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진해일 피해는 새로운 희망의 신호"

제1차 세계해방신학대회 폐막 정리..."세계화는 역설적으로 연대의 세계화로 이어져"

등록 2005.01.26 12:57수정 2005.01.2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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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 일정을 마치고 제1차 세계해방신학대회가 폐막하였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모인 해방신학자들은 그들의 변함없는 형제자매애를 확인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신학으로써 해방신학을 다시 한 번 결의하였다. 그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희망이기 위해서 해방신학은 무엇을 성찰하고 무엇을 제기하여야 하는가?

인터뷰 중인 오토 마두로
인터뷰 중인 오토 마두로엄기호
먼저 해방신학이 반성하고 돌아보아야 하는 주제에 대해 24일 폐막 하루를 앞두고 저명한 종교 사회학자이자 해방신학자인 베네수엘라의 오토 마두로는 해방신학의 가장 큰 터부였던 이슈를 직설적으로 제기하였다. 그것은 지난 10년간 해방신학이 의도적으로 침묵으로 일관한 현실사회주의의 문제였다.

먼저 오토는 이제는 해방신학이 사회주의에 대해서, 사회주의에 의한 억압과 잘못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한다고 시작하였다. 그는 해방신학이 사회주의운동과 조우하고 연대한 것은 역사적 이유가 있었고, 그것은 정당했다고 이야기했다.

해방신학은 억압받고 가난한 사람들의 신학으로 출발하였다.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그리스도교 사회운동가들은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감옥에서, 때로는 은신처에서 사회주의자들과 만났다.

사회주의자들 역시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운동을 하며 그곳에 있었으며, 해방신학은 자연스럽게 그들과 뜻을 나누고 서로를 가르치며 협력해왔다. 이것은 정당하였다.

그러나 해방신학은 과도하게 사회주의, 특히 미국의 제국주의적 공세에 맞선 사회주의에 동정하면서, 현실사회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의해서 저질러진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하였다. 이 이야기를 하며 오토는 끊임없이 ‘나부터 반성해야하고, 나부터 비난받아야하고, 나부터 지적되어야한다’고 통렬한 자기반성의 언어를 쏟아내었다.

오토는 이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 해방운동세력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쿠바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였다. 먼저 그는 쿠바가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인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위협임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고 전제하였다. 미국은 쿠바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쿠바의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제 일차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오토는 그렇다고 해서 특히 쿠바의 친구들이 쿠바의 문제에 대해서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였다. 그리스도교 사회운동가들이 ‘교회를 비판하면서도 교회안에 있고’, ‘국가를 비판하면서도 국가안에 있는 것처럼’ 이제는 사회주의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고 비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쿠바 안에서는 미국과 맞서야 하는 이유로 민주주의적 공간이 극히 협소하기 때문에 쿠바 바깥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와 쿠바에 대한 봉쇄와 위협에 반대하는 쿠바의 친구들이 쿠바에 대해 비판의 소리를 해야 한다. 그것이 쿠바를 위하는 길이다. 오늘 쿠바의 민주주의는 나쁘지만, 쿠바의 친구들이 입을 닫으면 내일 쿠바의 민주주의는 더 나빠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미국이 원하는 일이다.


오토의 이런 제안은 즉각 뜨거운 찬반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 쿠바에서 온, 자신을 '쿠바 혁명가'라고 밝힌 해방신학자 라울은 오토가 쿠바가 아니라 미국을 향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쿠바 혁명가들에 연대할 것을 호소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다른 참가자는 오토가 미국에 대해 먼저 비판하는 한에서만 쿠바에 대해 말을 할 자격이 있다며 그의 발표가 비판의 순서를 따르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지만 감히 이야기하지 못한 주제를 먼저 꺼낸 오토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였다.

쿠바에 대한 동정과 연민 그리고 연대속에서 라틴아메리카 해방운동가들의 마음 역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오토는 쿠바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형제’들의 연민과 동정 그리고 연대에 무한한 존경을 표현하며 이제 쿠바의 혁명을 더 민주적이고 해방적이 되게 하자고 말을 맺었다.

새천년을 맞이하여 해방신학이 억압과 착취에 맞선 희망과 기쁨이기 위해 가장 먼저 맞서야하는 것으로 포럼은 종교근본주의를 들었다.

25일 아침 ‘또다른 가능한 세계를 향한 신학’이라는 강의에서 인도 예수회 신부 마이클 아말라도스는 새천년에 종교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 그 자체’가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종교는 갈등의 해결사가 아니라 갈등의 원천이며 지구 곳곳에서 전쟁의 동기이며 전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특히 세계화로 인한 이민의 증가로 이전에는 지역적으로 뚜렷하게 준거지를 달리하던 종교가 지구 곳곳에서 마구 뒤섞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종교가 자신만이 ‘절대적 진리’이며, 나머지 다른 종교들은 ‘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 종교간 갈등은 피할 길이 없다.

그리스도교는 ‘구원’을 배타적으로 독점하였다고 선언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갈등을 피할 길이 없다. 무슬림은 다들 무슬림으로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슬람만이 자연적인 종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화에 의해 촉발한 종교 간의 일상적 대면이라는 상황이 빚어낸 잠재적 갈등의 일상화와 전지구화를 피하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종교적 다원주의의 태도가 필요하다.

‘신은 그들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안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종교 안에서 그들 종교를 통해서 활동하신다.’

유니온 신학대의 정현경 교수는 종교 다원주의를 넘어 종교적 혼합주의에 대해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실상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사실상 혼합의 산물’이다. 현재의 그리스도교 역시 유대교 전통과 조로아스터교, 그리스 철학 등이 혼합된 산물이다.

종교는 당대의 모든 철학과 사상과 종교에서 영향을 받고 혼합되며 발전해간다. 종교가 이 시대의 희망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종교 스스로 갈등의 원인이 되었음을 반성하고 종교근본주의에 맞서야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한 억압에 해방신학은 어떻게 맞설 것인가?

포럼은 기간 내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해서 억압받고 착취 받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더 비참해졌는지를 증언하였다. 소수 부족에서부터 여성에 이르기까지, 제3세계 여성 노동자에서 서구의 은퇴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지구상 절대 다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의 경제신학자 정모승 교수는 해방신학은 세계화의 영성에 도전하여 이의 정당성과 신화를 허물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단지 이윤만을 추구할 뿐 그 어떤 가치와 영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 자체의 가치와 영성을 생산하고 사람들에게 유포시킨다. 우리신학연구소의 박영대 소장은 그것을 끊임없는 한탕주의 욕망의 영성으로 규정하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사회 안전망이 붕괴된 상태에서 소비주의를 통하여 끊임없이 욕망을 생산하고 그것을 한탕주의를 통해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한국의 로또복권의 열풍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욕망의 배후에는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사회 안전망 붕괴에 따른 삶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류애는 파괴되고 연대의 영성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세계해방신학포럼 폐막식 장면
세계해방신학포럼 폐막식 장면엄기호
그러나 여전히 희망은 있다. 붕괴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화가 역설적으로 연민과 공감의 세계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랑스 카리타스의 앙투앙 신부는 ‘이번 지진해일 피해는 새로운 희망의 신호’이기도 하다고 말을 한다.

이번 지진해일에 대한 전지구적인 모금 열풍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모금은 지구적 연민과 연대가 이제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상징적 신호탄이다.

인류의 전지구적 이동으로 인해 더 이상 지역적이기만 한 재해는 없다.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지구 어느 구석에서건 재해의 희생자는 지구적으로 얽히게 되었다.

희생자의 세계화는 재해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이에 연민과 연대도 세계화되었다. 이것이 희망이다. 세계화에 의해 파괴된 연대의 영성이 역설적으로 세계화에 따른 결과에 의해 지구적으로 구성되고 있다. 해방신학은 이 연대의 영성에 기초하여 해방을 선포해야한다.

문제는 이 해방이 정착할 수 있는 전지구 차원의 정치, 경제, 사회분야의 대안이다. 아르헨티나의 엔리크 뒤셀은 솔직하게 아직까지 인류의 손에 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였다.

이전에 해방신학은 혁명을 통한 사회주의가 그 건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사회주의는 붕괴하였다. 더구나 세계화는 일국 수준의 대안 건축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아직 인류는 전지구 차원의 대안 건축을 상상해내지 못하고 있다. 대신 그 지구적 대안 건축은 생산해야할 그 무엇이다. 해방신학 자체가 이 대안 건축을 고안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방신학은 영성운동으로써 이 대안 건축을 기하고 생산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해방운동에 ‘지금의 상황이 행복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낙관적이다’는 예언자적 선언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는 힘이 되기 위해 스스로 지구적 단결을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해방신학포럼은 그 첫째 디딤돌의 역할을 마무리하며 투쟁하는 사회운동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제5차 세계사회포럼 개막에 맞춰 폐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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