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24회(4부 : 캠퍼스 연가 1)

-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1.24 22:42수정 2005.01.2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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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다음 차례는 영희였으나 못한다고 하여 엉덩이로 이름을 쓰는 벌칙을 받았다. 다음은 노진의 차례.


"전대통령 부부가 부정 축재한 이유, 전두환 대통령은 벗겨진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 올리며 '뭐, 시원한 것 없을까?' 해서이고, 부인 이순자씨는 주걱턱을 쓸 으며 '뭐, 뾰족한 일 없을까?'를 늘 궁리했기 때문이래."

웃음을 유발하기에는 부족했지만 대신 시사성과 풍자성을 높이 사서 통과되었다.

우리는 얘기가 시들해지자 이번에는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내가 기타 반주를 맡았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처음에는 분위기 있는 노래 몇 곡을 함께 불렀으나, 재미를 위해 아까처럼 한 명씩 돌아가며 독창을 하기로 하였다. 초희는 이상화의 시에 곡을 붙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구성지게 소화해냈고, 나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로 한층 진지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한철의 노래로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연애타령'으로 녀석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자리였다.


국문과생 연애는 김소월식 연애로 붙기만 붙으면 이별 눈물나더라 에헤야 가다 못 가면 데헤야 쉬었다 가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영문과생 연애는 콩글리쉬 연애로 붙기만 붙으면 키스 소리 나더라
에헤야 가다 못 가면 데헤야 쉬었다 가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수학과생 연애는 삼각함수 연애로 붙기만 붙으면 삼각관계 되더라
에헤야 가다 못 가면 데헤야 쉬었다 가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음대생 연애는 쏘프라노 연애로 붙기만 붙으면 신음 소리 나더라
에헤야 가다 못 가면 데헤야 쉬었다 가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법대생 연애는 육법전서 연애로 붙기만 붙으면 이혼 소송 나더라
에헤야 가다 못 가면 데헤야 쉬었다 가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의대생 연애는 산부인과 연애로 붙기만 붙으면 낙태 수술 하더라
에헤야 가다 못 가면 데헤야 쉬었다 가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약대생 연애는 가루지기 연애로 붙기만 붙으면 피임약을 찾더라
에헤야 가다 못 가면 데헤야 쉬었다 가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가정대생 연애는 유아교육연애로 붙기만 붙으면 애기 울음 나더라
에헤야 가다 못 가면 데헤야 쉬었다 가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사범대생 연애는 교육개론 연애로 붙기만 붙으면 가르칠 게 없더라
에헤야 가다 못 가면 데헤야 쉬었다 가지 호박같이 둥근 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녀석의 노래는 말리지 않으면 끝이 없었다.

10월 초에는 우리학과 축제인 학림제가 있었다. 나는 시분과에 소속되어 시화전 준비에 열을 올렸다. 문과대 앞 솔밭이 전시장이었는데, 내 작품도 두 개 걸었다. 하나는 초희에게 바치는 시였고, 다른 하나는 시사성이 강한 작품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저항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담당 지도교수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을 순수한 작품이라고 우겨 겨우 전시할 수 있었다. 배경 그림은 진경의 도움을 받아 작품과 어울리게 그려 넣었다.


아가(雅歌) 3

그대는
나의 이브, 나의 사라
나의 리브가, 나의 라헬
나의 룻, 나의 에스더
나의 술람미, 나의 순결하고 성스러운 마리아!

MY DALRING, MY LOVER
SWEET HEART, BEST GIRL
오 나의 영원한 줄리엣!

나의 태양, 나의 하늘
나의 달님, 나의 별님
오 나의 백설 같은 천사여!

나의 여인, 나의 새악시
나의 소녀, 나의 숙녀, 나의 처녀
나의 공주, 나의 왕비, 나의 왕후
오 나의 사랑 그 전부여!

나 아닌 나, 또 다른 나
나의 돕는 배필, 내 인생의 동반자
나의 사랑스런 파트너, 함께 동행할 반려자

아, 내가 만세 전에 잃어버린 갈비뼈!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로다

나의 오늘, 나의 내일
나의 시간, 나의 영원
나의 꿈, 나의 소망
아, 언제까지나 푸르른 나의 VISION이여!


나 목(裸 木)

한 마장의 삭풍(朔風)이 한기 섞인 눈길로 번져 오자
나무는
금강석의 아름빛 의상을
한 잎 아깝다는 기색도 없이
나풀나풀 벗어 내리고 있다
마지막 속잎마저도 홀랑

이한치한(以寒治寒)? 힘없음의 능력(能力)?
혹은 무저항의 저항(抵抗)! 비폭력의 폭력(暴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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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없는 동(冬)장군의 목조름과 소리 먹은 총탄, 그 추상(秋霜)에 맞서
눈 하나 꿈쩍 않고 알몸뚱이를 무기로
국향(菊香) 내뿜으며 상록(常綠)의 한솔로 거듭나고 있는 裸木

첨단을 자랑하는 최신형 냉동고의 가시 돋힌 성에도
태양을 껍질 째 들어 삼킨다는 눈보라도
북극곰과 열대산 독사까지도 순식간에 잠재운다는 최면(催眠)의 한풍(寒風)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아니,
앙상한 뼈로 옷 입은 벌거숭이를 맞수로
월계관을 오뚝이처럼 곧추세울 수는 없다

맨손으로 겨울의 심장을 꿰뚫는 저 비수
그 무서운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시베리아 본적의 天下壯士도 끝내는 무릎을 꿇고 마는 걸까?
거짓을 벗기는 마음일까?
육신을 흩뿌리는 낮아짐일까?

낙엽수(落葉樹)의 겨울나기, 어쨌든 특별하다
그럼에도 여지껏 무의미하게 그냥 흘려보낸 시퍼런 강물
너의 눈동자 안에서 가이없이 명멸(明滅)을 거듭했던
民草들을 기억하는 것은 우연일까?

너의 살신성인(殺身成仁)!
더 이상 망명 정부(亡命 政府)의 지폐일 수 없다
겨울을 이겨내는 김장이요 새봄을 탄생시킨 어머니
낙엽의 값비싼 희생 덕분에
된바람의 철퇴에도 계절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立春大吉할 수 있었음을

얼음으로 수놓은 제단 위에
고즈넉이 팔 벌린 털 없는 비둘기들
그 살깃에로 평화로 찾아와선 사랑으로 녹아드는 雪花
시나브로 세마포를 드리우고 있다 어느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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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도 눈을 크게 뜨는 논개의 붉은 아미(蛾眉)
::::::::::::::::::::::::::::::::::::::::::::::::::::::::::::::::


먼 발치의 봄의 여신도
목련빛 얼굴, 개나리색 저고리에 진달래꽃 치마를 둘러 입고
샛바람에 올라서서 손짓하고 있다

오, 생명을 잉태한 동정녀여!
어서 오라
우리들의 가슴에


초희의 작품도 하나 전시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다분히 서정적이었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철학적인 시로도 보였다.

하늘못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하늘을 내려다보면
나무 꼭대기에 오른 것처럼
파도치는 이 현기증

하늘못은



하다
바람이 간지럽혀도 아랑곳 않고 잠만 자는 벽해(碧海)
흰 돌고래의 장난과
가끔씩 해원을 가르는 철새떼도 애교로 통한다

한번 젖 먹던 힘 다해 뛰어 내려본다
다시
다시
또 다시

그러나 고무줄에 묶인 추처럼 번번이
원위치

이번엔 돌을 들어
태양의 입술 향해 던져 본다
하지만 이것도 분수처럼 용솟다 말고
되돌아서 내 가슴팍으로 달려든다

호흡이 있는 한은
내려갈 수 없는
樂園...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 드립니다. 25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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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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