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조기(굴비)가 빠질 수 없죠.김규환
물 한 바가지 떠다 놓고 이기고 메로 친다. 섞고 뒤적여 찐득찐득한 한판이 나오면 식기 전에 떡 덩어리를 지듯 어깨에 메고 방으로 들어가 어루만지고 다져서 솥뚜껑으로 돌리고 칼로 잘게 잘라 콩고물을 입힌다. 고소한 인절미와 취떡이 만들어진다.
멥쌀 떡을 쳐서 떡판을 눌러 모양을 내고 참기름을 발라 차곡차곡 석작에 담는다. 가래떡은 방앗간에 맡겨 놓았으니 장에 가신 아버지가 오시던 길에 찾아오셨다. 옆을 떠나지 못한 나는 그날 한번 먹어 보는 몇 가지 떡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조청 발라 말랑말랑하고 차진 떡을 쏘옥 늘려 먹는 재미에 빠졌다. 어머니는 그날 밤 떡가래 써느라 잠을 물렸다.
차례상에 올릴 대목장을 다른 오일장에서 마저 봐오신 아버지는 약주 한잔 하셨는지 불콰한가 보다. 나는 두부 다섯 모를 사오고 나서 쇠죽을 쑤었다. 동네엔 자욱한 연기가 깔려 맛난 설을 맞는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광에서 꺼내온 온갖 나물을 불려 나물 만들고 전어, 준어, 병어, 굴비에 탕감 재료가 놓이고 곶감, 김 한 톳에 홍어 한 마리, 참꼬막 다섯 되가 갖가지 요리로 상에 차려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산적과 전을 부치느라 지지고 볶는 소리에 온 동네가 향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