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집과 함께 태워 올린 신입생들의 염원

대안학교 원경고, 신입생 입학 전 훈련 시행

등록 2005.02.24 15:42수정 2005.02.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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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입생 입학 전 훈련-은혜나누기

신입생 입학 전 훈련-은혜나누기 ⓒ 정일관

며칠 날이 따뜻하여 입춘 지난 겨울이라 봄이 금방 오겠구나 하며 둘러본 황정리 들판이 문득 훈훈하여 저 속에 생명력이 그득 담겨 있다가 시절 인연을 따라 모조리 피어나겠지 하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는데, 갑자기 일기 예보는 전국에 한파가 몰아쳐 꽁꽁 얼어붙게 한다 하여 잔뜩 긴장을 하였습니다.

종업식을 끝내고 재학생들을 모두 집으로 보내고 난 다음날인 2월 20일부터 22일까지 2박 3일간 경남 합천으로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에서 신입생 '입학 전 훈련'(오리엔테이션)을 시행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신입생 훈련에 날이 너무 추워서 움츠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많았는데, 다행히 전날의 간절한 기도 덕인지, 일기 예보의 엄청난 협박(?)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날씨를 주시어 감사하였습니다.

오후 2시가 되어서 하나둘씩 학교에 도착한 신입생들은 다소 긴장되고 굳어 있었습니다. 방을 배정하고 이름표를 붙이고 짐을 부린 뒤 강당에 모두 모여 신입생 35명과 전·편입생 4명 등 39명의 학생들과 따라온 학부모 등 약 100명의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강당을 채웠을 때, 도리어 훈련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듯하였습니다.

a 은혜 나누기-명곡 저수지에서 명상하기

은혜 나누기-명곡 저수지에서 명상하기 ⓒ 정일관

신입생 입학 전 훈련은 "은혜 나누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은혜나누기"는 학교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명곡저수지까지 학부모와 신입생이 서로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가 명곡저수지에 모두 앉아 명상한 후 다시 학교까지 걸어오면서 또한 서로를 업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아무리 날이 좋았다 하지만 전국을 얼어붙게 한 한파가 도사리고 있어서인지 황정리 너른 들판을 가로 질러가는 길에 찬바람이 몰아쳐서 머리와 옷자락이 사정없이 날리기도 하였지만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놓으면 큰일날세라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걷다보니 도리어 땀이 났습니다.

한 번도 아이의 손을 잡고 이렇게 오래 걸어본 적이 없다며 고백한 한 학부모는 처음엔 잡았던 아들의 손이 차가웠지만 얼마 안 가서 이내 따뜻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원경고등학교를 만났을 때 느꼈던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바뀌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명곡 저수지 가에 고요히 앉아 삶과 은혜와 가족과 자신에 대해서 명상하면서 더욱 깊어졌으며, 돌아오는 길에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업어줄 때에도 더 없이 밝고 환한 표정으로 정을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a 교가를 배우고 있는 새내기들과 학부모님들

교가를 배우고 있는 새내기들과 학부모님들 ⓒ 정일관

원경고등학교에서 신입생 입학 전 훈련의 처음을 "은혜나누기"로부터 시작하는 뜻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에 세워 둔 벽을 허물고 따뜻한 교류를 하게 하여 그동안의 어색함과 상처를 치유하면서 마침내 삶을 함께 살아가는 연대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이죠.

a 서로 소개하며 마음 나누기

서로 소개하며 마음 나누기 ⓒ 정일관

저녁 식사 후 모여서 몸과 마음을 푸는 레크리에이션을 하고 "은혜나누기"의 느낌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를 소개하고 지난 시기의 우여곡절들을 토로하며 조금씩 희망을 이야기하느라 훈련 첫날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a 달집에 매단 새내기들의 소원

달집에 매단 새내기들의 소원 ⓒ 정일관

다음날엔 원경고등학교 박영훈 교감의 마음공부 특강을 듣고 오후에는 달집 만들기를 하였습니다. 조를 나누어 톱과 낫을 들고 주변 산과 들을 다니며 억새를 베고, 삭정이와 나뭇가지들을 모아와서, 선생님들이 틀을 잡아둔 달집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각자의 소원을 적은 종이를 달집에 매달았습니다.

비록 정월대보름 이틀 전이라 온전히 채운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동녘 하늘에 둥실 떠오는 달을 보면서 적중면 마을 농악대의 신명나는 풍물 속에 교장 선생님부터 시작하여 선생님들과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이 돌아가며 고사를 지낸 후에 달집을 태웠습니다.

a 타오르는 달집과 염원들

타오르는 달집과 염원들 ⓒ 정일관

달집은 뜨겁게 타오르고 신입생들의 염원도 달집과 함께 타올랐습니다. 이에 모두 손을 잡고 농악대의 뒤를 따라 한바탕 지신밟기를 하여 신명도 불태웠습니다. 태운 달집이 사위어질 때까지 달집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면서 신입생들과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a 한 마음 한 뜻으로 지신밟기

한 마음 한 뜻으로 지신밟기 ⓒ 정일관

훈련 3일째 되는 날, 입학하면 한 달간 복도에 게시할 신입생들의 자기 소개서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와 감상담을 작성하고 몇몇은 발표를 하였습니다. 처음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굳어 있던 아이들이 이젠 서로 너무 친해져 있었고, 동지애가 더욱 진하여 진 듯하여 흐뭇하였습니다.

a 훈련을 마치고 학부모들과 함께 한 자리

훈련을 마치고 학부모들과 함께 한 자리 ⓒ 정일관

올해는 더욱이 대안교육에 대한 소신과 관심이 많은 학부모님들이 많이 계셔서 인성교육과 자연친화교육을 표방하는 원경고등학교의 대안교육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하며, 선생님들은 더욱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올해에도 신입생 입학 전 훈련의 첫 날은 매우 날씨가 모질다가 끝나는 날은 포근하여 신입생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의 마음이 날씨와 둘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이번에 새봄처럼 다가오는 신입생들과 함께 일구어갈 대안교육이 아름답게 꽃필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a 원경고등학교의 귀여운 새내기들

원경고등학교의 귀여운 새내기들 ⓒ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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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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