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15

대립

등록 2005.01.25 17:02수정 2005.01.2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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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

“천하에 빌어먹을 놈! 애비 애미도 없는 놈!”


이조판서 김상헌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길을 가면서 평소의 그답지 않게 연신 상스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그 바람에 김상헌에게 인사를 올리려 하던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그를 돌아보며 수군거렸다.

“유백증 이놈이 대체 이따위 상소를 올린 저의가 무어란 말인가!”

김상헌이 이렇게 화를 낸 데에는 사간인 조경이라는 사람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경은 좌의정 홍서봉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며 그가 사사로이 뇌물을 받는다고 했으나 합당한 근거가 없다며 반려되자 다시 상소를 올려 탄핵하였다.

“신이 홍서봉에 대해서 분개하는 것은, 국가를 편안히 하고 사직을 이롭게 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사리사욕에만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신을 경솔하게 논핵했다고 신을 나무라시니, 신은 참으로 황공합니다. 신은 성상(임금)의 과실도 거리낌 없이 고했사온데 대신에 대해서 무엇이 꺼릴 게 있겠사옵니까.”

하지만 오히려 조경은 주위 대신들의 건의로 체직(직위에서 해임됨)되었고 이에 이조참의에 있으면서 강직한 성품을 지닌 유백증이 발끈하며 나섰다.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홍서봉의 동료들이니 조경을 체직하여 물러나게 하며 그 죄가 없다 하는 것은 같은 당인(黨人)을 비호한 데 불과한 것입니다. 대신들에게 널리 나라의 이익을 구하는 뜻이 있다면 국사(國事)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어찌 이리 해괴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조경과 유백증의 상소는 좌의정 홍서봉의 비리를 알리는 것은 물론, 정묘호란을 겪은 후에도 조정의 대신들이 무사안일주의에 절어 있는 것을 개탄하여 올린 것이었다. 인조 역시 이러한 뜻을 알고는 있었지만 새파랗게 젊은 사간에게 쌍욕을 얻어 먹기라도 한듯 펄펄 뛰는 대신들 앞에서 일단 조경을 실무직에서 내치는 정도로 무마하려 했던 것인데 이를 유백증이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던 게 김상헌의 화를 돋운 것이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어찌 이리도 방자하단 말인가! 제 놈들이 임진년의 난리를 제대로 겪어 보기를 했는가? 그런 철없는 놈을 감싸고도는 유백증은 또 뭐란 말이냐!”

이조부에 들어서서도 김상헌의 화는 가라앉지 않아 조정 대신들을 대변하는 마음을 담아 상소문을 쓰기 시작했다.

“유백증은 필시 조정의 이름난 대신을 공박해 자신이 이름을 널리 알리려는 사특한 마음을 가진 자에 불과하옵니다. 전하께서 붕당의 폐습을 크게 미워하시어, 이런 자들이 색다른 논리를 펼 때마다 새로운 인물이라 하여 더욱 총애하고 발탁해 그 길을 넓혀 놓으셨으므로, 올바르지 못한 무리가 출세에 급급하여 남의 허물을 찾아내는 것을 자기가 출세하는 지름길로 삼게 되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 데 어찌 붕당을 갈라서 서로 대립하는 것이 나라의 걱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자들은 반드시 죄를 주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오히려 애초에 탄핵을 당한 좌의정 홍서봉은 벼슬을 내어놓으며 물러날 뜻을 밝혔으나 인조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홍서봉은 자신의 주위를 따르는 다른 대신들이 상소를 넣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은근히 바랐고, 김상헌이 자기도 모르게 이를 받아들인 셈이었다. 인조는 김상헌의 상소를 받아 본 후 그 상소가 너무 과격하다 하여 그를 체직시키고 유백증 또한 체직시켰다. 그 후 인조는 ‘시전’을 강연하는 자리에서 강연을 마친 후 붕당의 폐해에 대해 성토했다.

“어찌 신하들이 붕당만 있으며 조정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오. 붕당에 해가 미칠까 두려워 다른 이의 입을 막는 것은 곧 임금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과 다름없소. 붕당은 어디까지나 조정을 위하는 행실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오.”

인조가 붕당에 대해 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강연에 있던 신하들은 "망극하오이다"란 말을 되풀이 할 뿐 감히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뒤이어 인조는 문제가 되었던 김상헌의 상소문을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도록 도승지에게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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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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