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33회)

등록 2005.02.14 09:31수정 2005.02.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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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을 함부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놈들이라면 삼합회 밖에 없습니다."

김 경장의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삼합회라……."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옆의 채유정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오염물질로 뭉쳐진 연막은 밤이 깊어지자 한층 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동물처럼 온 거리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쿨럭쿨럭."

김 경장이 기침을 했다. 중국을 온 이래로 계속 따라 다니는 기침이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쳐지지 않고 계속 구역질처럼 질기게 붙어 다니는 것이다.

"괜찮으세요?"


김 경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했다. 이어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볼펜으로 '삼합회'라는 글자를 크게 써넣었다. 며칠 동안 목숨을 걸다시피 하여 간신히 알아낸 유일한 단서였다.

김 경장이 한참동안 수첩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리듯 낮게 말했다.


"삼합회에 대해 잘 알아요. 내가 한국에서 조선족과 중국인 밀입국 사건을 조사하면서 알게 됐죠. 그 밀입국의 배후에는 삼합회 놈들이 있어요. 중국계 국제 밀항청부조직으로 가지고 있는 놈들이죠. 우린 이들 때문에 골치를 썩였지."

"한국과도 연관이 있다는 거예요?"

"이들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삼합회는 트라이어드 (triad)라고도 불리는데 천도맹(天道盟), 14K, 죽련방 (竹聯幇) 등 총 55 계파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죠. 그들의 구체적인 조직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조직원들은 화교거주지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걸쳐 약 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조직원이 5만명이 넘는 다구요?"

"그렇습니다. 웬만한 대기업 종업원 수와 맞먹는 숫자죠. 그들의 자금도 수십억 달러가 넘는다고들 그래요."

"그런 삼합회가 왜 역사학자인 안 박사님과 류 교수를 살해했을까요? 더구나 그들의 두목으로 보이는 자와는 역사적 논쟁까지 벌였잖아요."

"삼합회는 원래부터 정치적인 조직입니다. 그리고 중화사상에 젖어 있기도 하요."

"조폭 집단이 중화사상에 빠져 있다구요?"

"삼합회는 1760년대에 푸젠[福建]의 장저우에서 창립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들은 청(淸)을 배격하고 명(明)을 복구하며, 부(富)를 타도하고 빈(貧)을 구제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주로 교통·운송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광산 노동자, 각종 수공업의 직공, 영세상인, 실업자 등 도시의 하층 민중이 이 모임에 참석으로 하고 재야 지식인과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조직이 만들었죠. 이 조직들을 움직여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청나라를 배격하고 명나라를 부르짖을 정도면 한족들이 중심을 이루었겠군요."

"그래서 그 두목으로 보이는 자도 중화사상에 빠져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그들은 조폭들이잖아요. 아무리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사람을 죽일 정도의 활동은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모르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거대한 어떤 것이 움직이고 여기에 삼합회까지 가세하고 있습니다. 어떤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죽은 두 명의 박사님은 그 음모의 희생양이 된 것이군요."

김 경장이 문득 채유정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라고 예외일 순 없죠."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래서 말인데요. 댁은 이제 이 일에서 물러나야 될 것 같습니다."

채유정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미 두 명의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죽을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습니다. 심상치 않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여자인 당신까지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절 여자라고 무시하는 건가요?"

"전 경찰입니다. 때문에 당연히 이 일을 제가 맡아야 하지만 댁이 여기에 끼어 들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채유정이 문득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남의 일이 아니에요. 저의 스승께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셨어요. 단순한 살인이 아니란 건 김 경장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역사적인 어떤 사건과 이번 일이 관련된 것이 분명해요. 형체도 없이 흩어져 있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저의 도움도 필요하실 겁니다."

"그렇다고 댁이 큰 위험을 안고 뛰어들 정도는 아닙니다."

"어떤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다고 하였잖아요. 그 음모가 무엇이겠어요? 역사적인 어떤 일과 관련된 게 분명해요. 학자인 저로서도 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김 경장이 몇 번이나 설득을 했지만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역정을 내며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거대한 어떤 세력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한 이 상황에 그녀를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김 경장은 생각 끝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좋습니다. 그럼 박사님이 류 교수와 갔던 곳을 알아내기만 하면 그때에 물러서는 겁니다."

채유정이 한 손으로 턱을 고이며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러면서 김 경장을 옆으로 돌아보았다.
"우리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은 것 알고 계세요?"

"그런 것 같군요. 근처 식당으로 가죠."

"저희 집으로 가요. 제가 요리한 음식을 대접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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