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10

장판수

등록 2005.01.17 17:01수정 2005.01.1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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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라니? 스승이 이런 일을 시켰더냐?”

홍명구의 말에 장판수는 조금은 격해진 감정에 말을 술술 늘어 놓았다.


“시키는 일을 하면 도성을 지키는 갑사 취재에 응하게 해주겠다고 했습네다.”
“그래서 사람을 해하려 했다는 것인가?”

윤계남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타박하자 그제야 장판수는 고개를 떨어트리며 그간 지내왔던 일들을 얘기했다. 홍명구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평양에 가끔 왕래한 적이 있으나 이진걸이라는 자는 알지 못한다. 더욱이 안첨지라는 자도 괴이쩍구나. 내 지금껏 남에게 원한을 산 일이 없거늘 이상한 일이구나.”

장판수는 마음속으로 곰곰이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이진걸이 시킨 대로만 한다면 갑사가 되리란 생각을 했지만 눈앞에 있는 홍명구의 풍모를 보니 함부로 해할 인물은 아닌 듯싶었다. 홍명구는 문관이었지만 무예에 관심이 깊었고 때로는 각지의 역량 있는 젊은이를 한양으로 데려와 무과 취재나 갑사 취재를 보게끔 했다. 이날도 갑사 취재을 보러 용인에서 온 윤계남에게 취재를 볼 때 주의할 점에 대해 알려주고 있던 참이었다. 홍명구가 이렇듯 신경을 쓰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한양에서 힘깨나 쓴다는 무뢰배들이 다른 곳에서 취재를 보러온 사람 중 실력이 출중한 자들을 구타하고 불구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 최근 들어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을 홍명구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번 일은 모르고 한 일이니 그만 가 보거라.”


“어르신! 저런 놈을 그냥 놓아 보내주다니요? 적어도 그 일을 시킨 놈들이라도 찾아내 혼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계남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홍명구는 더 이상의 말을 아낀 채 방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장판수는 땅바닥에 엎드린 채 홍명구에게 소리쳤다.


“어르신! 어르신을 몰라 본 죄를 용서하시어 황송하기 그지없습네다! 염치 불구한 부탁입네다만 내일 갑사 취재에 응할 방도를 가르쳐 주었으면 하옵네다!”

윤계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었고 홍명구는 잠깐 동안 아무 말 없이 식은 차로 목을 축였다. 장판수가 이대로 일에 실패한 채 돌아간다면 이진걸이 이를 탓하며 갑사 취재에 응할 방도를 찾아줄 것 같지 않았기에 그는 더욱 매달렸다.

“자넨 안 되네. 평양감영으로 가서 갑사 시험을 보게나. 양계(평안도, 함경도) 갑사를 따로 뽑기도 하는데 왜 이곳까지 와서 그러는가?”

장판수의 애원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자 홍진구가 한마디를 해 주었지만 장판수는 막무가내였다. 보다 못한 윤계남이 낮은 목소리로 홍진구에게 말했다.

“까짓 거 큰 잘못도 한번 용서해 주셨으니 어떻게 되던 간에 방도나 알려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보아 하니 힘과 칼솜씨는 제법 뛰어난 듯 하더이다.”

하지만 홍명구가 장판수를 돌려 보내려 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평안도 출신을 무시하는 풍토에서 장판수가 웬만한 실력으로는 한양의 갑사 취재에서 무시당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행여 그런 일로 인해 젊은 그가 혹시나 마음에 상처라도 받을까 해서였다.

“글은 아느냐? 녹명은 준비가 되었느냐?”

장판수는 홍명구의 말이 반 허락이나 다름없이 들려 된 화색이 돌았지만 녹명이 뭘 뜻하는지도 모르겠거니와 글을 어느 정도까지 알아야 하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글은 겨우 읽을 정도입니다.”

“녹명이란 취재 전에 조상의 이름과 관직을 제출하는 걸세. 괜찮다면 내가 먹을 갈아 적어 줄 테니 자네가 옮겨 적게나. 갑사야 글은 읽을 정도만 되어도 상관없으니 말일세.”

뜻밖에도 윤계남이 장판수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윤계남 역시 달리 기댈 곳이 없는 마당에 홍명구의 도움을 받아 한양까지 오게 된 터라 장판수의 사정에 조금씩 공감이 가던 터였다. 장판수가 고마움을 표하며 그 자리에 어울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윤계남과는 서로 동갑이라, 서로 진검으로 치고 박던 일은 재미있는 담소거리가 되며 자연 친해지게 되었다. 홍명구는 착잡한 얼굴로 주막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내가 그대들을 눈여겨 보라고 말은 해 놓을 것이나 요행은 바라지 말게나. 실력으로만 본다면 둘 다 갑사가 될 만하나 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이 문제일세. 한양에서 응시하는 자들은 복색이나 무기가 자네들보다 훨씬 현란할 것이나 그에 위축될 필요는 없네. 그들보다 더욱 뛰어난 기량을 보여야만 갑사 취재에 입격될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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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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