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배가 넘는 나이차에도 우리는 친구

900여년 된 은행나무가 친구인 90세 문연심 할머니

등록 2005.02.20 21:12수정 2005.02.2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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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왔어?"


a 낙안읍성 최고령 문연심(90) 할머니

낙안읍성 최고령 문연심(90) 할머니 ⓒ 서정일

깜짝 놀랐다. 보름도 넘었거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에서 보는 얼굴도 많으련만 첫눈에 알아보고 '왜 또 왔냐'고 큰소리를 치는 낙안읍성 최고령자 문연심(90) 할머니, 도저히 구순이라 믿기지 않는다.

그러면서 한번 해 갔으면 말것이지 또 뭘 적냐면서 '상 줄 거냐'고 묻는데 취재라는게 한번 방문하고 사진찍고 적어가면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 문할머니에게서 들을 수 있는 당연한 말이다. 기사 작성이 그리 쉬운게 아니라고 말씀드렸더니 '기사'가 뭐냐고 되묻는다. 차분하게 조목 조목 설명을 하는데 20여분이 흐른다.

a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을 줍고 있는 문할머니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을 줍고 있는 문할머니 ⓒ 서정일

한시간전, 간간히 햇살이 비추긴 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낙안읍성에서 풍수적으로 돛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에서 한참동안 문할머니는 뭔가를 연신 줍고 있다. 팔구백년도 넘었기에 밑둥지만 해도 어른 대여섯명이 모여야 안을 수 있다. 나이로 치면 열배가 넘지만 은행나무는 문할머니의 오랜 친구다.

열여덟살에 시집을 와서 한번도 이곳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문할머니, 손이 귀한 집이기에 여섯명의 아들과 두명의 딸을 낳았다고 하는데 가난한 살림이지만 자식 모두를 눈 뜨게 하기 위해서 할아버지와 함께 숯장사, 나무장사, 무우장사등 안해본 것 없이 다 해봤다고 한다.

"눈을 뜨게 하다니요?" 하고 물으니 "눈이 안보이는게 아니고 공부말여"하고 눈을 부비는 시늉까지 해 보인다. 그래서 모두 고등교육까지 마쳤다고 하니 없는 살림에 자식 가르치려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a 은행을 한웅큼 줍고 밭고랑을 살피는 문할머니

은행을 한웅큼 줍고 밭고랑을 살피는 문할머니 ⓒ 서정일

"시집와서 부터 저 나무 아래서 은행을 줍기 시작했으니 70년도 넘었구만" 싸릿문을 열면 그곳이 은행나무이기에 자연스레 친구가 될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궂은일이나 슬픈일 그리고 기쁜일이 있을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은행나무를 보면서 대화하듯 혼잣말을 했는데 그러면 그 얘기를 들어주는 듯 했다고 한다.

당산나무 신이 할머니의 친구인 셈이었던 것,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지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선 당산제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귀신이 없으니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무당의 말을 듣고 나서 부터라고 하는데 할머니는 무당이 쫓아 버렸다고 여간 서운해 하는 게 아니다.


a 문할머니는 이곳에서도 당산제를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문할머니는 이곳에서도 당산제를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서정일

구순의 할머니에게 전혀 아픈곳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문할머니는 자꾸 은행나무만 쳐다본다. 아마도 은행나무 신이 뭔가 서운한게 있어 떠났고 그로인해 자신이 아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발목이 시큰거려 걸음걸이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할머니는 오늘도 은행나무 주위를 살피고 있다. 화를 풀고 어서 돌아오라는 듯 한 표정이다. 은행나무 신이 있든 없든 마음같아선 이곳에서도 당산제를 지내 문할머니의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덧붙이는 글 | 낙안읍성은 다녀가신 분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기 위해 홈페이지 (www.nagan.or.k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낙안답사기'는 소중하고 큰 자료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낙안읍성은 다녀가신 분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기 위해 홈페이지 (www.nagan.or.k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낙안답사기'는 소중하고 큰 자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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