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는 삶을 일깨워 주는 필자의 좋은 스승이다.박성필
첫 기사를 쓴 이후 필자는 항상 '무엇을 쓸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첫 기사의 섹션톱이 안겨준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두번의 연이은 '생나무'는 필자를 조금이나마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에서 겪은 좌절을 치유해 준 것 역시 <오마이뉴스>였다.
<오마이뉴스>만의 독특한 섹션인 '사는 이야기'는 매일 같이 따뜻하고 행복한 기사들로 넘치고 있었다. 필자가 쓴 기사가 생나무에 머무르거나 일상 생활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늘 '사는 이야기'를 먼저 찾아 읽으며 고민을 달래보았다.
그곳에는 항상 우리 모두의 어머니, 누이의 글이 있었다. 또 아버지, 형의 글이 있었다. 그리고 '사는 이야기'들을 통해 '세상사는 법'을 조금씩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필자가 '사는 이야기'에 첫 기사를 올린 것은 1년 4개월이 지난 후였다.
'사는 이야기'에 실려 있는 뉴스게릴라들의 기사를 통해 배우는 점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그 분들에게 많은 점을 배우고 있다.
"이거 취재하는 거 아니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다양한 글을 쓰면서 필자 주변의 분들은 항상 농담처럼 하는 말씀이 있다. 필자가 질문을 하면 "이거 취재하는 거 아니지?"라고 되묻는 것이었다. 사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언론을 겁내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계속 쓸 수 있게 했던 것은 <오마이뉴스>의 실험이 만들어 낸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이끈 변화 때문이다. 지난 해 10월 필자는 학교에서 처음 리포트를 돌려받고 난 뒤 감동을 받고 <그 수많은 보고서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 후 한달 가량이 지난 어느 수업 시간이었다. 종강을 앞둔 한 수업 시간 교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 "기말고사 시간에 채점한 리포트를 돌려줄 예정입니다"라는 말씀이었다. 환호의 소리가 높았지만 부끄럽다는 반응도 많았다.
그런 반응에 교수님의 대답은 정말 뜻밖이었다. "박모군이 쓴 글도 있고…" 상담 중에 말씀드렸던 내용을 잊지 않으시고 교수님은 어느새 필자가 쓴 기사들의 애독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많지만 가장 큰 변화는 컴맹인 아버지를 컴퓨터 앞에 앉으시게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컴퓨터 앞에 앉으셔서 마우스로 클릭하고 계신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직은 컴퓨터를 켜고 끄는 것도 익숙하지 않으시지만 당신의 아들이 올린 기사를 읽기 위해 아버지는 컴퓨터 앞에 앉아 <오마이뉴스> 사이트를 방문하고 계셨던 것이다.
'컴맹'인, 또 보수 언론의 일간지를 반평생 애독하셨던 아버지가 진보 언론 <오마이뉴스>를 읽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으시도록 한 힘은 <오마이뉴스>의 실험 때문일 것이다. 그 실험은 계속될 것이며 많은 면에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이 땅의 모든 뉴스게릴라 분들께 <오마이뉴스>의 창간 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아울러 오마이뉴스와 생일이 같은 필자의 생일도 자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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