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마을이야, 동물원이야?

외래종 투성이인 민속마을 조류학습장

등록 2005.01.20 21:15수정 2005.01.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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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의 끝자락, 서문 쪽에 가면 '빈기등'이란 언덕 아래 조류학습장이 있다. 읍성내에서 이토록 넓게 자리하고 있는 단일장소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넓은 곳이다.

마당엔 목화를 심었고 네 동으로 된 철망 안에 약 20여 마리의 새와 10여마리의 토끼가 들어있다.


a 조류학습장임을 알리는 안내판

조류학습장임을 알리는 안내판 ⓒ 서정일

방문하는 이가 어린 학생들이 많음을 감안해 우리 동물, 우리 새를 알리자는 좋은 취지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해 반갑기 그지 없다. 더구나 이름도 '학습장'이기에 아이들에게 꼭 한번 가 보도록 권해주고 싶은 장소기도 했다.

하지만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가축이라면 소·돼지·염소·개·토끼 그리고 새라고 하면 참새·꿩·오리·닭 등 우리 조상들 곁에서 늘 함께 했던 살가운 것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다.

a 원산지 폴란드의 백꿩 안내판

원산지 폴란드의 백꿩 안내판 ⓒ 서정일

가장 보존이 잘 되고 자연스럽게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의 민속마을에 원산지가 폴란드며 영국의 꿩을 변이시킨 새를 전시한다는 건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 하나면 눈 질끈 감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육장안에 있는 동물이 대부분 생소한 것들이다. 중국 남서부와 티베트에 산다는 은계에서부터 심지어 아프리카산 호로조까지 도대체 이곳이 민속마을인가 아니면 일반 동물원인가 분간할 수가 없는 혼란스러움에 빠진다.

a 조류학습장은 단일장소로는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조류학습장은 단일장소로는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 서정일

"실망입니다. 차라리 토속 동물이나 새가 있었다면 정겹기라도 할텐데…. 동물원이라면 다양한 종이라도 가져다 놓든지…."


부산에서 왔다는 한 관광객은 몹시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더 돌아보지도 않고 휑하게 나가버린다. 뒤따라오던 단체 관광객들도 실망스럽다는 표정은 마찬가지.

낯 부끄러운 일이다. 평소 관리사무소에서 "토속적인 민예품만을 취급해서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공예품을 보여주자, 전통의복인 한복이나 개량복을 입고 관광객을 맞이해 보자, 국적불명의 트로트 음악 대신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틀어보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국적불명의 새로 채워진 조류학습장, 계속 이렇게 운영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동물로 교체하거나 다른 방향의 학습장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곳을 방문한 많은 관광객들이 매번 지어내는 실망한 표정을 확인하는 것도 지역민에겐 곤혹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함께 만들어가는 낙안읍성 연재
http://blog.naver.com/penfriends

덧붙이는 글 함께 만들어가는 낙안읍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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