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없는 대안교육을 꿈꾸며

원경고 교사들, 역할극 연수에 참가하다

등록 2005.02.25 13:58수정 2005.02.2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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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이것은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오면서 인류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기도 하고, 참으로 풀기 힘든 난제기도 합니다. 폭력은 우리들의 삶 곳곳에서 그 파괴적인 힘을 자랑하고 있으나 그 힘이 일상적이고 지속적이어서 우리의 인식을 때로는 마비시키기도 하고 또는 새롭고 세련되게 변모하여 그 본성을 숨기기도 하면서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힘입니다.

더욱이 청소년들에게 폭력은 매우 매력적이며, 습득하여 몸에 익히기 쉬운 속성을 가지고 있어 청소년들이 탈선하고 일을 그르치기에 좋은 토양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 텔레비전, 컴퓨터, 영화는 폭력 전파에 놀랍도록 큰 힘을 발휘하는 매체여서 오늘날 청소년들은 거의 폭력 속에서 성장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반상의 갈등을 겪었던 조선시대나 그 뒤를 이은 일제식민지배 시절을 거쳐 곧바로 이어진 한국전쟁, 그리고 군부독재 정권의 폭력적인 정치권력을 겪는 등, 이 땅의 근현대사는 사실 폭력과 억압과 갈등의 역사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평화를 생산하고 건설하고 꽃피운 경험이 어쩌면 전무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인성교육과 평화교육을 시행하는 대안학교도 이와 같은 폭력적인 사회 문화에 예외가 아니어서 함께 살아야 하는 기숙사 내의 문화가 그리 평화로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리적인 폭력이 늘 자행되고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폭력은 늘 있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폭력은 없다할지라도 심리적 폭력, 언어적 폭력, 서열의 폭력, 무관심과 배척의 폭력은 정도 차이가 있을지라도 질기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이 폭력은 청소년들과 그 문화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와 어른들 속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리어 어른들과 교사들 속에 있는 폭력성이 청소년들에게 학습되고 전승되고 있지 않습니까?

a 창원청소년종합상담실 사무국장 김성숙 박사

창원청소년종합상담실 사무국장 김성숙 박사 ⓒ 정일관

경남 합천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와 교사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참회하면서 이 고민을 풀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 교사 연석 회의를 열어 폭력을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하였고, 아름답고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위한 강연을 하기도 하였으며, 교사들 스스로 내부 폭력성을 발견하기 위한 모임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23일 합천군 청소년 상담센터에서 주관한 제1회 교사 상담 교실에서 연 "역할극을 활용한 폭력 예방 교육"에 원경고등학교 전 교사가 참가한 것도 바로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원경고등학교와 인연이 있는 최문주 상담사가 주선한 이번 연수는 "역할극"이라고 하는 잘 알지만 또한 생소한 분야를 가지고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의미 있는 연수였습니다.

a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원경고 교사들

열심히 경청하고 있는 원경고 교사들 ⓒ 정일관

이번 연수를 맡아 지도해준 창원 청소년종합상담소의 사무국장이며 사이코 드라마 지도자인 김성숙 박사는 역할극에 대한 간단한 개념 정리와 활용방안에 대해 설명한 뒤, 표현되지 않는, 또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을 "잉여현실"이라고 규정하고 이 잉여현실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항상 지금-여기(here and now)의 심리 상태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역할극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는 반드시 워밍업 단계가 있어야 하고 이어서 실행단계를 두고 끝나면 공유단계를 두어 참가 구성원 모두 그 느낌과 감정을 함께 나누도록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a 역할극 연습 1

역할극 연습 1 ⓒ 정일관

이어서 김성숙 박사의 명쾌하고 재치 있는 진행으로 과일가게놀이, 의자놀이, 손잡고 일어나기, 자기소개하기, 몸으로 만드는 안락의자놀이 등 여러 가지 몸풀기로 유익하고 재미있고 즐거운(유·재·즐) 워밍업을 했습니다.

a 역할극 연습 2

역할극 연습 2 ⓒ 정일관

역할극은 우선 교사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 뒤, 각자 개인적으로 겪은 갈등 상황을 한 가지 선정하여 극을 구성하도록 하였는데, 부부간의 갈등, 시부모와 며느리간의 갈등, 동료들 간의 갈등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a 역할극 연습 3

역할극 연습 3 ⓒ 정일관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폭력 상황을 가정하여 선배와 후배 그리고 교사의 역할을 배분하여 실제 연기를 하면서 그 역할의 상황과 입장, 그리고 감정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이 매우 중요했는데, 김성숙 박사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폭력을 당하는 사람을 너무 가해자와 피해자란 이분법적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그 때 그 입장이나 심정을 알아주고 받아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참가자들의 공감을 얻어냈습니다.

법과 원칙은 엄정하다 할지라도 그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있어 무조건 교사 입장에서 꾸짖고 다그치지 말고 폭력을 행사한 학생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고, 폭력을 사용한 학생에게 교사가 폭력적인 방법으로 징벌한다면 폭력의 전승과 확산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죠.

a 극중 심리를 분석하고 있는 김성숙 박사

극중 심리를 분석하고 있는 김성숙 박사 ⓒ 정일관

역할극이 모두 끝나고 다시 둥글게 앉아 공유하는 자리에서 원경고 교사들은 비폭력 평화의 방법으로 접근하여 폭력을 사용한 학생을 안아준다면 그 학생의 마음도 녹아나게 할 뿐 아니라, 교사들 내면의 폭력성도 해소할 수 있음을 인식했습니다.

"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가 아니라, "네가 어쩌다가 이랬냐?" 하는 심법으로 아이들을 만난다면 맑고 밝고 훈훈한 평화가 생산될 것이고, 평화를 생산하는 곳이 참으로 대안이 될 것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졸업식과 종업식, 신입생 입학 전 훈련을 치르고 난 다음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참가한 연수지만 원경고등학교 교사들 마음 속에 따뜻한 새 움이 움트게 한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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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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