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들 타령, 아내는 수술 타령

내일 모레면 쉰인데 둘이라도 잘 키워야죠

등록 2005.02.16 18:40수정 2005.02.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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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산하 '가입학'하는 날이에요."


출근하는 나를 보며 아내가 말했다. 나는 작은아이 '산하'를 불렀다. 살포시 안아주었다. 많이 컸다. 이제는 제법 힘을 써야만 이놈을 들어올릴 수 있다. 그런데 요놈이 여간 맹랑한 게 아니다. 어제(15일)는 내게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빠, 와 오마이뉴스에 내가 아프다고 글을 썼노? 창피하다 아이가. 벌(罰)루 시루떡 사도(사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시루떡을 사러가야 했다. 그래도 이건 약한 편이다. 요놈이 나 없는 사이에 <오마이뉴스>에 들어가서는 내가 쓴 글들을 훔쳐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빠, 내 이름 빌려서 글을 썼으깨네 내도 원고료 도(줘)."

어쨌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놈이다. 나는 아내에게 '가입학'에 잘 갔다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으레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뜨뜻한 온돌방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어디 세상일이란 게 그런가. 이렇게 건사하게 직장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해야 할 판이다.


a 제 사랑하는 두 아이입니다.

제 사랑하는 두 아이입니다. ⓒ 박희우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가 부지런히 내가 살고 있는 23층까지 올라온다. 그때 문득 아내가 한 말이 떠오른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였다.

"당신 정말 수술 안 하실 거예요?"
"수술?"
"정관수술 말이에요."


아내는 둘째를 낳고 2년이 지나자 내게 정관수술을 하라고 했다. 그때 나는 아내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런 중대한(?) 일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아내는 내게 핀잔을 주었다. 의논할 게 따로 있지 그걸 가지고 누구와 의논할 거냐고 내게 대들었다. 당신이 지금 나이가 몇 살이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나는 아내에게 '그럼 당신은 왜 딸만 낳았느냐?'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아내가 내게 이렇게 반박을 할 것 같아서였다.

"책임은 남자에게 있답니다."

내 나이 올해로 마흔 여덟 살이다. 큰아이는 열 살, 작은아이는 여덟 살이다. 나는 아이들을 무척 사랑한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세상 부모들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놈들을 보며 결의(?)를 다지곤 했었다.

"이놈들만은 잘 키워야지."

그때 나는 티베트의 고승인 '달라이 라마'라는 스님을 떠올리곤 했었다. 스님께서는 '많이 낳고 잘 키우지 못하면 죄악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가족이 많으면 그만큼 아이를 키우기가 힘들다.

우리는 5남 2녀다. 집은 가난했고, 아이는 많고. 우리 형제들은 그랬다. 제대로 된 교육은 고사하고 생일밥 한 번 찾아 먹질 못했다. 그게 한이 맺혀 나는 절대 많이 낳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이런 나를 주위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이었다.

어머니부터 시작해서 형님들까지 내게 아들이 있어야 한다며 은근슬쩍 말하는 것이었다. 내 귀가 너무 얇은 탓일까. 차마 아들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간의 모진(?) 결심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보다 못해 아내가 손수 피임시술을 해버렸다. 그때 아내가 피임시술의 유효기간은 5년이라고 내게 말했다.

"벌써 5년이 지났나?"
"당신도 참 답답하우. 작년에 했으면 얼마나 좋아요. 지금은 20만원도 넘는데요. 10배도 더 올랐어요."

엘리베이터가 23층에 멎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고 나는 휴대폰을 꺼낸다.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한번 병원을 알아봐. 내 나이 내일 모레면 쉰 살이야. 두 놈이라도 잘 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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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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