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회장 "무거운 봇짐 지고 낯선 세상 가는 심정"

14일 중앙일보 직책에서 물러나...고별사 게재

등록 2005.02.15 02:38수정 2005.02.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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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한동안 저의 부임을 놓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지만 지금 저는 집을 떠나 무거운 봇짐을 등에 지고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는 심정입니다."

오는 22일 주미 대사로 부임하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신문사를 떠나는 심경을 털어놨다. 그러나 홍 회장은 "제가 진 봇짐에는 국민 모두의 염원이 담겨 있기에 무거운 책임감으로 정성과 노력을 다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며 새로운 포부도 덧붙였다.

14일자로 중앙일보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홍 회장은 이날 고별사를 통해 11년간 신문사 생활을 돌아보고 주미 대사로서 앞으로 각오를 다졌다. 고별사는 15일자 중앙일보 본지에 실리며 이보다 앞서 14일 밤 8시경 인터넷 중앙일보에 미리 전문을 게재했다.

홍 회장은 "지난해 주미 대사로 나라의 일을 도와달라는 소명을 받았을 때, 왜 우리 선비들이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았는지 비로소 깨달으며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또 중앙일보에서 11년간 재직했던 기간을 돌아보며 "신문의 섹션화, 한글전용과 가로쓰기 편집, 오피니언 페이지 강화 등으로 한국 신문제작 전체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고 평한 뒤 "신문이 사실과 주장, 감정을 뒤범벅하여 국민에게 혼란을 주었던 점을 반성하는 등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신문으로 거듭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많이 부족하고 안타까운 시간들로 점철됐다"는 표현으로 지난 삶을 회고하기도 했다. 홍 회장은 "개인적으로나 언론인의 한사람으로서 어려운 시련을 겪기도 했다"면서 "몸이 고단하면 마음이 더 깊어진다는 말처럼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부족함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홍 회장은 "그동안 신문 경영에서 얻은 작은 식견과 세계신문협회 회장으로 봉사해온 국제적 체험이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의 깊은 구렁을 메우는 힘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금이 간 민족공동체와 국제적인 외교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티끌 만한 힘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주어진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주미 대사로서 각오를 밝혔다.


홍 회장은 마지막으로 독자에 대한 감사 인사와 함께 "기사 질이나 의제설정, 비판기능에서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특히 중앙일보 논조에 변함이 없을 것을 확신했다.

중앙일보 사장에 송필호·권영빈씨
14일 이사회에서 선임...이사회 의장은 이홍구 전 총리

오는 22일 주미 대사로 부임하게 될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그동안 맡아왔던 대표이사 회장·발행인·인쇄인 등 모든 직책을 14일자로 사임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이사회를 열어 대표이사 사장 겸 인쇄인에 송필호(55) 부사장, 사장 겸 발행인·편집인에 권영빈(62) 부사장을 선임했다.

또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를 전면 개편, 사내인사 5명과 사외인사 4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이사회 의장은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맡는다. 사외이사에는 이 전 총리 외에 한상호(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을 선임했다.

중앙일보는 "이사회는 분기별로 회의를 열어 신문사 경영과 제작에 관한 주요 정책이나 방향을 토의, 심의하게 될 것"이라며 "이같은 이사회 운영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 선진 언론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94년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중앙일보와 인연을 맺었던 홍 회장은 99년 10월 회장에 올랐다. 또 2002년 5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에 취임했고 2003년부터 한국신문협회장으로도 활동해 왔으나 최근 이들 직책에서 모두 물러났다.

다음은 홍 회장의 고별사 전문이다.


지금 저는 삶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변화의 첫발을 내딛고자 합니다.

지난해 주미 대사로 나라의 일을 도와달라는 소명을 받았을 때, 왜 우리의 선비들이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았는지 비로소 깨달으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지난 11년 동안 신문의 섹션화,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편집, 오피니언 페이지 강화 등 일제시대의 신문 제작 방식을 탈피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의 신문을 향한 일련의 개혁작업을 진행해 한국 신문제작 전체에 새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중앙일보는 그동안 신문이 사실과 주장, 감정을 뒤범벅하여 국민에게 혼란을 주었던 점을 반성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분열을 통합하는 역할과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노력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신문으로 거듭났습니다.

저는 이러한 중앙일보의 혁신작업과 세계 104개국 1만8천여 개의 신문이 가입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신문의 질적 향상과 언론자유의 신장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저의 삶을 돌아보면 많이 부족하고 안타까운 시간들로 점철됩니다. 격변기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나 언론인의 한사람으로서 어려운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몸이 고단하면 마음이 더 깊어진다는 말처럼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부족함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이런 제가 그동안 신문 경영에서 얻은 작은 식견과 세계신문협회 회장으로 봉사해온 국제적 체험이 만의 하나라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의 깊은 구렁을 메우는 힘이 되어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금이 간 민족 공동체와 국제적인 외교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티끌 만한 힘이 되어 줄 수만 있다면, 제게 주어진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한동안 저의 부임을 놓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지만 지금 저는 집을 떠나 무거운 봇짐을 등에 지고 낯선 세상으로 나아가는 심정입니다. 제가 진 봇짐에는 우리 국민 모두의 염원이 담겨 있기에 무거운 책임감으로 제가 가진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해 저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진심 어린 대화로 문제 해결

제가 가는 길 앞에는 여전히 무수한 대립과 갈등의 골이 펼쳐져 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선인들의 지혜와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계실 국민들의 마음을 슬기롭게 모은다면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경험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고, 나라와 민족간에도 서로 다른 역사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작은 가정에서부터 국가간, 민족간에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혀끝에서 이루어지는 말에 현혹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며 진심 어린 대화를 통한다면 그 어떤 어려운 문제도 결국에는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나갈 거대한 배를 함께 타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배가 목적지를 향해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그 모두가 소중하며, 제 역할을 다할 때 거대한 폭풍을 만나도 끄덕없이 이겨내고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고 격려하며, 우리의 항해가 무사히 목적지에 닿아 다같이 잘사는 따뜻한 나라, 우수한 기술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경제 강국, 동북아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함께 가야 할 것입니다. 저도 주미 대사로서 제게 주어진 임무와 역할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중앙일보 논조 변함 없을 것

그동안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양극을 통합하는 열린 생각, 열린 신문의 중앙일보의 노선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애정과 성원이 있는 한 중앙일보는 기사의 질이나 의제 설정과 비판의 기능에서 결코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의 희망처럼 따뜻한 사회와 희망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어 가는 한해가 되길 함께 기원합니다.

2005년 2월 14일 홍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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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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