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와 나는 생일이 같다

[오마이뉴스와 나] 다섯살배기 시민기자가 말하는 지난 5년

등록 2005.02.20 03:46수정 2005.02.2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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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와 나는 생일이 같다


2000년 2월 어느 날, 필자는 아주 특별한 매체 하나를 접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등장한 신생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순간 기대와 의구심이 엇갈렸다. '아버지가 구독하시던 신문을 읽을 때마다 생긴 여러 의문과 답답함을 이 매체는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감이 앞섰다. 그러나 '과연 누가 취재를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구심도 함께 생겼다.

이런 기대와 의구심은 <오마이뉴스>를 지켜보게 만들었다. 꼼꼼히 <오마이뉴스>를 지켜보던 필자는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하게 됐다. <오마이뉴스>의 창간일인 2월 22일은 필자의 생일이라는 점이었다. 또 '아픔'을 딛고 태어났다는 공통점에 더욱 애착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임신 중에 큰 수술을 받으셨다. 자칫 필자나 어머니 둘 다 위태로울 수 있는 그런 수술이었다. 주위의 많은 분들 심지어 의사까지도 '아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만류할 때 어머니는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수술대에 오르셨다고 한다. 필자는 그렇게 태어났다.

"나는 그때 한국 사회의 여론시장 지도가 8:2로 짜여져 있음을 실감했다"라는 오연호 대표의 글귀처럼 2000년 우리 사회의 언론 지형은 대다수의 보수언론의 판이었다. 당시의 언론 지형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은 우리 또래가 지닌 '아픔' 중의 하나였다.

'오마이뉴스만큼은 이 아픔을 고쳐 주리라'는 필자의 기대를 <오마이뉴스>는 창간호부터 져버리지 않았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올라오는 기사들이 언론에 대한 필자의 기대를 매우 흡족하게 만족시켰고 나는 곧 <오마이뉴스>의 애독자, 아니 열독자가 되었다. 하루에도 몇 십번씩 <오마이뉴스> 사이트를 찾아와 사회 저변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느새 <오마이뉴스>에 대한 필자의 애착은 일상적인 삶으로도 연결되어 있었다. 선후배들과의 만남에서도 언론에서 보고 들은 기사를 인용해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면 무심결에 나는 항상 '오마이뉴스'라는 이름을 여러 차례 거론했었던 것 같다.

"아버지, 저 기자됐어요"


어느 날 선배 한분이 나에게 조언을 하나 했다. "언론에 관심이 있고 하니 너도 <오마이뉴스>에 글을 써 보는 것 어때?"라는 말이었다. "아직 제 글솜씨가 부족해서요"라며 대답을 회피했지만 가슴 속에서는 '나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앞서고 있었다. <오마이뉴스>라면 나의 꿈을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필자가 쓴 첫번째 기사 <소설책 한 권 끼고 떠난 '묵호항'>. 필자의 컴퓨터에는 아직도 당시 화면을 캡쳐해 둔 파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필자가 쓴 첫번째 기사 <소설책 한 권 끼고 떠난 '묵호항'>. 필자의 컴퓨터에는 아직도 당시 화면을 캡쳐해 둔 파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기획 '이 여름을 시원하게'의 기사를 공모한다는 공지를 접하게 되었다. 순간 '나도 쓸 수 있다!'라는 생각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나의 첫 기사가 <소설책 한권 끼고 떠난 '묵호항'>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처음 <오마이뉴스>를 알게 된 지 3년 5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관련
기사
- 소설책 한 권 끼고 떠난 '묵호항'

새벽 3시 무렵, 기사를 완성하고 '편집부로 보내기' 버튼을 클릭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마이뉴스> 사이트에 접속했다. 내가 쓴 기사가 '잉걸'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낱 '대학생'의 글을 유명 뉴스 사이트에서 반영해 준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필자의 기사가 '잉걸'의 목록에 올라온 것을 확인한 이후 필자는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저 신기한 마음에 몇 번이고 '기사가 잘 있는지' 몇 번이고 확인을 했다. 어느 순간 나의 기사가 섹션톱으로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위치에서 기사가 실린 화면을 캡처하기 시작했다. 이 화면들은 여전히 필자의 컴퓨터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또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필자의 기사가 검색되는 것이 신기해 몇 번이고 이름을 쳐 검색해 보기도 했다.

나의 글이 <오마이뉴스>에 올라갔다는 그 흥분되던 사실을 혼자 간직할 수는 없었다.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친구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저 기자 됐어요."

하지만 필자의 말에 부모님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대학생이 기자(?)'라는 말을 신뢰하지 못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훗날 어머니께 전해들은 사실이지만 필자의 아버지는 그 첫 기사를 포함해 한동안 꽤 많은 기사를 프린트하셔서 들고 다니시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셨다고 한다.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는 삶을 일깨워 주는 필자의 좋은 스승이다.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는 삶을 일깨워 주는 필자의 좋은 스승이다.박성필
첫 기사를 쓴 이후 필자는 항상 '무엇을 쓸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기사의 섹션톱이 안겨준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두번의 연이은 '생나무'는 필자를 조금이나마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에서 겪은 좌절을 치유해 준 것 역시 <오마이뉴스>였다.

<오마이뉴스>만의 독특한 섹션인 '사는 이야기'는 매일 같이 따뜻하고 행복한 기사들로 넘치고 있었다. 필자가 쓴 기사가 생나무에 머무르거나 일상 생활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늘 '사는 이야기'를 먼저 찾아 읽으며 고민을 달래보았다.

그곳에는 항상 우리 모두의 어머니, 누이의 글이 있었다. 또 아버지, 형의 글이 있었다. 그리고 '사는 이야기'들을 통해 '세상사는 법'을 조금씩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필자가 '사는 이야기'에 첫 기사를 올린 것은 1년 4개월이 지난 후였다.

'사는 이야기'에 실려 있는 뉴스게릴라들의 기사를 통해 배우는 점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그 분들에게 많은 점을 배우고 있다.

"이거 취재하는 거 아니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다양한 글을 쓰면서 필자 주변의 분들은 항상 농담처럼 하는 말씀이 있다. 필자가 질문을 하면 "이거 취재하는 거 아니지?"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사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언론을 겁내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계속 쓸 수 있게 했던 것은 <오마이뉴스>의 실험이 만들어 낸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이끈 변화 때문이다. 지난 해 10월 필자는 학교에서 처음 리포트를 돌려받고 난 뒤 감동을 받고 <그 수많은 보고서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 후 한달 가량이 지난 어느 수업 시간이었다. 종강을 앞둔 한 수업 시간 교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기말고사 시간에 채점한 리포트를 돌려줄 예정입니다"라는 말씀이었다. 환호의 소리가 높았지만 부끄럽다는 반응도 많았다.

그런 반응에 교수님의 대답은 정말 뜻밖이었다. "박모군이 쓴 글도 있고…" 상담 중에 말씀드렸던 내용을 잊지 않으시고 교수님은 어느새 필자가 쓴 기사들의 애독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많지만 가장 큰 변화는 컴맹인 아버지를 컴퓨터 앞에 앉으시게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컴퓨터 앞에 앉으셔서 마우스로 클릭하고 계신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직은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도 익숙하지 않으시지만 당신의 아들이 올린 기사를 읽기 위해 아버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오마이뉴스> 사이트를 방문하고 계셨던 것이다.

'컴맹'인, 또 보수 언론의 일간지를 반평생 애독하셨던 아버지가 진보 언론 <오마이뉴스>를 읽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으시도록 한 힘은 <오마이뉴스>의 실험 때문일 것이다. 그 실험은 계속될 것이며 많은 면에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이 땅의 모든 뉴스게릴라 분들께 <오마이뉴스>의 창간 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아울러 오마이뉴스와 생일이 같은 필자의 생일도 자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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