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교육관 문제 있다

[주장] 대학이 경제계의 요구와 주문 따라야 한다?

등록 2005.01.26 10:57수정 2005.01.27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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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총리 인선 문제로 진통과 공전을 거듭한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교육부총리직을 민주당 국회의원에게 제의한 배경을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정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회견 중에 나타난 대통령의 교육관이다.

"대학의 교육산업 측면은 경제계 말을 들어보면 좀 심각하다고 한다. 결국 국가경쟁력이 장기적으로 교육의 경쟁력에서 비롯된다고 하는데, 중기적으로 보면 대학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교육을 어느 방향으로 할 것이냐 등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대학교에 우리 경제계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대학교육에 대해서 우리 경제와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주문서를 정확하게 내고 그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해갈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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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교육관과 인선기준이 경제계의 요구에 맞춘 실적이 있다는 전직 대학총장을 교육부총리에 임명하려 했던 배경이고 또 재계에 발이 넓다는 대학총장 출신 비서실장의 조언인 모양이다.

대학이 경제계의 요구와 주문에 따라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 현안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갖는 도중 답변 내용 정리에 잠시 고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 현안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갖는 도중 답변 내용 정리에 잠시 고심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동진
오늘날 우리 대학교육이 극히 경쟁력이 없다는 진단에는 이의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학도 산업이고 경제계의 요구와 주문을 따라야 한다는 교육관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먼저 우리 교육이 경쟁력을 상실한 책임의 상당 부분은 성장제일주의를 내세워 자원 배분의 왜곡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재계에 있다. 그동안 수출산업, 중화학공업 그리고 경제 인프라에 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분한 뒤 남는 데서 교육의 몫을 배분했다.

이 교육예산의 대부분은 초중등교육에 돌아갔고 대학교육은 세계 제일의 교육열을 지닌 국민들의 사비용으로 충당했다. 우리 대학은 입학만 하면 거의 자동으로 졸업이 됐기 때문에 대학교육의 질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산업구조도 노동집약산업에 이어 자본집약산업을 중추로 성장했기 때문에 대량생산체제에 적합한 숙련기술자가 필요한 산업계에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원배분 왜곡의 또 한 예를 보자. 60년대 초까지 국립도서관은 을지로 입구의 롯데백화점 자리에 있었고 시립도서관도 그 근처에 있었다. 식민통치를 한 일본도 교육, 문화의 우선순위를 지켰다는 얘기다.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이곳에는 백화점이 들어섰고 그 일대는 이제 어느 재벌의 아성이 됐다. 국립도서관은 지금 강남에 있기는 하지만 찾아가기도 힘든 외진 곳에 쓸쓸히 서있고 시립도서관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연구의 중심이 돼야 할 대학도서관은 독서실 수준이다. 등록금으로 대학운영비뿐만 아니라 건물까지 지었으니 도서관에 들어갈 돈은 없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총칼없이 전쟁터에 내몰린 격이었다. 결국 연구인력은 외국으로 보따리를 쌌고, 돌아와서 몇 년이 지나면 학문적 낙후를 면치 못했다.

아직도 그 명당 자리에 국립도서관이 버티고 있고 경제성장에 걸맞게 발전하면서 학문과 정보의 중추로서 국민들에게 서비스를 하고 있다면 지금 어땠을까?

직접적으로 교육이나 문화에 미치는 효과와 간접적으로 경제와 사회발전에 미치는 효과가 일개 백화점이나 호텔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에 견줄 것인가.

이 사례는 사적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교육, 문화관과 이런 기업의 주문에 발맞춘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도서관 몰아내고 명당 자리에 들어선 백화점

사실 기업의 교육관과 사회의 교육관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교육은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효과를 50여년의 긴 기간을 두고 평가해야 하고 교육도 평생 써먹을 수 있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기업은 아무리 장기라해도 10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실적을 평가할 수 없다. 더욱이 요즘에는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부르짖으며 40대를 퇴출하는 것이 예사다.

이런 환경에서 단기 경영실적이 중요한 기업의 요구에 맞춰 대학이 교육내용을 바꿔야 할까? 대학은 실생활에서 필요한 기술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눈부시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인생의 지혜, 사고력과 판단력을 길러주는 곳이다. 기업의 연수원과는 다르다.

어학이나 창의력은 대학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최근 경제계가 보는 대학의 약점은 아마도 두가지 측면일 것이다.

하나는 국내시장 개방과 세계화로 국제경쟁에 노출되면서 이에 맞설 어학 능력을 지닌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학능력을 갖춘 인재를 기르는 것은 대학교육의 소관이 아니다. 기형적으로 입시에 매달린 초중고 교육의 실패에서 비롯한 만큼 거기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첨단, 지식산업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는 문제다. 이제는 기존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받은 인력은 쓸모가 없고 개성있고 창조적 사고를 하는 인력이 필요한데 대학이 그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한탄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창조적 사고능력도 초등학교 때부터 길러야지 대학에서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더욱이 경제계는 공학이나 경영, 경제 같은 학문에나 관심이 있지 인문학이나 기초과학에 관심을 둘 리가 없다. 하지만 기술혁신은 단단한 기초학문의 토대 위에서만 꽃을 피운다.

앞으로 기술혁신이 주도하는 성장을 이룩하려면 경제계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학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공익 성격의 기부는 외면하면서 대학교육을 맞춤형으로 바꾸려 한다면 대학의 경쟁력도, 경제의 경쟁력도 더욱 떨어질 것이다.

산적한 교육개혁의 과제를 추진하기 위한 교육부총리의 인선은 어느 힘있는 집단의 요구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렴해서 방향을 정하는 균형감각과 철학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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