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라일락꽃 그늘 아래 - 33회(6부 : 겨울철새를 꿈꾸며 )

- 첫사랑은 아픈 거예요

등록 2005.02.26 21:41수정 2005.02.2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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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6. 겨울철새를 꿈꾸며

대학 2학년이 되면서 나는 초희와 더욱 가까워졌다. 교육학개론 등 함께 듣는 수업도 많아졌고, 또 같이 활동하는 일들도 빈번해졌다. 그녀는 기숙사 신청을 늦게 하는 바람에, 그리고 또 신입생 우선 배정이라는 원칙에 밀려 기숙사 입사를 놓치고 말았다.


그녀의 집에서는 하숙을 하라고 권하였지만, 그녀는 한 학기 정도 통학을 해보겠다며 천안에서 시외버스 편으로 등·하교를 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다소 힘들어하는 눈치더니, 적응이 되었는지 할만하다고 하였다.

그녀는 2년만에 부모님과 다시 함께 생활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그리고 특별히 귀염둥이 동생 다솜이를 매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별일이 없는 한 그녀를 유성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주었다.

나는 그녀가 버스에 오르고 눈에서 멀어질 때가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녀도 아쉬운 듯 늘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음날이면 볼 수 있는데도 그때는 왜 그렇게 그녀를 떠나보내기가 싫었는지 모른다. '버스가 고장이라도 나거나, 파업이라도 해서 운행을 안 했으면 좋을 텐데' 뭐 그런 생각까지 다 하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니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4월 19일이 다가오자, 대학가에는 연례행사처럼 다시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는 집회와 시위로 들끓었다. 최루탄 가스가 캠퍼스 주변을 황사처럼 맴돌고 있어 늘 강제로 눈물을 빼고 다녀야 했다.

나는 1학년 때, '기독사상연구회'라는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작금의 현실에 눈을 떴다. 일명 당시의 용어대로 하면 의식화된 것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실로 많았다. 우물 안에 있던 개구리가 밖으로 나온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순수문학만을 추종하던 내가 서서히 참여문학, 실천문학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신앙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물렀던 것에 대하여 회개하였다. 전에는 한 점의 비판도 없이 그저 열심히 성경보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착하게 사는 것이 참된 기독교인의 모습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함석헌 선생, 문익환, 강원룡, 문동환 목사, 김동길, 한완상 교수의 저서 등을 접하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구원 없는 개인구원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에도 이르렀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와 '씨알의 소리', 문동환 목사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강원룡 목사의 '역사의 한가운데서', 이철범 시인의 '고난의 시대 문학은 무엇인가' 등 몇몇 책들은 나의 신앙관, 아니 더 나아가서 나의 인생관 전체를 뿌리 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모순, 불의, 폭압이 판을 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 기도만 하고 평안을 추구하는 것은 역사를 외면한 현실도피요,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책을 읽다보니까 '옆에서 누가 울고 있으면 설사 내가 울리지 않았더라고 그와 함께 아파하며 울어주는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이요,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시 중남미 대륙에서 풍미하고 있던 해방신학과 실천신학에도 관심이 많아 관련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일제에 저항하지 않은 것은 친일한 것과 진배없다'는 말처럼 '불의에 침묵하는 것 또한 부도덕한 현 정권에 동조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 그들과 함께 시대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행위'라는 것을 알았다.

몇몇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들처럼 한국교회에도 개혁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경쟁처럼 예배당만 크게 짓고 신자 늘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불의한 정권에 눈감고 묵인하고 협조하는 것은 일제 때 신사참배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다.

지금의 교회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3대 사명, 곧 왕으로서의 사명, 제사장으로서의 사명,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정작 앞의 둘만 강조하였지 세 번째는 사장시키고 있었다.

구약의 악한 왕들이 못된 짓을 일삼을 때 이사야, 예레미아 같은 선지자들은 분연히 일어나 목숨 걸고 그들의 죄악상을 낱낱이 폭로하며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으로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성전 앞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치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잘못된 성전문화를 바로잡으려고 하였다.

또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등 율법주의자들에게 독사의 아들들! 이라는 욕설까지 퍼부으면서 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앞장섰던 것이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의 세 번째 사명에 대해서 지금의 한국교회는 입을 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기도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라고, 그런 부분만 강조했다. 그렇다면 기독교도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장독대에 정안수 떠놓고 기도하던 것이나 성황당에 올라가 아들 하나만 점지해 달라 비는 기복신앙과 무엇이 다를 게 있겠는가?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신학대 교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교회의 신자들을 신처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목사였고, 그 목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신학대학이 교수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잘못 교육받은 목사들이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다고 본 나는 교수가 되어서 참 목사상을 가르치고 정립시켜 한국교회에 개혁의 새바람을 일으키기로 한 것이다.

1학년 때는 확실한 신념이 부족하여, 집회가 있을 때면 멀찍이서 구경하거나 사안에 따라 가끔씩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2학년이 되면서 나는 어느새 열혈투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집회와 시위마다 빠지지 않았고 전경들이 엄호하고 있는 시국강연회에도 목숨 걸고 참석했다.

나는 초희를 가끔씩 집회와 시위현장에 데리고 다녔다. 여자도 역사와 현실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거부감을 갖던 그녀도 차츰차츰 왜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을 알아갔다.

그러다 5월을 맞았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80년 광주에서의 일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시위는 점점 격화되고 있었다. 학생회에서 광주항쟁 당시의 처참한 사진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광주 항쟁 특별 사진 전시회'를 갖기로 하였다.

이것이 가져올 파장을 염려한 당국에서는 전경들을 캠퍼스 안에까지 진입시켜 막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학생과 전경들 사이에는 충돌이 불가피하였다. 밤새 캠퍼스 이곳저곳은 최루탄을 발사하는 포성으로 하늘이 찢겨 나갔고, 그것에 맞서려는 학생들에 의해 애꿎은 보도 블록과 돌들이 수난을 당했다.

진달래꽃

아버지를 앗길 때에도
지아비를 잃을 적에도
여지없이
너는 피어 만발하더니

오늘 너는
내 아들의 주검을 지켜보면서
온 산야를 또 한번 흥건히 적시는구나

너의 존재는 갈가마귀
피 흘리는 마을에는 꼭 날아드니
까마귀,
죽음을 경고하는 새인가 재촉하는 새인가?
아니면, 애도하는 새인가 위로하는 새인가?
뭐, 동참하는 새라고?

내동 가만있다
유독 이 달만 되면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恨맺힌 산척촉!
두견도 입술이 빨갛도록 울고 있다

대체 무슨 원한이
그리 깊게 응어리졌기에
때로는 소낙비 되어
때로는 눈보라 되어
구름처럼 구천을 떠도느뇨

차라리 말하라
누가
너를 벙어리 되게 하였는지?
아니, 누가
나를 이토록 귀머거리 되게 하였는지?

가만히 귀를 떠 보면
大地의 신음 소리
낮달의 비명 소리
神의 탄식 소리까지 분명히 들리건만
어찌하여 너의 울음소리는 들을 수가 없는 건지?
혹, 너무 크게 말해 못 듣는 걸까?

그래, 침묵으로 아우성치는 너는
붉은 햇살이 되어 4월을 노래하고
나는 무당이 되어 진혼곡에 한바탕 가무(歌舞)한다
신명나게, 그야말로 신들린 사람처럼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위로 내려 쏟는
때 아닌 우박 덩이들
그럴수록 전혀 겁 없이
아니, 한층 더 광란하듯
죽음으로, 그러나 부활로, 그리하여 영광으로
달음질하리라

아! 4월의 참 평화는
진정 언제쯤 오려나

덧붙이는 글 |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34회에서 계속됩니다.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34회에서 계속됩니다.

리울(아호: '유리와 거울'의 준말) 김형태 기자는 신춘문예 출신으로 시와 소설을 쓰는 문인이자, 제자들이 만들어 준 인터넷 카페 <리울 샘 모꼬지> http://cafe.daum.net/riulkht 운영자이다. 글을 써서 생기는 수익금을 '해내장학회' 후원금으로 쓰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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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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