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는 농성장, 의원실은 상담실

문턱 낮은 민주노동당, 갖가지 상담자들로 '북적'

등록 2005.02.06 13:13수정 2005.02.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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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민주노동당은 2일 오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강기갑·심상정 의원, 이선근 본부장, 길거리 상담 자원변호사와 개인 연체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부채SOS운동 민생포럼을 열었다.

민주노동당은 2일 오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강기갑·심상정 의원, 이선근 본부장, 길거리 상담 자원변호사와 개인 연체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계부채SOS운동 민생포럼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민주노동당 여의도 중앙당사에는 노동자들이 산다. 물론 당직자들도 노동자이고 이들이 당사에서 며칠씩 밤을 새는 경우도 흔하지만, 당직자 숫자만큼이나 많은 노동자들이 50일 넘게 당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여성 경찰고용직노동자 30여명이 당사를 투쟁거점장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잠을 자는 당사 대회의실 벽에는 매일 일정이나 주요 쟁점을 적은 자보가 붙어있다. 지난달 정세균 신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를 예방했을 때, 김 대표는 이 대회의실에서 정 원내대표를 맞으며 "경찰고용직노동자들이 열린우리당으로 가야할텐데 우리에게 왔다"는 말로 사태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벌이며 농성을 하고 있는 경찰고용직노동자들은 저녁이 되면 당사에 들어와 밥을 지어 식사를 하고 회의를 하며 다음날 일정을 준비한다. 당직자들이 퇴근하고 나면 이들이 간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빈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여느 당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 민주노동당사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찰고용직노동자만큼은 아니지만 민주노동당사는 각종 사안으로 여의도를 찾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상황실이나 회의실로 자주 사용된다. 어떤 당직자들도 이런 손님들을 신기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농성 노동자와 당직자 뒤섞인 당사

민주노동당사는 5∼6건의 상담전화가 걸려온다. 민주노동당은 단순히 개별 문제 해결에 상담의 목표를 두지 않고 법제도의 미비점을 찾아 대안적인 정책을 세우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민원이 현장밀착형 정책생산의 초기 자료수집 역할을 맡는 셈이다. 가장 민원상담이 활발한 부서는 경제민주화운동본부. 별도의 대중조직이 없는 서민 경제의 경우 민원상담이 당사자와 당을 잇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지난해 9월부터 자문변호사 15명과 함께 개인별 채무조정 길거리 상담활동을 시작했고, 올해는 그 변호사들이 '현장출동 신용회복 119' 차량을 기증하기도 했다. 또한 올해 들어 국회 헌정기념관이나 도서관에서 2차례 민생포럼을 열었는데, 이 포럼은 신용불량자, 중소상인 등이 직접 의원들에게 자신의 상황과 이후 대책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민주노동당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프로그램인 셈이다.


또한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매주 토요일 기자회견실에서 '나홀로 파산신청 실무 공개강좌'를 연다. 대부분 토요일에 기자들이 일을 안 하는데다 다른 회의실도 예약이 되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운나쁘게 이날 기자회견실을 찾은 기자는 잠시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경제민주화운동본부가 원외정당시절부터 상가·주택임대차보호법 발의의 성과를 냈으며 원내정당이 된 뒤에는 정부 여당이 내는 금리 관련 법안에 발빠르게 당의 입장을 만들고 최근 2월 임시국회에서 파산법 개정안 발의를 주도하게 된 것도 이처럼 수많은 상담으로 쌓인 내공 덕분이었다.


a 지난달 6일 오전 11시 여의도 민주노동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가계부채 SOS 운동' 발대식에서 김혜경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과 당직자들이 카드빚으로 죽은 채무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지난달 6일 오전 11시 여의도 민주노동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가계부채 SOS 운동' 발대식에서 김혜경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과 당직자들이 카드빚으로 죽은 채무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 권박효원

"다른 의원실에서 민원인 보내기도... 정책생산으로 이어지는 상담"

당사가 아닌 의원실에도 대부분 매일 2∼3건의 상담 신청이 들어온다. 특히 민원이 집중되는 곳은 단병호 의원실과 이영순 의원실. 각각 소속 상임위 성격에 맞게 단 의원실에는 노동 관련 민원이, 이 의원실에는 행정 관련 민원이 주로 들어온다.

최근 교육위 소속 최순영 의원은 "교사가 검사 아들의 시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줬다"는 제보를 소홀히 하지 않고 내용을 확인해 이를 공론화시키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그 뒤로 최 의원실에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각종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단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한 마디로 별의별 민원이 다 들어온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의 단 의원을 알고있던 노동조합만 의원실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 '노동자 의원'이라는 소문을 보고 단 의원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의원실을 찾았다가 "노동문제면 '단'을 찾으라"는 '충고'를 듣고 의원실 문을 두드린 사람도 있다고 한다.

대부분 한 건의 민원 상담에는 1시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상담에 걸리는 시간만 그렇다. 관련 행정부처에 사안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는 등 작업에 들어가면 소요시간은 무한대로 늘어난다. 이 중에는 이미 다른 법적 수단을 다 사용한 뒤라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것도 많다.

단 의원실의 보좌관은 "그저 한풀이를 하러 온 분이라면 차라리 들어주면 되는데 아무리 얘기해도 '의원님을 만나면 풀린다'는 생각에서 집요하게 해결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참 난감하다"고 전했다.

각종 노동현안과 민원에 대한 '욕심'은 때때로 비효율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단 의원은 40여명의 증인을 신청했다. 이중 가장 주요한 증인은 삼성 SDI 경영진이었지만 환노위의 다른 의원들은 "단 의원이 증인을 너무 많이 신청했다"고 항의하며 삼성 경영진을 증인에서 제외시켰다.

지금에 와서는 단 의원측도 "국감에 대한 감이 없었고 증인 신청이 비효율적이었다"고 평가하지만, 당시에는 그것도 줄인다고 줄인 것이었다. '단 위원장'에 대한 각종 노동조합의 기대는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단 의원실에서는 아직 들어온 민원에 대해 상담을 거부한 적이 없다. 당장은 손쓸 수 없어도 손님들의 사연에서 정책 아이디어가 생길 때도 많다는 설명이다. 지난 1월에도 40여군데 지역 사업장을 돌며 각 사업장의 현안을 보고서로 정리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당시 방문한 사업장에서 정책은 물론 투쟁 방향에 대한 상담전화가 꾸준히 걸려온다.

임진수 민원상담실장은 "다른 당은 의원의 힘으로 압력을 넣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기대가 큰 반면, 민주노동당은 사안을 갖고 정책활동으로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강조했다. 또 임 실장은 "원내 진출 이후 당을 찾는 사연의 양이나 내용이 풍부해졌고 해당 부처에서도 관련 자료를 금방 내주는 편이라 상담과정도 역동적"이라며 "때로는 제보자가 함께 대책기구에서 활동하며 공동으로 사업을 펼치기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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