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아픔 싣고 떠나가는 '띠배'

[탐방기]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의 '띠뱃놀이'

등록 2005.02.13 16:32수정 2005.02.1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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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당굿이 펼쳐지고 있는 산 정상에서 바라본 위도 대리의 아름다운 바다와 마을
원당굿이 펼쳐지고 있는 산 정상에서 바라본 위도 대리의 아름다운 바다와 마을진홍
원당이 있는 당젯봉이라는 장상에서 내려다 본 풍광만으로도 땀 흘리고 올라간 보람이 있습니다. 마치 망루처럼 좌우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풍물소리에 맞춰 무녀들의 굿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다 쪽으로 절벽을 이룬 곳에 세워진 원당은 어민들의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하여 ‘원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한때 조기잡이로 유명했던 ‘칠산어장’으로 활기를 띠었던 이곳은 수많은 어선들이 왕래하던 곳으로, 타 지역 어선들도 원당 앞을 지나다가 이 곳을 향해 제를 올렸을 정도로 예전에는 영험한 신앙의 대상이었답니다.


지난 11일 위도 띠뱃놀이를 보러가기 위해 새벽길을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서울에서 부안을 거쳐 격포에 도착하니 10시 5분 전입니다. 비경이라는 채석강도 미안하지만 주마간산입니다. 배에 올라 출렁이는 파도를 가르며 40여 분만에 드디어 위도의 파장금이라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자칫 한나절 다 지나겠다 싶어 조바심 납니다. 또 버스를 타고 한참 더 들어가야 했으니까요.

낮은 돌담이 굿당을 에워싸고 있으며 원당굿을 하고 있는 무녀의 모습
낮은 돌담이 굿당을 에워싸고 있으며 원당굿을 하고 있는 무녀의 모습진홍

민속성과 예술성 뛰어난 해양 전통문화의 보고, 띠뱃놀이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서 펼쳐지는 띠뱃놀이는 매년 정월 초이튿날 펼쳐지는 서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굿입니다. 해안이나 섬지역의 굿이 정초에 있는 것은 아마 농업과 달리 설을 쇠자마자 생업인 어로를 시작해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크게 원당굿과 용왕제, 띠배 보내기 순으로 진행되는데 원당굿을 하고 있는 곳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산 정상입니다. 산과 마을, 바다를 두루 돌며 마을굿을 펼쳐는 것도 띠뱃놀이굿의 특징입니다.

위도에 조기어장이 한창일 때는 선주들이 비용을 부담하여 펼치는 대규모의 별신굿이 있었으나 50여 년 전에 이미 소멸되었고, 매년 풍어와 제액을 기원하는 무굿 중심의 띠뱃놀이가 전승되고 있습니다.


85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위도 띠뱃놀이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되어 오고 있는 민속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해양 전통문화의 보고라 할 만합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노인들도 잘 모를 정도로 오래 되었답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위도 지역의 유일한 마지막 세습 만신(큰 무당)이었던 조금례가 95년 사망하고 뒤이어 무녀역할을 대신하였던 안길녀마저 98년 사망한 이후 가까운 육지의 무당들을 불러 마을굿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굿은 정읍과 전주에서 온 전금순(81) 전영애(78) 자매 무녀가 주관하였습니다.


조그마한 맞배지붕에 낮은 돌담으로 둘러쳐진 굿당의 좁은 마당 안엔 구경꾼들과 취재진으로 북새통입니다. 그들의 눈빛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전통문화를 조금이라도 놓칠 새라 노심초사한 필자와 같아 보였습니다.

담 밖에선 장작불에 돼지고기를 굽고 거나한 술잔이 돌며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신앙성과 놀이성이 강했던 띠뱃놀이는 현재는 놀이와 축제성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시대가 바뀐 것이겠지요.

산을 내려오면서도 흥겨운 풍물과 춤, 노래가 이어진다.
산을 내려오면서도 흥겨운 풍물과 춤, 노래가 이어진다.진홍

선창에 용왕상 차려놓고 무사고와 풍어 기원

7거리굿이 모두 끝나고 산을 내려오면서도 풍물과 춤, 노래가 흥겹게 이어집니다. 한참을 잘 내려오더니 갑자기 지게꾼이 벌렁 넘어집니다. 힘들어서 못 내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노잣돈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따라 오던 구경꾼들과 취재진들이 만 원짜리 몇 장을 지게에 꽂아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흥얼거리며 내려갑니다. 익살과 해학 그리고 놀이가 구경꾼들도 굿의 주인으로 만들어냅니다.

마을로 내려온 풍물패와 선주들의 깃대는 동쪽 끝 바닷가와 서쪽 끝 바닷가로 오고 가며 동편당산굿과 서편당산굿을 펼치며 동네 한 바퀴를 돕니다. ‘주산돌기’라고 부르는 굿 절차로 농촌의 지신밟기에 해당됩니다. 마지막으로 동네 가운데로 와 샘굿을 마치고 바닷가로 향합니다. 머나먼 칠산바다에서 밀려온 바닷물이 오늘은 더욱 설레는 듯싶습니다.

바다는 평소 풍족한 물고기로 어민들을 살찌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느닷없이 사납게 화를 내며 변덕을 부리기도 합니다. 특히 조기잡이로 이름난 칠산바다가 그렇습니다. 심청이가 공양미에 팔려가 제물로 바쳐진 인당수라는 오랜 전설로부터 위도를 세상에 크게 알린 1993년 서해훼리오 침몰사건은 잊지 못할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제시대인 1931년 태풍엔 무려 600여 명의 어부들을 삼켜버리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선창가의 용왕굿은 가장 큰 굿으로 남녀노소가 어우러지는 신나는 굿판으로 바뀐다.
선창가의 용왕굿은 가장 큰 굿으로 남녀노소가 어우러지는 신나는 굿판으로 바뀐다.진홍
따라서 용왕굿은 전통시대의 간절한 신앙성과 풍부한 연희성이 나타나는 굿입니다. 선창에 용왕상을 차려놓고 무사고와 풍어를 기원하고 수중고혼을 달래는 굿을 정성스레 치릅니다. 여기서부터는 그동안 참여하지 않았던 부녀자들이 합세합니다.

마을 주민 모두가 어우러지는 축제판으로 바뀌어가는 것입니다. 메와 시루떡, 돼지고기, 생선적, 각종 과일과 나물, 술 등 여느 제사상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색다른 점은 커다란 함지박에 준비된 ‘용왕밥’이라는 것입니다.

‘어랑청 가래질이야 ~ / 황금같은 내 조기야 ~ / 어랑청 가래질이야 ~ / 만경창파 너른 바다 ~ / 어랑창 가래질이야 ~ / 길을 잊고 이제 왔냐 ~ ~ ’

용왕굿이 끝나고 줄밥, 가래밥 뿌리기가 시작됩니다. 먼저 동쪽 바다로 가며 용왕밥을 바가지로 떠서 뿌립니다. 생명의 밥을 먹이는 것은 이 땅의 어머니들인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합니다.

술배소리를 부르며 가래밥을 뿌리는 주민들의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흥겹다.
술배소리를 부르며 가래밥을 뿌리는 주민들의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흥겹다.진홍
섭섭지 않게 서쪽 용왕님에게도 배불리 용왕밥을 뿌립니다. 풍물을 치고 토속민요를 부르며 마을굿은 어느새 신나는 축제로 바뀌어 갑니다.

‘어화 술배야 ~ / 먼데 사람 보기 좋고 ~ 어화 술배야 ~ / 가까운 사람 듣기 좋게 ~ / 어화 술배야 ~ / 술배소리 맞아주소 ~ ~’

주민들이 부르는 토속민요 속에는 뱃길에서의 무사안녕과 만선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드디어 띠뱃놀이의 절정인 띠배를 띄워 보내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합니다. 띠로 만든 자그마한 모형 배에는 5방기와 배를 저어갈 사람 모양의 허제비 그리고 제물 등이 실려 있습니다. 띠배를 끌고 갈 모선에 줄을 연결하고 풍물패가 올라타고 주민들은 띠배를 밀어 바다로 띄워 보냅니다. 망망대해를 향하여 오색기가 펄럭이며 풍물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집니다.

띠뱃놀이 보존과 전승에 앞장서고 있는 젊은 사람들

띠배가 되돌아오면 불길하다 하여 멀리 띄워 보내기 위해 먼 바다까지 끌고 가야 한다.
띠배가 되돌아오면 불길하다 하여 멀리 띄워 보내기 위해 먼 바다까지 끌고 가야 한다.진홍
마을의 모든 액운과 만선에 대한 꿈을 실은 띠배는 먼 바다를 노 저어 떠나갑니다. 특히 올해의 띠배는 그동안 주민들 사이에 섭섭했던 마음이나 갈등도 한꺼번에 싣고 떠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핵폐기장’ 유치 문제로 상처 받았을 주민들의 아픔과 갈등도 무두 싣고 떠나길 바라는 마음 역력합니다.

굿이 끝난 자리에선 굿을 주관한 사람이나 구경꾼이나 구별없이 즐겁게 술을 나누어 마시며 풍물과 춤, 노래가 끝날 줄 모릅니다. 우리 나라 전통문화의 생명력과 신명은 바로 신앙과 놀이가 어우러져 마을 주민들을 한데 묶어주는 ‘대동굿’이라는 데 있습니다. 특히 위도의 전통굿인 띠뱃놀이는 연희성이 매우 강한 민속예술로서의 귀중한 가치가 높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소중한 민속들이 사라졌거나 소멸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민속예술은 농촌이건 어촌이건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태어나 생계와 직결되어 발전하거나 소멸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후손들에게 마음의 양식과 신명을 주던 전통문화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뼈 빠지게 농사짓고 어로를 해봐야 늘어가는 빚 때문에 이젠 농촌과 어촌, 그리고 소중한 전통문화를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띠뱃놀이를 진행하는 위도의 대리마을도 인구감소와 노령화 그리고 시급하게는 굿을 주관할 연희자의 전승문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전북대에서 굿을 연구하던 이영금(43)씨가 나서게 된 것도 이런 연유입니다. 원당굿에서 시연을 해보였던 이씨는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자신이 나섰다고 말합니다. 도회지로 나가 살다가 귀향하여 3년 째 띠뱃놀이보존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는 김안수(43)씨 같은 젊은 사람들이 보존과 전승에 앞장서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스런 일입니다.

필자를 비롯한 위도에 들어갔던 사람들 모두는 그날 발길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배타고 들어갈 땐 잠잠하던 바다가 변덕을 부린 탓입니다. 도리 없이 구경 왔던 사람들과 하룻밤을 지내며 얘기를 나눴듯이 ‘지역 주민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주체자인 지역주민들이 보존과 전승에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부디 모든 재액일랑 실어가고 오직 만선과 평안을 가져다 주는 한 해가 되기를...
부디 모든 재액일랑 실어가고 오직 만선과 평안을 가져다 주는 한 해가 되기를...진홍
고슴도치 모양의 아름다운 위도라는 섬은 주민들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강요받아 왔습니다. 고려시대부터는 오도가도 못 하는 유배지로 이용되어 왔으며, 일제시대인 1915년 이후 반세기 가깝게 영광군에 속했던 위도를 5·16쿠데타 직후 일방적으로 전북에 편입시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평온하던 마을에 회오리를 일으켜 엄청난 홍역을 치러야 했습니다.

올 정초 띠배에 그동안의 모든 액을 띄워 보내고 만선의 꿈이 이루어져 내년엔 더욱 신바람나는 마을굿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건 비단 마을 주민들만의 꿈이 아닌 우리 모두의 꿈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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