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큰 사나이가 쓴 여행기

이종원의 <한국의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

등록 2005.01.18 23:44수정 2005.01.19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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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 표지
<한국의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 표지가림출판사
간 큰 사나이가 쓴 여행기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남매를 둔 가장이 10년을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둔 사람은 시쳇말로 좀 어떻게 된 친구다.


그보다 20년이나 연상인 필자도 지난해 내 자의로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두고 강원도 산골로 내려올 때 언저리 사람들로부터 무척 모난 사람 취급을 당했는데, 아마도 그는 나보다 몇 배나 별난 사람으로 여겨졌으리라.

하긴 그렇다. 예술은 미치지 않고서는 미칠 수 없다. 뮤즈(Muse)는 아무에게나 미소를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예를 위해 자기 귀도 자른 이도 딸의 눈을 장님으로 만든 몹쓸 아비도 있다.

"저를 놓아 주십시오. 제가 가야 할 길을 꼭 걸어야겠습니다."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꼭 걸어야 할 길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길은 내게 숙명이었는지 모릅니다. 꿈을 접은 채 평생 샐러리맨으로 살아갔다면 언젠가 후회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들지만 가시밭길을 선택했습니다. 오늘날까지 결코 후회 없이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자기를 아끼는 직장 상사나 동료들이 부여잡는 손길도 끝내 뿌리치고 ‘나의 길’을 택했다. 회사에서 얼마간 받은 퇴직금도 보증을 잘못 서서 대부분 날렸고 수중에 남은 140만원조차도 여섯 살 난 딸 정수와 전국 유람을 하면서 ‘제로’로 만든 뒤 본격적으로 역마 길에 나섰다니, 이혼당하지 않고 여태 가정을 꾸려가는 게 신기하다. 그는 정말 ‘간 큰 남자’요, ‘사나이 중에 사나이’다.


부채살처럼 퍼져 황홀한 물줄기를 보여주고 있는 방태산 이단 폭포
부채살처럼 퍼져 황홀한 물줄기를 보여주고 있는 방태산 이단 폭포이종원
나는 그를 <오마이뉴스> 기자클럽에서 만났다. 그는 마치 나를 교실에서 배운 제자처럼 따랐고, 나도 그를 교실이나 운동장에서 무척 쓰다듬어 준 제자처럼 여겼다. 그의 글과 사진 솜씨는 일찍 온라인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제의했다. 선생님을 모시고 역사의 현장을 답사하면서 자기는 사진을 찍고, 나는 글을 쓰면 '환상의 콤비'가 될 것이라고…. 그것은 그와 나만의 생각인지라 우리는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책도 내 책도 모두 다 잘 나가서 출판사 대표들이 선인세로 여비를 찔러주면서, 우리 두 사람에게 어서 떠나라고 다그칠 그 날을 기대해 본다.


두물머리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이 황포돗배를 바라보고 있다
두물머리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이 황포돗배를 바라보고 있다이종원
우리나라 산하처럼 아름다운 나라는 없다

한 달 전, 그가 메일로 원고를 보내면서 책 뒤표지에 들어갈 말을 부탁했다. 나는 그의 원고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를 다시 읽은 뒤 다음과 같이 써 주었다.

“이종원씨는 역마살을 타고난 여행 작가다. 그는 머리로 여행기를 쓰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쓴다.

그는 여행지 곳곳을 발로 샅샅이 뒤지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면서 사진을 찍고, 혀로 여행지의 음식을 맛보며 그곳의 바람까지 피부로 느끼며 냄새까지 맡은 뒤에야 글로 엮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여행기를 좋아한다. 그의 살뜰한 안내를 받으며 함께 여행하고 싶다.”


진짜 여행꾼들은 예사사람들이 놓치는 비경(秘境)을 찾아낸다. 이종원의 <한국의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에서는 지금까지 여행가들이 빠트린 이름나지 않은 곳을 찾아서 우리에게 살뜰히 소개하고 있다.

서울 근교의 조무락 계곡에서부터 두물머리, 갈론 계곡, 마량포구, 회룡포,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등 전국의 산간오지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그 가운데 ‘두물머리에 가면 사랑에 빠진다’의 <두물머리>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담양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꼭지에서 몇 문장 뽑아본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두물머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것을 한자말로 표현하면 ‘양수리(兩水里)’라는 멋없는 이름이 나온다.

두 물이 만나서인지 강폭이 아주 넓고 수량이 또한 풍부하다. 보기만 해도 넉넉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해질 무렵이면 강은 금빛 물결이 되어 도도히 흘러간다. 황금노을을 맞으며 그물을 건지러 가는 노부부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다.”

환상의 길,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환상의 길,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이종원
“ 내가 담양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순전히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나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무성한 가로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치 건장한 군인들이 칼을 곤두세우고 도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비경을 찾아 무아경에 빠진 길잡이 이종원
비경을 찾아 무아경에 빠진 길잡이 이종원이종원
누가 나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길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곳이라고 감히 말할 것이다.”


그가 보내준 뜨끈뜨끈한 책을 펼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 산다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정말 우리나라 산하처럼 아름다운 나라는 없다.

벌써 그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그는 어떤 솜씨로 숨겨진 무릉도원을 찾아서 우리에게 선보일까?

간 큰 남자, 이종원 - 나는 그가 좋다. 아마도 나만 그런 게 아닐 테다.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역마꾼이다.

덧붙이는 글 | 책이름 : <한국의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 
지은이 : 이종원 
펴낸 곳 : 가림출판사 
값 : 9900원

덧붙이는 글 책이름 : <한국의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 
지은이 : 이종원 
펴낸 곳 : 가림출판사 
값 : 9900원

한국의 숨어 있는 아름다운 풍경

이종원 지음,
가림M&B(가림출판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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