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32회)

등록 2005.02.03 09:21수정 2005.02.0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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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채유정은 눈에 잔뜩 힘을 넣은 채 앞에 앉은 공안을 건너다 보고 있었다. 제 경장 또한 흥분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미리 한국 총영사관에 연락을 넣어 중국 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해 놓은 터였다. 하여 공안은 앞에 앉은 두 사람을 정중히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 경장이 신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남자의 신분은 파악했습니까?"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아직 신분도 파악하지 못했다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지문이라도 채취하면 신분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문을 살펴보았지만 기록에 없는 사람이더군요."

"그런 경우도 있습니까?"


"중국의 인구가 13억이 넘습니다. 그 모든 사람의 지문을 아직 다 기록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제 경장은 유치장 안에 갇힌 사내를 돌아보며 그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몸집에 비해서 지나치게 크다고 느껴지는 머리를 들고 핏발이 선 눈으로 제 경장을 똑바로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차돌처럼 단단한 느낌이었고, 철 지난 베이지 색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한참을 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던 사내가 벽에서 등을 뗀 후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정확히 네 발짝을 움직여 유치장의 창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한동안 둘이 창살을 사이로 서로 마주 보았다. 사내의 넓은 이마가 코끝에 닿을 듯했다. 제 경장이 갑자기 두 손으로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 정체를 밝혀라. 도대체 무엇 하는 놈이냐?"

하지만 사내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엷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제 경장이 멱살을 풀며 사내를 거세게 밀었다. 그리고는 공안 앞에 다가갔다.

"저 놈이 우리 두 사람을 죽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안이 고개를 내저었다.

"저 놈의 지문을 살폈죠. 안 박사의 살해 현장에서 발견한 지문과는 다릅니다."

제 경장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짧은 신음을 내뱉았다.

"범인을 잡아 놓고도 이렇게 손을 놓아두고 있어야 한다니."

공안도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는 제 경장과 채 유정을 복도로 불러냈다. 공안이 담배를 건네자 제 경장이 손을 내저었다.

"전 담배를 피지 않습니다."

공안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놈이 묵비권을 행사하면 우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보아하니 뒤에 배경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압력을 가하기까지 합니다."

"압력이라니요?"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고는 함부로 취조를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역시 놈들은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공안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더니 제 경장 앞으로 바투 다가갔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이렇게 말해왔다.

"놈이 총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면 대충 짐작 가는 곳은 있습니다."

제 경장이 턱을 내밀려 물었다.

"짐작이 가는 곳이라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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