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29회)

등록 2005.01.27 09:36수정 2005.01.27 14:06
0
원고료로 응원
사다리 위에 있는 방에는 두 사람 분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밥과 해물을 넣은 국물요리가 차려졌다. 특이하게도 김치까지 준비해 놓았다. 그를 부른 남자는 탁자 옆에서 장전된 권총을 들고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안 박사의 집에서 보았을 때처럼 복면을 하고 있었다. 한눈에도 그와 같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면을 쓰고 있는 남자는 수건과 칫솔도 건네주었다. 면도기도 세면대에도 가게 해 주었다. 둘은 얼굴을 씻고, 이를 닦고, 면도를 한 다음 아침 식사 테이블에 앉았다.


"우선 식사부터 하시죠. 그분이 곧 오실 겁니다."

"그분이라뇨?"

"잠시 뒤면 뵙게 될 것입니다."

둘은 말없이 식사를 했다. 우선 오랫동안 버티기 위해서는 허기를 면할 필요가 있었다. 둘은 천천히 식사를 했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싱크대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노인에게서 얻어 마신 차와 똑같은 것이었다. 식사를 다 하고는 그 찻잔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혹시 또 수면제를 탄 건 아니겠죠?"


김 경장이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남자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다시 총을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 방은 오두막집을 떠올리게끔 만들어져 있었고, 벽도 바닥도 판자로 대어져 있었다. 주위에는 키가 큰 수목이 에워싸고 있었고, 세면대에 갈 때 내다본 창문에서는 인가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의 위치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방금의 남자보다 키가 조금 작아 보였지만, 머리나 근육은 더 커 보였다. 그 또한 검은 복면을 한채 안으로 들어오며 둘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는 것이다.


"대우가 시원찮죠?"

둘이 말이 없자 복면을 한 사내가 다시 말했다.
"곧 개선해 드리겠습니다."

듣고 있던 채유정이 목소리를 높였다.
"왜 우리를 여기에 가둔 거죠? 당신들 정체가 뭐예요?"

"우리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게 오히려 두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둘이 복면을 한 이유를 모르겠습니까?"

둘이 대답이 없자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두분을 해칠 의향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두 사람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죽은 두명의 교수처럼 말이죠?"

사내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분들의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소. 우리 중국을 위해 희생된 것이죠. 아마 하늘 나라에 가서 우리 일을 알게 되면 크게 원망하진 않을 겁니다."

"자신만만하군요. 당신들의 일이 과연 무엇이기에 사람 둘을 죽여 놓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죠?"

사내는 대답 없이 팔짱을 꼈다. 그리고는 탁자에 놓인 차를 마셨다. 하지만 둘은 찻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시고 마시세요. 제가 마셔도 아무 이상이 없는 차입니다."

그러자 김 경장이 뜨거운 차를 불면서 마셨다. 찻잔을 온전히 비운 사내가 둘을 동시에 건너다보면서 다시 말을 건넸다.

"두분의 뒷조사를 좀 해 보았지요. 두분 다 역사를 전공한 분이시더군요."

"당신 같은 조폭 집단이 우리를 어떻게 조사했다 말이오?"

"조폭이라니요? 말조심하시죠. 우린 중국을 위해 움직이는 거대한 집단입니다. 애국심으로 뭉쳐져 있는 데다 정보 네트워크도 풍부하죠. 세계 어느 곳에 뻗어 있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당신들의 정체부터 밝히시지."

"그건 차차 알게 될 것이오. 나중에 진정한 중국의 세계가 오면 우리들의 존재를 자연히 알게 될 것이오."

"중국의 세계가 온다니요?"

"이제 미국이 패권을 차지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어요. 다음은 우리 중국 차례이지. 정신적으로 중화민족을 결집시켜 거대 중국을 만들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 영토에 편입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당신이 말하는 내용은 소위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라는 거 아닙니까?"

"역시 역사학도다운 이야기를 하시는구만. 우리 중국 역사는 한족을 비롯한 56개의 민족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항상 한족을 중심으로 한 다수 민족이 통일을 견지해 왔습니다.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발생한 모든 역사적 사건은 중화민족의 역사라는 것이죠.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가 중국 전역을 통일하면서 지금 중국의 광서성, 운남성 등의 각종 소수민족도 모두 통일된 진나라의 영역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진 나라가 망한 뒤 한나라 때는 서역의 각 민족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는데, 이들 또한 화하(華夏)민족이라는 칭호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같은 중국의 영토 안에 편입되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의 중국 영토가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것 아닙니까?"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옆으로 내저었다.
"아니죠. 원나라 때우리 영토가 가장 넓었죠. 그 때는 지금의 동유럽 일부와 러시아까지도 중국 영토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