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 이익 내도 쌈짓돈엔 '벌벌'

금감원 휴면예금 사전통지 시행 지시에 은행권 부정적

등록 2005.02.06 11:10수정 2005.02.1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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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금감원의 휴면계좌 사전통지 제도 시행에 대해 은행권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농협에서 지난 2002년 7월부터 2개월동안 장기간 거래가 없는 예금을 찾아 돌려주는 '고객예금 찾아주기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금감원의 휴면계좌 사전통지 제도 시행에 대해 은행권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농협에서 지난 2002년 7월부터 2개월동안 장기간 거래가 없는 예금을 찾아 돌려주는 '고객예금 찾아주기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 연합뉴스

작년 한해에만 7조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낸 은행권이 정작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휴면예금' 홍보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6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와 국민 등 10개 시중은행 실무자들은 지난 2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 모여 회의를 열고 올 상반기 시행될 예정인 휴면예금 개별 사전통지 제도에 관한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면예금 사전통지'란 금융사들이 고객의 휴면예금을 '잡이익'으로 처리하기 전에 등기우편 등을 이용, 의무적으로 개별 고객에게 통보하도록 한 제도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이같은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 휴면예금 환금절차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또 최근 각 금융회사와 협회 등에 휴면예금 사전통지 제도 시행에 따른 내규나 협회규정 근거를 마련해 4월부터 시행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하지만 각 은행 실무자들은 회의를 통해 제도 시행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권이 휴면예금 사전통지 제도에 부정적인 이유는 개별 통보를 할 경우 금전적 비용이 만만치 않고, 오히려 은행과 고객 모두에게 손해라는 것이다.

실제 금감원은 사전통지 비용을 개별 고객 휴면계좌 잔고에서 처리하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이는 각 금융회사들이 비용을 이유로 통지의무를 기피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금감원은 또 우편 뿐 아니라 이메일 등을 통해서도 알릴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해외사례] 미국 등 매월 통지서 발송

미국이나 영국 등 해외 국가들은 휴면예금에 대한 안내가 매우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고객에 대한 철저한 서비스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1년간 입출금거래가 없는 경우 휴면계좌로 분류, 월 10달러의 계좌관리수수료를 부과하고, 이에 대한 거래명세서를 매월 고객에게 보내준다. 또 매년 6월말이 되면 5년을 경과한 정리대상계좌의 명세를 출력해 일간지에 게재하고 고객 앞으로 통지한다. 물론 전화연락과 우편 발송도 빠지지 않는다.

영국은 보통 1년 이상 거래가 없는 경우 계좌의 계속 사용여부를 묻는 통지서를 1달 간격으로 2회 정도 보내준다. 고객으로부터 답이 없을 경우에도 계좌폐쇄 예정통지서를 발송하고, 계좌가 폐쇄되더라도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잡이익으로 처리한다.

일본도 각 은행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최종거래일 이후 10년이 경과한 1만엔 이상의 휴면예금에 대해서는 6개월 이내에 우편으로 통지한다. 또 최종거래일 이후 10년 6개월이 지난 결산기가 돼서야 이익금으로 계상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보통 5년(은행)만 지나도 각 금융회사가 '잡이익'으로 처리한다. 반면 휴면예금 고객에 대한 안내 절차에는 외국에 비해 소홀한 편이다.
반면 은행권에선 몇천원에서 몇만원 정도 되는 계좌 잔고에서 통지 비용을 제외하면 고객이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적다는 점을 내세워 제도시행에 부정적이다. 또 개별통지보다는 인터넷이나 광고 등을 통한 지속적인 홍보가 비용면에서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과 시민단체는 은행권의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휴면예금 통지 대상은 최소 1만원 이상의 잔고가 있어야 하도록 돼있어 은행권이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도 "은행들이 비용은 들겠지만,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자세에서 휴면예금 안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온라인이나 신문 광고 등을 통한 휴면예금 안내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보통 성인들은 3∼4개의 은행과 거래하면서도 은행을 자주 바꾸고, 이 때문에 자신이 어느 은행에 얼마만큼의 휴면예금이 있는지를 모르는 실정"이라며 "이를 해결하려면 하나의 홈페이지나 각 은행 사이트에서 전체 휴면예금의 규모를 알 수 있도록 일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도 휴면예금을 일괄 조회할 수 있는 '원스톱(One-Stop) 시스템'을 각 금융회사에 적극 권장하고 있다. 금감원은 "보험의 경우 금융실명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보험협회를 통해 휴면보험금에 대한 일괄 조회가 가능하다"며 "은행이나 증권사도 신규계좌를 개설할 때 휴면계좌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나 금융회사 홈페이지에서 전체 계좌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은행권에서 연간 발생하는 휴면예금은 평균 1000억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찾아가지 않는 휴면예금이 누적되면서 금액은 매년 커지고 있는 형편이다. 납세자연맹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까지 약 2500억원 정도의 휴면예금이 쌓인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매년 각 은행들의 '불로소득'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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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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