만 기암괴석으로 성벽을 쌓듯이 둘러쳐져 있는 형상과 산에 얽힌 신비스러운 전설 때문일까? 이곳 남도사람들은 추월산을 영산으로 여기며 늘 우러러 보고 산다.


남쪽으로는 늘 풍요로운 평야요, 북쪽은 완만한 능선으로 이루어진 추월산은 노령산맥의 동분지맥인 밀재와 백암산 사이에서 주변 불갑산, 방장산, 금성산 등을 거느린 노령의 중추이다. 산 하부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로 노송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특히 노송 아래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진귀종들이 자생하고 있다.

산 중부는 활엽수가 원시림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서부터 상봉까지는 줄곧 가파른 급경사와 암벽 오르기로 몹시 힘든 코스가 기다리고 있지만, 최근에 완만한 우회 등산로를 개척해 놓아 보다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돕고 있다.

추월산 정상 가까이에 다다르면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바로 보리암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고려 때 보조국사가 나무로 매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중의 한 마리는 순천 송광사 터에, 또 한 마리는 장성 백양사 터에,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이 곳 보리암 터에 앉으므로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 한다.

보리암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부인 흥양 이씨가 전란 중에 왜군의 치욕을 피하려다 순절한 터가 보존되어 있으며, 그 후 부인의 순절을 기리는 비문이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져 전해 내려오고 있다.

추월산은 계절마다 그 모습이 각기 달라 오를 때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봄에는 진달래와 벚꽃이 만개하여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마치 꽃마차의 행렬을 보는 듯 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녹음이 먹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어 한기마저 느끼게 한다.


추월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계절 중에서도 추경이 백미 중에 백미로 꼽힌다. 정상에 올라 담양호를 내려보노라면 발아래 끝없이 펼쳐진 푸른 송림과 만산홍엽의 산 그림자가 호수에 잠겨 물빛이 온통 물감을 뿌려놓은 듯하다. 그 비경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단지 와서 벅찬 가슴으로 느껴볼 뿐!

겨울 눈 덮인 추월산은 분단장을 곱게 하고서 임을 기다리는 여심처럼 느껴져 이를 외면하고 돌아서는 이를 보지 못했다. 가파른 암벽을 오르다 무심코 뒤돌아보면 확 트인 담양호의 잔잔한 은결(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에 온갖 시름이 다 걷히고 마음속은 대나무의 마디마디 허심으로 가득 채워진다.


추월산에 오면 영산강의 시원인 가마골 용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용소는 마치 용이 승천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형상을 한 네 단계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굽이치는 물살이 암벽을 뚫지 못하고 부채살 모양을 펼치며 치솟았다가 떨어지는 마지막 폭포를 보노라면 폭포의 물살이 그려내는 동심원 속으로 뛰어들고픈 강한 충동을 느낀다.

a 꽃밭을 베게 삼고 함초롬히 누워있는 자태가 새색시처럼 곱기만 하다.

꽃밭을 베게 삼고 함초롬히 누워있는 자태가 새색시처럼 곱기만 하다. ⓒ 한석종


a 곱게 분단장을 하고서 오지 않을 임이라도 기다리는 것일까?

곱게 분단장을 하고서 오지 않을 임이라도 기다리는 것일까? ⓒ 한석종


a 담양벌을 환하게 비추는 은빛억새.

담양벌을 환하게 비추는 은빛억새. ⓒ 한석종


추월은
가슴을 넉넉히 열어

노령의 허다한 능선을 품고
섬처럼 흩어진 마을을 품고
사람 떠난 빈 들판을 품고

벌 안 사람
고향을 등진 사람
세상사람 모두를 품었다

오늘은 순백의 추월품에 안겨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구나!

-<추월을 보며> 한석종-



a 이보다 더 아름다운 생명의 빛깔을 보았는가! 끝없이 펼쳐진 담양벌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생명의 빛깔을 보았는가! 끝없이 펼쳐진 담양벌판 ⓒ 한석종


a 농부는 호수에 의지하며 농사를 짓고 호수는 추월의 품에 안겨 풍년을 약속한다.

농부는 호수에 의지하며 농사를 짓고 호수는 추월의 품에 안겨 풍년을 약속한다. ⓒ 한석종


a 만산홍엽의 산 그림자가 호수에 잠겨 온통 물빛을 벌겋게 물들여 놓았던 단풍.

만산홍엽의 산 그림자가 호수에 잠겨 온통 물빛을 벌겋게 물들여 놓았던 단풍. ⓒ 한석종


a 추월산 가는 길목에 늘어선 노송들이 남도 육자배기 가락에 한껏 흐드러지고 있다.

추월산 가는 길목에 늘어선 노송들이 남도 육자배기 가락에 한껏 흐드러지고 있다. ⓒ 한석종


a 가파른 암벽을 오르다 무심코 뒤돌아보면 확 트인 눈 맛에 온 시름이 다 걷힌다.

가파른 암벽을 오르다 무심코 뒤돌아보면 확 트인 눈 맛에 온 시름이 다 걷힌다.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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