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택시기사라고 별 수 있겠어?"

예니네 가족 텐트메고 유럽가기 6

등록 2005.01.29 22:14수정 2005.01.30 11:01
0
원고료로 응원
이십년쯤 전에 운전면허는 있으나 운전경력은 없는 그야말로 페이퍼 드라이버 시절, 졸업하고 갓 입사한 회사의 부장님과 밖에 나갈 일이 있었다. 같이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부장님이 운전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네'했더니 걸어가면서 자동차 키를 주며 '하치장으로 가자'하는 게 아닌가.

면허가 있다는 뜻이었는데 막상 키를 받으니 당황했지만 '에이 까짓거' 하는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았다. 학교 다닐 때 면허를 따 놔야지 졸업하면 바빠서 힘들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3학년 때 필기 따로 실기 따로 해서 어떻게 면허를 받기는 했으나 실기시험장이 마지막이었던 운전석에 처음 앉고 보니 키도 제대로 꽂히지 않았다.


'장롱면허' 운전대 잡다

심호흡을 하고 '기아중립 클러치 밟고 브레이크 밟고 시동걸기'하며 기억대로 헤매는 동안에도 옆자리의 부장님은 서류를 뒤적이며 눈치를 못 채고 그냥 앉아 있었다.

시동은 걸리고 나는 기어 1단을 넣고 주차장을 천천히 빠져 나갔다. 주차장을 빠져 나가면 바로 4차선 대로였고 나가면서 바로 좌회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차선변경을 해야 하는데 난 거기서 기어 2단을 넣는 것도 좌회전 깜빡이를 켜는 것도 잊고 쩔쩔매며 그냥 엉거주춤 걸치고 있었다. 차들이 빵빵거리자 서류에서 눈을 뗀 부장님이 사태를 짐작하고 자리를 바꿔 앉아 그야말로 부드럽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참을 달리다가 부장님은 혼잣말 비슷하게 '배짱 하나는 좋네' 하며 빙긋이 웃었는데 나는 옆자리에 앉아 얼굴이 화끈거려 창 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후 회사를 차려 대표이사가 된 그 분을 지금도 가끔 만나거니와 그때 신입사원이던 나를 그 사건 이후 눈여겨보았다는 말을 훗날 들었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a 에펠이 사람 이름이었다니...-구스타프 에펠의 동상 앞에서

에펠이 사람 이름이었다니...-구스타프 에펠의 동상 앞에서 ⓒ 유원진

시동이 걸린 차에 앉아 나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갑자기 이십년 전의 기억이 떠오르며 마치 면허를 따고 처음 운전하는 초보같이 몸이 긴장이 되었다.

바로 앞 도로로 나가기만 하면 생전 처음 보는 신호등과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다른 운전자들, 그리고 생전 처음 와보는 낯선 길들이 수많은 사건들을 감추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갑자기 차에서 내려 키를 돌려주고 지금이라도 기차여행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왔다.


'배짱 하나는 좋네.'

세상에 어떤 일도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고의가 아닌 바에야 용서받을 수도 있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용서의 문제를 떠나는 실수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일이 아닌가 한다. 그야말로 '사람을 죽여 놓고 미안하다면 다냐'인 것이다.

내 생명과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은 물론이려니와 아무 상관없는 타인의 안전까지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일이 자동차 운전과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일들인 것이다. 그야말로 배짱 하나 가지고 덤빌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제대로 움직일 줄도 몰랐던 20여년 전에도 한 가지 믿는 구석은 있었다. 내가 다른 차를 들이받지 않는 바에야, 천천히 가서 교통을 방해하든, 차선을 바꾸지 못해 엉거주춤하든, 그와 유사한 모든 일로 다른 운전자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든, 하여튼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죽이거나 죽는 일만 없으면 된다는 배짱인지 만용인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유럽 한복판 파리의 시내에서 또 다시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래도 아직 내 차 같이 손에 익지는 않았으나 운전경력이나 응급대처능력이 있고 나이도 먹어 세상물정을 많이 아니 그때와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여튼 우리 가족 차 안에만 안전하게 있고 누가 뭐라든 내 갈 길만 간다는 신념(?)으로 안전하게 운전하면 딱지를 떼이든 욕을 먹든 다른 일들은 있겠지만 우리 팀의 안전은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a 열심히 지도는 보고 있지만...

열심히 지도는 보고 있지만... ⓒ 유원진

한 달 동안 자동차 여행을 하려면 지정 좌석이 있는 것이 좋다. 사람하고 짐들이 섞여서 다니면서 갑자기 필요한 짐들의 위치 파악에도 유리하고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필자의 추측일 뿐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안은 아님).

아내가 면허가 없으니 필자가 말뚝기사이고 뒷자리야 누가 어디에 앉든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으나 조수석에 누가 앉느냐가 중요한 일이었다. 지도를 보고 운전자에게 방향을 일러주어야 하고(그것도 미리미리) 장기운전할 때는 졸지 않도록 틈틈이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줘야 하고 간간이 운전자의 심부름도 해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동차여행에 있어서 운전자만큼이나 중요한 위치인 것이다.

필자는 두 아이 중에서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조수석에 앉는 게 지도를 보는 면에서는 유리했으나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둘째를 막중한 임무의 조수로 임명하였다. 둘째는 첫째에 비해 자동차 안에서 잠이 없었다.

멀쩡한 사람도 차만 타면 잔다는 말이 있듯이 유난히 차 안에서 잘 자는 체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둘째는 자동차 여행을 좋아하여 졸다가도 차만 타면 눈이 반짝이는 체질이고 특히 그동안 여러 번 자동차여행(국내)에서 보면 밤늦게 달리는 경우에도 거의 졸거나 자는 일이 없이 늘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면서 졸음운전을 예방해 주었다.

또 그야말로 요즘 아이들답게 이것저것 시스템을 만지거나 하는 일에도 나보다 유능하여 필자가 운전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었다.

a 개선문에서

개선문에서 ⓒ 유원진

일단 대충 방향만 정해놓고 4차선 대로로 나서자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멀리 아까 오면서 보았던 신개선문이 보이자 갑자기 콧노래까지 나오며 은근히 때 이른 자신감까지 생겨서 앞으로만 쭉 빼고 있던 목을 저어보며 슬쩍 백미러도 한번 보았다. 다른 차들은 자신의 바로 옆에서 생전 처음 파리를 달리고 있는 동양인 남자가 '생쑈'를 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평화롭게 달리고 있었다.

a 오잉, 이게 뭐야?- 함무라비 법전 앞에서

오잉, 이게 뭐야?- 함무라비 법전 앞에서 ⓒ 유원진

유럽은 운전 매너가 좋다던데...

몇 킬로나 앞만 보고 직진을 했을까 짐짓 좌측 깜빡이를 켜고 일차선으로 추월을 시도해 보았다. 바로 뒷차와 거리가 가까워 다음 순서를 기대했는데 뒷차가 속도를 줄여 양보해주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더 두고 봐야겠지만 유럽 사람들이 운전매너가 좋다더니 한결 수월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가벼워지자 긴장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시장기가 느껴졌다.

a 퐁피두 센터 앞에서. 짓다 만 거 아냐?

퐁피두 센터 앞에서. 짓다 만 거 아냐? ⓒ 유원진

새벽에 파리에 도착해 터미널 근처에서 빵 한 조각씩 사먹은 것밖에 없어서 다들 배가 고플 텐데도 아빠가 이리저리 바쁜 것을 보고 내색을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상황이 안정되었다고 느낀 누군가의 입에서 배고프다는 말이 나오자 정말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팠다.

차를 처음 인수할 때 기름을 조금밖에 안 넣어주기 때문에 바로 주유소를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터라 기름부터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주유소를 찾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유로라인터미널에 보관되어 있는 짐부터 찾는 게 순서였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선조님들의 가르침은 멀리 유럽 땅에서도 진리인 듯이 느껴졌다.

a ...

... ⓒ 유원진

신개선문이 위치한 지역이 파리시의 외곽이라 그런지 주유소를 찾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 주유소를 찾아 들어가면서 주입구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몰랐으나 확률은 어차피 반반이라 그냥 편한 대로 댔더니 맞았다.

난생 처음 셀프 주유를 해보다

한국에서는 주유원들이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여기서는 주유원이 없고 직접 기름을 넣어야 하므로 성가시고 골치 아프게 되기 십상이라 미리 알고 있어야 여러 차가 엉클어져 야단법석이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도 차를 대고 막 내리는데 바로 뒷차들이 이어져 들어와 잘못 댔으면 아주 성가실 뻔하였다.

a 신구의 조화, 루브르 박물관

신구의 조화, 루브르 박물관 ⓒ 유원진

지금은 우리나라도 여러 주유소들이 슈퍼마켓을 겸하고 있는 곳이 많지만 유럽은 모든 주유소들이 제법 규모가 큰 그야말로 슈퍼마켓을 같이 하고 있어서 여행객들에게는 여러모로 아주 유용하다.

차를 인수할 때 매니저한테서 반드시 디젤을 넣어야 하고 기름을 잘못 넣어 차가 고장 나면 보험도 안 된다는 말을 수십 번은 들은 터라 권총같이 생긴 주유기를 잡은 손이 자못 떨리기까지 하였다.

디젤이라고 영어로 쓰인 걸 보고 또 보고서야 그걸 기름 탱크 입구에 밀어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유럽연합이라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명칭을 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차를 인수할 때 정확히 알고 있어야지 지금 미리 기억해두거나 할 필요는 오히려 없다.

a 넘치면 안되는데...

넘치면 안되는데... ⓒ 유원진

한국에도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난생 처음 셀프주유라는 걸 해보는 순간이었다. 이거 혹시 넣다가 기름이라도 넘치는 거 아닌가 하고 초긴장이 되어 있는데 한참 물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딸깍하고 저절로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처음 주유를 작은 실수 없이 넘치지도 않고 했다는 게 또 하나의 작은 기쁨을 내게 선사했다. 들어간 양을 확인하고 슈퍼 안에 있는 카운터로 가니까 캐셔가 벌써 알고 영수증을 주며 얼마를 내라고 한다.

뿌듯한 마음으로 계산을 하고 빵하고 음료수 등 먹을거리를 샀다. 이제부터 짐을 찾아 캠핑장까지 가려면 저녁이 될 것이고 어떻게든 그때까지는 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빵은 넉넉하게 샀다. 화장실까지 갔다 와서 다시 운전석에 앉으니 반나절 운전에 벌써 파리 택시기사가 다 된 것 같이 느긋하였다.

a 물빛을 머금은 듯한 파리의 거리. 에펠탑을 찾다가

물빛을 머금은 듯한 파리의 거리. 에펠탑을 찾다가 ⓒ 유원진

유럽의 대부분 도시가 그렇듯 파리도 링이라고 부르는 도시 내부순환도로를 가지고 있어서 복잡한 시내를 관통하지 않고도 시내의 어느 지역을 가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다. 그야말로 내부순환도로라 지름도 작아서 한 바퀴를 도는데 삼십분이 채 안 걸리는 다운타운 서클이라 하여도 무방할 듯싶다.

20분 갈 거리 4시간 헤매고

서울의 링이라면 강북강변도로와 내부순환도로를 잇는 형국인데 아마 길이는 파리가 서울의 절반도 안 되지 싶었다. 그래서 경험자들이 한결같이 어디를 찾아가든 링을 올라타고 적당한 곳에서 빠져나와 목적지를 가라고 충고하고 있고 또한 파리시의 다운타운은 일방통행이 많고 주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여 파리의 캠핑장이든 호텔이든 숙소에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되어 있다.

a 비 오는 날, 노트르담 성당앞에서

비 오는 날, 노트르담 성당앞에서 ⓒ 유원진

일단 짐을 찾으러 가야겠기에 지도에 체크해 놓은 유로라인터미널을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미국인이 차를 가지고 서울에서 강남고속터미널 찾아가는 꼴이었다. 그것도 초행길에.

무조건 비슷한 방향이면 가보고 아니면 다시 링을 타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지하에 유로라인터미널이 들어 있는 그 건물을 찾아내기는 했는데 도대체 진입로를 못 찾겠는 것이었다. 우측으로 나가는 것 같아 들어가려면 진입금지표시가 있고 뒤로 돌아 가려면 담이 있고 하여튼 건물을 발견하고도 한 시간 주위에서 맴돌다 겨우겨우 도착했다.

나중에 보니 우리나라 식으로 유턴을 하면 간단한데 그걸 못하고 그 고생을 한 것이었다. 하기야 파리 택시기사인들 처음 간 서울시청 광장에서 서울시 주차장으로 맵시있게 들어가겠는가.

짐을 찾아 싣고 까르푸에 들렸다가 캠핑장에 도착하기까지 여기에 다 쓰려면 한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길을 알면 20분도 안될 거리를 4시간동안 헤매고 다녔다. 물론 그 덕에 뒤에 앉은 아내와 큰 아이는 파리시내 골목골목을 실컷 구경했겠지만 달리는 차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지도를 펴들고 끙끙거리는 둘째와, 큰소리쳐놓고 헤매고 있는 필자는 죽을 맛이었다. 물론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처음에 언급했던 대로 그 자체가 하나의 추억이기는 하다.

이상한 골목으로 들어가 빙빙 돌다가 구멍가게 앞에 의자를 내어놓고 앉아 있는 노인에게 길을 물었을 때 영어 한마디 못하면서도 가르쳐주려 애쓰다가 안 되니까 미안한 듯이 코를 만지작거리던 모습은 그런 일이 아니면 어디 가서 보랴.

그 이후에 유럽 어디 가서도 파리만큼 헤매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 파리에서 아주 혼이 나서 가는 데마다 커다란 지도를 사들고 준비를 철저하게 한 탓도 있지만 며칠을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을 한 덕에 하루만에 우리의 파트너는 내 손에 길이 잘 들어 마치 십년은 끌고 다닌 차 같이 편안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지고 팀원들 모두 많이 지쳐갈 쯤 우리는 꿈결같이 볼로뉴 캠핑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거의 신기할 정도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윤 정권 퇴진" 강우일 황석영 등 1500명 시국선언... 언론재단, 돌연 대관 취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