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동호회의 정월보름맞이 풍경

등록 2005.02.22 11:14수정 2005.02.2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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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동호회 게시판에 붙어 있는 공지를 봤을 때만 해도 윷놀이에 대해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동호회에 가입한지 육 개월 남짓 된 저로서는 빠질 수도 없고, 참가하는 데 의미를 두고자 했거든요.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 운동도 했습니다. 아홉 시부터 윷놀이를 시작 한다고 하니 집에 갔다 다시 와야 하나 하다가 우리 부부는 그냥 체육관에 남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아침을 소머리국밥으로 준비했다고 합니다. 준비하신 분들의 노고로 회원 팔십 여명이 맛있는 아침을 먹었습니다.

한 회원부부가 손으로 만든 전통 엿을 한 보따리 가져와 더욱 명절 기분이 났습니다. 어릴 적하던 엿치기를 해보자느니 누구 엿의 바람구멍이 큰 가 대보자느니 하면서 먹은 엿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a 회원들의 라켓을 쌓아놓고 무사고를 기원합니다.

회원들의 라켓을 쌓아놓고 무사고를 기원합니다. ⓒ 허선행

아홉시부터 회원들의 안녕과 무사를 위한 고사를 지내고 윷놀이를 한다고 합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했습니다. 시루떡과 마른 북어, 과일을 놓고는 회원들의 라켓을 모두 가져 와 옆에 놓으라고 합니다.

a 배드민턴 동호회의 어르신이 먼저 술 한 잔을 올립니다.

배드민턴 동호회의 어르신이 먼저 술 한 잔을 올립니다. ⓒ 허선행

a 동호회 회장님이 올 한 해 회원들의 무사를 기원합니다.

동호회 회장님이 올 한 해 회원들의 무사를 기원합니다. ⓒ 허선행

a 돈 봉투를 잔뜩 문 돼지머리

돈 봉투를 잔뜩 문 돼지머리 ⓒ 허선행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의 인사로 시작해서 회장님 임원들 회원들 순서로 절과 기도를 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시는 분들도 한울타리에서 운동을 한다며 체육관 안으로 인사를 오셨습니다.


축구임원 세 분이 나란히 서서 절을 하는데 뒤에서 바라보던 회원들이 흰색. 빨강. 노랑 양말이 예쁘다며 얼른 사진을 한 장 찍으라고 야단법석입니다.

윷놀이 청백전에 앞서 편을 나누려는데, 남녀로 편을 나누어 보자는 의견들입니다. 남자가 더 많고 여자의 수가 적었지만 두 편으로 나뉘어 윷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a 동호회 회원들과 윷놀이가 벌어졌습니다.

동호회 회원들과 윷놀이가 벌어졌습니다. ⓒ 허선행

여러 곳에서 윷놀이를 놀아 본 경험이 있지만 이곳 나름의 규칙이 있었습니다. 카펫 밖으로 나가면 '낙방'으로 무효라는 엄포와 '잉태', '지옥', '화살표' 등 이곳의 특별한 윷놀이 규칙에 따른 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나 '윷' 등 한사리를 하거나 다른 편의 말을 잡을 경우에는 술을 한잔 마셔야 한다는 규칙도 만들었습니다.

앗! 그런데 저도 '모'를 하고 말았습니다. 컵에 따른 술을 억지로 먹다시피하면서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서로 상대편의 말을 잡으려 말판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도만 해라"
"잡히면 큰일 난다"
"한사리! 한사리!"
환호와 박수. 비명까지도 모두를 즐거운 시간이 되게 했습니다.

상대편에서 놀던 남편이 '모'를 했습니다. "맥주 한잔 줘야지"하는 주문에 "제가 따를게요"하면서 얼른 술을 따랐습니다. 제 딴에는 남편에게 조금 따라 주려고 꾀를 낸 것인데 다른 분들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벌로 더 가득 채워진 잔을 비우는 남편은 그래도 흐뭇한 모양입니다.

우리 팀에서는 여자 편이 이겼습니다. 저쪽에서는 남자 편이 이겼다고 합니다. 여럿이 하는 윷놀이라 서로 잡으려 하고 잡히지 않으려 하는 바람에 더욱 흥이 나고 편끼리 결속력이 대단했습니다. 참가만 하려던 저도 적극적인 응원과 윷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상으로 받은 상품을 받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보입니다. 이기고 지는 것에 관계 없이 똑같이 상품을 나누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렇게도 재미있게 윷놀이를 하더니 아무래도 본업인 운동이 더 생각나나 봅니다. 다시 라켓을 찾아 들고 게임을 하러 갑니다.

고사 지낸 떡과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니 보기가 좋습니다. 또한 바깥 축구팀에서도 석굴을 굽는다며 우리 회원들을 초대하였습니다. 정이 오가니 비록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이 훈훈합니다.

대부분 부부끼리 운동을 하러 나오는 분들인데 함께 나오지 못한 분들은 떡을 가져가시라며 서로 싸주는 인심에서 우리네 넉넉한 마음도 보았습니다.

안하던 화장까지 예쁘게 하고 온 여자회원들의 모습이 한층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올 한해도 모두 건강한 한 해가 되십시오.' 저의 기도도 한 몫을 했으면 합니다. 아침마다 만나게 되는 회원들이니 그들의 건강한 삶이 곧 내게도 건강을 선사하는 것일 테니까요.

"나는 몰래 카메라맨이야"하면서 회원들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느라 애쓰는 회원, 회원들 골고루 빠짐없이 준비한 음식을 먹게 하느라 여념 없는 '왕언니들'.

한 치의 양보 없이 게임에 몰두하다가도 게임만 끝나면 세세한 가정이야기까지 하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회원들입니다.

우리 회원들과 함께 한 윷놀이는 잊지 못할 정월보름의 풍경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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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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