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은 다 개고기 반대할거라고요?

외국작가 12인이 본 한국과 한국사람 'Korean-eyesed전'

등록 2005.01.17 13:19수정 2005.01.1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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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00개의 이미지' - 이본 보아그

'100개의 이미지' - 이본 보아그 ⓒ Y. Boag

"제가 프랑스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다들 제가 개고기에 반대할 거라고 생각하지요"

서울 인사동 관훈 갤러리에서 열리는 'Korean-eyesed: 주한 외국인 작가 12인의 시선' 전시회의 큐레이터인 벤자민 주아노씨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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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훈갤러리

개고기는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항상 등장하는 주제. 이는 한국인들 자신이 외국인에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을 궁금해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TV 미니시리즈 '로스트'에 등장하는 한국인 여성차별주의자로부터, 2002년 월드컵 당시 브리짓 바르도의 개고기 식용 반대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은 세계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매우 민감한 편이다.

한국을 방문하거나 체제하던 중 한국인의 예술세계에 영향을 받은 외국인 작가 12명의 작품 100여 점을 모아 전시하는 'Korean-eyesed'전은 한국인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감성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강의 기적'이나 개고기 식용 등 한국에 대한 일반적 편견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캐나다, 일본, 프랑스, 호주, 벨기에, 미국, 영국 등 다양한 국적과 한국에 체류했던 기간에 따라 그들이 말해주는 한국은, 일반적인 외국인 거주자들의 견해에 비해 특별하고 풍부한 색깔을 드러낸다.

주최 측은 한국 및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지닌 화가를 선정한 뒤 한국에 대한 그들의 즉흥적 작품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이미 완성한 작품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a '한국 남자' - 이본 보아그

'한국 남자' - 이본 보아그 ⓒ Y. Boag

그러나 주아노씨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다섯 명의 큐레이터들이 문화관광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을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만 전시하는 것 또한 옳바른 일은 아니다. 만약 한국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기 위해 이번 전시회를 찾는다면 실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들은 한국에 대한 긍정적 시각뿐 아니라 비판적 시각을 동시에 견지하고 있다.


주아노씨의 말이다.

"한국에서 이런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국가 정체성이란 한마디로 요약될 수 없기 때문이고 다양한 시각에 대해 의사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종종 국제화를 위협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프랑스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은 국제화로 인해 한국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국제화는 쌍방향의 과정이지요."

한국에 빠져든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집착하는 주제는...


옷에 쓰인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에 파고드는 영어의 영향, 또는 트렌디한 외국 화가의 작품을 선호하는 큐레이터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서구 문화의 영향은 극명하다. 한국의 시각 예술가들은 고전주의로부터 큐비즘에 이르기까지 서양 전통예술의 주류를 단시간 내에 소화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국에 빠져든 작가들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외국인의 시각에 민감한 한국인들이 정작 한국 문화가 외국의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우가 많다. 중의적 뜻을 지닌 이번 전시회 'Korean-eyesed'는 외국인 화가들이 경험한 미묘하고도 명백한 '한국으로부터의 영향'을 주제로 삼고 있다.

a '물고기형 모구' - 예심 센딜

'물고기형 모구' - 예심 센딜 ⓒ Y. Sendil

열두명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는 빛, 색감, 풍경, 질료 등이다. 한국의 독특한 전통 예술 형식에 더해, 외국인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한 한국의 미적 세계에 대한 작품들이 주종을 이룬다. 다양한 색감과 전통 민속 예술 및 길거리 문화의 강렬한 이미지, 현대와 조화를 이루는 한국 전통문화의 역동성은 외국인 작가들의 스타일과 작품 내용에 흡인력을 더한다.

한국에 4년째 거주하고 있는 예심 센딜은 18세기부터 초상에 쓰인 모구를 인사동에서 발견한 뒤 이에 매료되어 자신만의 모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전통 한지와 붓을 활용한 클레어 와스티어의 인물화(유화) 또한 한국의 영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현대 문화의 영향도 마찬가지로 극명히 나타난다. 클로드 라히르의 스케치북은 패션 일러스트와 같은 선들로 가득하지만 잉크로 우아하게 표현된 한 작품은 챙 넓은 썬 캡을 쓴, 한국에서 흔히 아줌마로 불리는 중년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

"현대 예술은 종종 전 세계에서 복제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라히르는 말한다. "저는 전통에 뿌리를 둔 현대 미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예술의 일방적인 복제품이 아닌, 양 쪽의 유전자를 모두 지니는 것들 말이죠."

한국 아버지들의 불안정한 위상을 주제로 하는 이본 보아그의 '아버지'라는 작품은, "과거 절대 권위자"의 지위에서 이제는 낡은 신문지의 뒤 배경으로 쇠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a 끌로드 라히르의 스케치

끌로드 라히르의 스케치 ⓒ C. Rahir

엘로디 도르난드 드 루빌의 거대한 벽화 '서울 파노라마'에는 현대식 건물에서부터 대중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시민의 모습 등 일상 생활의 소소한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서울에서 머문 8개월 동안 도르난드는 언어로는 이해 불가능한 것을 시각적 도구를 통해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주변을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글조차 그녀에게 완전히 낯선 기호였다. "이번 작품의 크기가 전례 없이 커진 것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내가 느낀 혼란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애증의 감정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게 됐다"

"뭔가 '근질근질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창의성이 발휘됩니다. 마음을 열고,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새로운 것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애증의 감정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아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외국인들은 다 그렇지 않을까요?" 화가 와스티어의 말이다.

한국인이 외국인의 견해에 호기심이 많은 만큼, 이들 외국 화가들이 포착한 기이한 디테일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될 것이다. 일반인들이 한국을 회색 빛으로 생각하는 반면에 어떤 화가는 한국을 바라보며 매우 다채로운 색깔을 발견할 것이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Korean-eyesed' 전에 참가하는 카렌 프리그는 도시 환경의 풍경이나 산지와 함께 자리잡은 아파트 단지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a '아시아띠끄' - 끌레어 와스티어

'아시아띠끄' - 끌레어 와스티어 ⓒ C.Wastiaux

"습관이란 무서운 거예요," 주아노는 말한다. "항상 동일한 사물을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죠. 예술가는 갓 태어난 아이와 같아서, 마치 사진을 찍듯 이런 풍경이 머리 속에 각인될 수 있습니다."

광고의 세계에서 정치 같은 무거운 주제에 이르기까지 북한에 대한 작품을 만드는 그래픽 디자이너 조나단 반브룩은 외국인으로써 상투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과연 쉬울지 우려한다. 그러나, 'Korean-eyesed' 전시회의 작가들은 한국에 대한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놀랍고도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금을 모금하는 것이 힘든 일이었지만, 큐레이터들은 이번 전시회가 성공할 경우 재외 한국인 예술가들과 사진, 비디오 및 멀티미디어 등 이미지 중심의 작품을 추가해 두 개의 전시회로 확대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Korean-eyesed' 전시회는 인사동 관훈 갤러리에서 1월 12일부터 1월 25일까지 개최된다. 전시는 매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고 관람료는 무료다. 문의는 02-733-6469.

덧붙이는 글 | *애니 고 기자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비영리 '아시아 태평양 재단'에서 일했으며, 2002년에는 아시아인의 소식과 문화기사를 위주로 한 '하이픈 매거진'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중이다.

덧붙이는 글 *애니 고 기자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을 졸업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비영리 '아시아 태평양 재단'에서 일했으며, 2002년에는 아시아인의 소식과 문화기사를 위주로 한 '하이픈 매거진'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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