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38회)

등록 2005.02.23 09:12수정 2005.02.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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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시오."

남자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북조선에서 왔습니다."

김 경장과 채유정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둘은 구겨진 양미간을 꿈틀거렸고, 김 경장이 겨우 표정을 수습하여 다시 물었다.

"북조선이라면 북한……."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무슨 볼일이 있어 우리를 찾는 겁니까?"


남자는 대답 대신 자신의 말만 했다.

"죄송하지만 저희들과 함께 어디론가 같이 가주셨으면 합니다."


김 경장이 손사래를 쳤다.

"북에서 온 당신들을 무엇을 믿고 따라간다는 겁니까?"

김 경장의 얼굴은 불신과 의혹으로 굳어져 있었다. 동시에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흥분하여 얼굴 표정이 심하게 흔들렸다.

"물론 선뜻 저희들을 따라가시기는 힘드실 겁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들으시면 순순히 따라오시리라 믿습니다."

이번에는 채유정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신다는 겁니까?"

"돌아가신 안 박사님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품고 계셨던 비밀을 알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둘의 표정이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둘은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멍청한 표정을 짓다가 난처해 했다. 믿기지 않는 얼굴이 더욱 분명해졌다.

"박사님과 관련된 일을 왜 그쪽에서 알고 있다는 것이죠?"

"저희들이 알고 있다고 말씀 드린 적은 없습니다. 그 일을 잘 알고 계신 분을 저희들이 모시고 있을 뿐입니다."

김 경장은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북한에서 나섰다면 어떤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는 배에 단단히 힘을 주며 물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면 된다는 겁니까?"

"단동입니다."

옆에 있는 채유정이 말했다.

"단동이라면 북한과 가장 가까운 도시가 아닙니까? 바로 건너편에 신의주가 있는……."

"우리가 모시는 분은 바로 그 신의주에 계십니다."

"그럼 우리더러 북한으로 건너가자는 말씀입니까?"

"그분은 이곳 중국으로 들어올 수 없는 형편입니다. 죄송하지만 두 분께서 그곳까지 움직여 주셔야 겠습니다."

김 경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수는 없소이다. 난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제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게 우리 나라에서는 얼마나 큰 죄라는 걸 댁들도 잘 아실 게 아니오?"

"물론입니다. 두 분을 신의주까지 들어오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단동에서 압록강을 지나는 배에 올라타십시오. 그때에 잠깐 그분을 만나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채유정은 잠깐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내쉬면서 일부러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를 만나야 하는 것이죠?"

"두 분이 원하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김 경장이 물었다.

"댁들이 우리를 잘 알고 있다 말입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그분도 댁들을 만나 뵙기를 크게 원하고 있습니다."

김 경장은 문득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의식의 필라멘트가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끊어질 듯 바르르 떨렸다.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난데없는 제안은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그들을 신뢰할 순 없었다.

하지만 현재 자신들의 추적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어떤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서야 할 판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할 형편이라면 그들의 이 제안이 지푸라기가 될지도 몰랐다. 신경이 파들 하게 곤두서며 가슴이 먹먹하도록 쓰라렸다. 하지만 이내 그의 마음속에 무언가 '팍'하고 여물어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얼른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심장 고동이 시계의 초침을 초월해 한층 더 빨라졌다. 그는 잠시동안 채유정의 얼굴을 건너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 분을 만나 뵙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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