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도서관’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앙지’로 검색한 화면. <성종실록>에는 앙지의 금강산 구경과 관련한 기사가 모두 12건이 있습니다.백유선
성종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금강산 구경을 허락하였으나 신하들 사이에서 복잡한 논쟁이 시작됩니다.
침략의 가능성이 있는 왜인에게 우리 나라 땅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일반적인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앙지는 이미 나이가 든 승려이고 금강산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지극하니 보여주기는 하되, 원주, 충주 쪽으로 돌아가도록 하면 모두 험한 길이므로 도리어 우리 나라를 범할 수 없다고 여길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결국 성종은 이 문제를 원로들과 다시 의논하도록 합니다. 한명회 등이 금강산 유람을 허락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성종은 다시 허락합니다.
그러나 또 다시 반대 의견이 나오게 됩니다. 이때 신하들의 제기한 반대 이유는 크게 세가지였습니다. 경비가 많이 든다는 것과 눈으로 인해 재난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 특히 모든 섬의 왜인들이 앙지를 본받아 잇달아 구경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성종은 이를 또 다시 의논하도록 합니다. 벌써 여러 차례 임금의 결정이 번복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름 아니라 일본은 잠재적인 적국이기 때문이었던 것이죠.
논의 결과 한번 허락했으니 번복하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에서부터 눈이 쌓여 길이 막혀 어렵다고 달래 보자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게 됩니다.
반대하는 신하들은 "앙지가 가는 도중에 만약 도둑을 만나 해를 당하거나 혹시 눈에 깔려 죽는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임금은 "앙지가 비록 해를 당한다 하더라도 어찌 잘못이 우리에게 있겠는가? 만약 앙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분을 품을 것이니, 유감을 품고 변란을 선동하고 일을 낼 것 같다"며 금강산에 보내자는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지금 길이 멀고 통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다시 달래서 중지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산과 계곡의 도로는 경솔하게 적국의 사람들에게 알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반대합니다.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소란을 피울까 걱정하는 임금에게 그래도 국토를 보여주는 것은 안 된다는 내용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경하다가 눈 속에서 죽더라도 유감이 없겠습니다
결국은 눈이 깊이 쌓였고 길이 험하다는 이야기를 앙지에게 전하고, 그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기로 합니다. 그런 뜻을 임금의 글로 전하게 됩니다.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네가 도주(대마도주)의 청을 매우 간절하게 말하였기 때문에 금강산을 구경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강원도의 지역은 산길이 매우 험하며 겨울에는 눈이 산봉우리와 언덕같이 쌓여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때로 실종되기도 하며 갑자기 길에서 죽기도 하므로 네가 그곳으로 가는 데 대해서 삼가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길에서 불행하게 이와 같은 환란이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