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국, 미운 사위에게 끓여 주제"

자흥 회진 장산마을2

등록 2005.01.17 14:28수정 2005.01.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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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찾아간 필자에게 김씨 부부가 내온 것은 점심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회진에서 들어오는 길에 점심 먹을 곳을 찾고 있었다. 광주에서 새벽 같이 출발한 탓에 벌써 뱃속에선 밥 달라는 소리로 요란하다.


동치미, 김치, 파래 무침, 김, 장, 돼지볶음, 고등어무조림. 시장기가 아니더라도 군침이 돌지 않는가. 밥도 고봉밥이라던가, 고등학교 시절 늘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가 고봉밥에 시래기국을 끊여서 아랫목에 묻어 뒀다 주셨다. 밥상을 받고 갑작스레 할머니 생각이 났다.

a 장산리에서 밥상을 받았다.

장산리에서 밥상을 받았다. ⓒ 김준

추석살에 시작해서 설 무렵에 훑어 분다

점심을 마치고 신씨 부인은 아들과 함께 매생이를 뜯기 위해 장산리 마을 어장 갯벌로 나갔다. 노력도와 덕도를 연결하는 연륙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곳 아래 옴팍진 곳이 매생이 양식장이다. 선착장과 산으로 쌓여 물길이 잔잔하고 깊지 않아 양식장으로 제격이다.

미역발은 3년에 한 번씩 제비를 뽑지만 매생이발은 주민들 중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같은 바다라도 미역이 잘 되는 바닥과 잘 되지 않는 바닥이 있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제비(추첨)을 뽑아서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비를 뽑아서 양식장을 결정하는 것은 서남해역 해조류 양식을 하는 마을의 일반적인 의사 결정 방식이다.

매생이 발은 10개 발을 지주에 묶어서 '한때'라고 부르는데, 3m 길이의 대나무를 쪼개어 60개를 엮은 것이 '발' 하나다. 발과 발 사이에 대나무나 나무로 지주를 세운다. 3m의 매생이발을 가운데를 넓게 하고 양쪽 끝은 짧게 해서 지주에 고정시킨다. 가운데를 '날새'라고 하고 양쪽 끝은 '고타리'라고 하는데 날새는 길게 하고 고타리는 짧게 해서 매생이 발이 처지지 않도록 묶는 것이다. 때로는 발이 처지지 않도록 대나무 밑 부분만을 쪼개서 사용하기도 한다.


a 매생이 뜯기

매생이 뜯기 ⓒ 김준

a 매생이 뜯기

매생이 뜯기 ⓒ 김준

"매산이 발 가운데는 날새라고, 가에는 고따리라고 한디. 새는 길게 하고 고따리는 '잘룹게' 하고. 그래야 고타리가 덜 처지제."

돌이나 뻘에 매생이가 보이는 갯가는 일단 매생이 양식이 가능하다. 이런 곳에 매생이 발을 만들어 4겹으로 겹쳐서 포자를 붙인 다음 육안으로 포자가 확인되면 좀 깊은 곳으로 내린다. 매생이 포자를 붙이는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상강(10월 23일경)을 전후한 시기가 적절하다.


김씨의 경우 금년에는 크리스마스부터 매생이를 뜯기 시작했다. 상강을 10월 하순으로 계산한다면 한 달 보름, 혹은 두 달만에 뜯기 시작하는 셈이다. 이렇게 시작한 매생이 작업은 보통 3월까지 이어지지만 장신리처럼 미역 양식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설을 전후해서 마무리 짓는다.

매생이발이 끝날 무렵이면 매생이들이 밤색으로 변한다. 이를 '늦대기'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남아 있는 것조차 모두 훑어 버린다. 마치 마지막 고추를 훑어내듯이. 이렇게 하고 나면 매생이 발을 걷어서 깨끗이 세척해서 말려서 보관해 둔다.

매생이는 3월 무렵이면 짝짓기를 마친 후 발아해 포자 상태로 패각이나 뻘 속에 휴면 상태로 여름을 지낸다. 그리고 수온이 내려가는 11월 무렵 활동을 시작한다.

"상강을 삼일 남겨 놓고 추분살에 막고, 인자 삼강이 넘으면 잡태가 덜한다고 해서. 삼강 있고 얼마 안돼 막은 사람들은 씨는 잘 붙는디 크지는 않아. 우리가 경험한 것으로 보니까 삼강 지나면 씨는 잘 올라온디 안 커불드라고. 이녁 짐작으로 헌디 해우나 파래도 섞여 있어요. 노출에 잡태 죽일려고 해도 파래는 죽는디 해우는 안 죽어. 말려 가지고 다시 막아도 파래는 하나도 없이 죽는디 해우는 안 죽습디다. 그래도 그대로 팔아야제, 2천원에라도. 뜯을 때는 미끼런께 덜 뜯어진 게 때가 있어, 고놈이 다시 자라기도 하제. 그만할 때가 되면 매생이가 밤색으로 변해, 늦대기라고. 밤색 모양으로 못 묵을 것이 되어 부러, 이것이 죽을 때가 되분가 부다 하고 훝어 버리제."

매생이 양식장에는 벌써 몇 사람이 나와서 작업중이다. 물이 많이 빠지지 않아 갓배를 타고 작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질 급한 사람들은 긴 장화를 싣고 들어가 매생이 발을 들어 올려 매생이를 뜯고 있다. 30여분이 지나자 매생이 발이 모습을 드러내고, 검푸른 매생이들이 속살을 드러냈다.

a 매생이 세척하기

매생이 세척하기 ⓒ 김준

a 파래를 추리는 신봉녀씨

파래를 추리는 신봉녀씨 ⓒ 김준

신씨를 비롯한 장신리 어민들은 매생이가 붙은 대나무 발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 죽 훑어 플라스틱 그릇에 담았다. 그릇에 가득 차면 뭍으로 가져다 놓고 작업을 반복한다. 신씨의 경우 10때의 매생이 발을 아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데 8일 정도 걸린다. 물때에 따라 작업 시간이 다르지만 보통 1시간 남짓 작업하면, 채취한 매생이를 갯물에 세척하는 데 30여분이 걸린다. 그리고 나면 집으로 가져가 해우(김), 파래, 진지리(잘피껍질) 등을 추려내야 한다. 파래나 해우가 많이 들어 있는 경우는 그냥 재기를 만들어 파는데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요즘 매생이는 한 재기에 3500원 혹은 3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10줄을 하는 김씨 부부의 경우 초기에는 한 번 뜯는데 30재기를 뜯었지만 최근 세사리(3일)에 150재기를 수확하기도 했다. 조금(조수가 가장 낮은 때인 음력 매달 초여드레와 스무사흘) 때보다는 사리(음력 매달 보름날과 그믐날에 조수가 가장 높이 들어오는 때)에 작업하기가 더 좋다.

a 재기를 만드는 모습

재기를 만드는 모습 ⓒ 김준

미운 사위놈 매생이국이라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면 바다 냄새와 갯냄새가 입 안에 가득하다. 매생이국에서 유일하게 씹히는 굴. 매생이 향이 굴의 비릿한 맛을 삼키고 통통한 굴이 입 안에서 톡 터진다. 매생이 국은 예쁘게 먹어서는 안된다. 부드럽게 때문에 한 수저를 뜨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때 얼른 머리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어 코를 박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한다. 소리를 크게 낼수록 매생이는 덜 흘러 내린다.

자흥(장흥 사람들은 '자흥'이라고 고집한다)에서 돌아온 필자가 잘 가는 식당에서 매생이국을 찾았다. 요즘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 먹는다는 말을 자주 생각한다. 갯벌과 바다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주는 온갖 먹을거리의 맛이 새롭다.

a 매생이 국

매생이 국 ⓒ 김준

a 매생이 국

매생이 국 ⓒ 김준

매생이가 남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술국 때문이다. 늦게까지 들이킨 술에 속이 쓰릴 때 겨울에 대표적인 갯것 '석화'와 매생이를 넣어서 끊인 '매생이국'은 꾼들에게 최고의 해장이었다.

다른 국과 달리 매생이 국은 펄펄 끊여도 김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국을 끊여 상에 올려 놓으면 김이 나지 않아 한 수저 입에 넣었다간 입 천장을 데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밉다고 사위 입 천장을 데게 할 장모가 있겠는가.

매생이가 나는 곳은 대부분 김양식이 활발했던 곳이다. 지금이야 기계로 김을 채취하여 위판하여 공장에 넘기면 그만이지만 옛날에는 저녁 내내 손으로 김을 떠서 건장(한지를 뜨듯이 김을 얇게 뜬 김을 말리기 위해)에 꼬챙이로 꽂아서 말려야 했다.

김발을 하는 철이면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할 정도로 일손이 필요했다. 그래서 김을 많이 했던 남도의 갯마을은 겨울철에 너나 할 것 없이 걸어만 다니면 낮에 김을 채취하고 밤에는 김을 떠서 새벽에는 김발을 널어야 했다. 이런 탓에 김 양식 일이 힘들어 시집간 딸자식이 편히 살아 주기를 비는 부모의 마음을 나타내는 말 중에 '해태(김)고장 딸 시집 보내는 심정'이라는 말이 있다.

갯살림은 대부분 여성들이 담당해 왔다. 뿐만 아니라 갯벌이 성한 마을은 논보다는 밭이 많아 밭일도 여성들이 맡는 편이다. 그래서 갯마을의 여자들은 갯살림, 안살림, 밭일 등 이중 삼중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이러고 보면 도회지로 시집 보낸 딸이 사위에게 푸대접이라도 받는다면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아마도 '미운 사위놈 매생이국'이 그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불쑥 찾아간 기자에게 점심에 매생이 선물까지 주신 김춘식, 신봉녀 어르신, 그리고 두 분의 아들 김인천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경기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김인천님의 소개로 쓸 수 있었습니다. 바다와 갯벌에 기대어 살아가는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의 소재를 알려주시면 더욱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불쑥 찾아간 기자에게 점심에 매생이 선물까지 주신 김춘식, 신봉녀 어르신, 그리고 두 분의 아들 김인천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경기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김인천님의 소개로 쓸 수 있었습니다. 바다와 갯벌에 기대어 살아가는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의 소재를 알려주시면 더욱 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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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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