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25회(5부 : 캠퍼스 연가 2)

-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1.27 22:10수정 2005.01.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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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5. 캠퍼스 연가 2

10월 9일. 한글날이었다.


모처럼의 공휴일이라서 나와 초희, 노진과 영희, 그리고 진경이 이렇게 다섯이서 계룡산 등반을 하였다. 한철은 함께 가기로 하였으나 엊그제 체육학과 행사 때 축구선수로 참가했다가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동행하지 못했다.

진경도 못 가는 줄 알았는데, 혼자서라도 가겠다며 약속 장소인 유성 시외버스 터미널에 나와 있었다. 의외였다. 그래서 우리는

"두 사람이 또 싸웠는가 보다."

영희의 말처럼 그렇게 추측했다. 그런데 등산을 하겠다는 그녀의 복장이 평상복에 신발은 구두였다. 우리가 우려를 표시하자 그녀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에 보문산에 갔을 때도 그런 복장으로 다녀왔다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계룡산을 보문산에 비교하다니 답답한 마음이 일었으나 그렇다고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늘 시끄럽던 떠들던 한철이 빠지자, 시장 통에 있다가 산사(山寺)에 오른 것처럼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호젓해서 좋은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노진은 메뚜기 그 녀석이 없어 영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며 여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선 버스 편으로 공주에 도착, 갑사를 거쳐 동학사로 넘어오는 등반을 하기로 하였다. 갑사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라서 우리는 단풍으로 물든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걸었다.

갑사(甲寺)는 백제 때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창건한 화엄종 10대 거찰의 하나로 경내에 대숙전, 천불전 등 10여개의 당우와 함께 부도, 철당간지주, 동종, 월인석보판본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외에도 백제 때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고 그곳에서 수도하는 스님이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나와 초희와 영희는 '월인석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역시 전공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혹시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일반인에게는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무척 아쉬웠다.

갑사에서 목도 축이고 기념사진도 한 장씩 찍은 우리는 금잔디 고개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어가는 길은 꽤 험하고 가팔랐다. 특히 돌이 많아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져 다칠 염려가 있었다.

나나 노진은 산을 좋아하여 여러 번 등반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나 초희와 영희, 그리고 진경은 산타는 것을 무척 어려워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그녀들의 손을 잡아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초희의 손은 참으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지난 8월, 우리의 만남 100일을 기념하여 은반지를 나누어 낄 때, 반지를 끼워주기 위해 그녀의 손을 살짝 만져본 이후로 그녀의 손을 잡아보기는 이 날이 처음이었다.

그녀를 만난 지 거의 5개월만의 일이었다. 괜히 마음이 설레고 얼굴은 단풍처럼 붉게 물들었다.

"아부지!, 아이고 아부지!"

영희는 걸핏하면, 다시 말해 놀라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아버지를 불렀다. 보통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어머나!, 엄마야!"

하면서 일반적으로 어머니를 찾는데, 그녀는 왜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부를까? 참으로 의아했다. 혹시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가 싶어 초희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아니란다.

그래서 쉬는 틈에 한번 그 이유를 캐물었더니, 그녀가 부르는 아버지는 '낳아주신 아버지'가 아니라 알고 보니 '하나님 아버지'의 준말이었다.

하나님자(字)를 빼고 아버지라고만 불러 그 의미를 몰랐던 것이다. 결국 그녀의 '아부지!'는 '주여!' 하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그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니 솔직히 부끄러웠다. 그러니 나의 우둔함, 또는 믿음 없음을 탓할 수밖에.

진경은 자꾸만 뒤쳐졌다. 그러다 보니 영희를 제치고 노진에게 신세를 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진경은 신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계속 뒤쳐지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노진이 거의 그녀를 부축하다시피 해서 산을 올랐다.

영희는 그 둘을 기다리기가 지쳤는지 아예 앞서가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마루턱을 거의 다 왔을 때였을까? 진경이 그만 발을 잘못 디뎌 부상을 입고 말았다. 노진이 정성껏 응급치료를 하여준 덕에 다시 걸을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어쩐지 걷는 자세가 부자연스러웠다.

우리는 남매탑 부근에서 여장을 풀고, 시원한 약수로 갈증을 달래며 가져온 도시락으로 시장기를 면했다.

"철민씨는 이 산에 자주 왔나봐요? 이것 저것 아는 것이 많은 것을 보니‥‥‥."

영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자주는 아니구요. 가끔씩 왔어요. 고등학교 때 학교 소풍으로 한번 동학사까지 왔었고 또 교회 고등부 등반대회에 참가하여 그 때는 저 관음봉하고 삼불봉까지 올라가봤어요. 그리고 이곳 유성에 살게 되면서 아무래도 바람 쐬러 더러 오게 되더라고요."

"그 정도면 많이 온 거네요. 저는 처음이거든요. 계룡산에 대해서 더 아는 것 있으면 얘기 좀 해 줘요."

"그럼 그럴까요. 계룡산은 차령산맥을 타고 뻗어오던 산줄기가 금강의 침식작용으로 분리되어 하나의 독립된 산으로 우뚝 솟은 거래요."

"그런데, 왜 산 이름이 계룡이에요?"

"그건 닭 벼슬을 쓴 용의 모양이라서 그렇게 지었대요. 동학사 쪽에서 보면 정말 로 계룡산이라는 말이 실감난다니까, 우리 있다가 내려가서 한번 자세히 봐요. 정말 그런가 안 그런가."

나의 이러한 설명에 노진도 한 마디 거들었다.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된, 그러니까 아주 오래된 사찰로 비구니승이 많기로도 유명해요. 언뜻 듣기에 많을 때는 500명이 넘었다죠. 그렇지 철민아!"

그랬더니 듣고만 있던 진경도 끼어들었다.

"그렇게 여자가 많다니, 한철이 왔으면 참 좋아했겠네요. 여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잖아요."

"네? 진경씨는‥‥‥ 좋기는요 그림의 떡이지. 여승이 어디 여자예요?"

노진이 받아쳤다. 그러자 진경은 조금은 쑥스러워하며 말꼬리를 감추었다.

"그런가요."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26회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현직 국어 선생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현직 국어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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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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