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는 사람은 외계인?

마지못해 휴대폰을 갖게 된 사연

등록 2005.03.02 00:17수정 2005.03.0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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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잠자고 있던 휴대폰을 얼마 전 다시금 개통시켰습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랍니다. 그냥 이제는 그만한 일로 별종 취급 받는 것도 그다지 유쾌한 일이 못된다는 것을 점점 더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지난번 은행에 갔을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여기에다 주소와 연락 받으실 수 있는 전화번호를 기입하시면 됩니다."
"저, 휴대폰이 없는데 그러면 집 전화번호만 적어도 되겠죠?"
"휴대폰이 없다구요?"

일에 따르는 서류 작성을 하면서 은행 직원과 나누었던 대화의 일부입니다. 휴대폰이 없다는 말에 너무나 의외라는 듯이 쳐다보는 은행직원의 시선에 또 한번 머쓱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그저 "휴대폰이 없어 죄송합니다"하고 고개라도 수그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은행문을 나서면서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습니다. 아니, 습관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래, 까짓 것 남들 다 가지고 다니는 건데 나도 한번 가지고 다녀 보지 뭐.'

휴대폰 없어서 불편한 점 별로 없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을 몇 년 전 잠깐 사용하다 그만둔 이후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굳이 이유를 들라면 없지는 않지만 그저 휴대폰 없이 살아가기에도 무어 그리 뚜렷한 불편함이 없었기에 그런 것뿐이었지요. 특히 업무상 꼭 필요로 하지 않았던 점이 지금까지 내가 휴대폰을 갖고 다니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나 합니다. 아무튼 그랬던 것이 이제는 휴대폰 없음에 대해 점점 더 특별난 이유를 말해야만 될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그동안 휴면 중이었던 휴대폰을 다시금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나에게 휴대폰이 없음으로 해서 초래되는 불편함은 나보다는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는지도 모릅니다. 나야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그들을 호출할 수 있었음에 비해 그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입장이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어쩌다 어렵게 연락이 되는 때가 있으면 항상 불만의 화살이 쏟아지곤 합니다.


왜 휴대폰을 아직 가지고 다니지 않는지 그 이유를 자못 심각하게 추궁하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아직까지 원시인 생활을 하는 나를 문명화 시키려는 사명감 때문인지 자신이 사용하던 휴대폰을 그냥 주겠으니 제발 좀 갖고 다니라고 사정조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얼마나 답답하게 생각되었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그 어떤 조그만 다름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 같은 것이 느껴지곤 해서 조금은 언짢은 심사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 경험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휴대폰이 없음으로 해서 순간 순간 감수해야 되는 불편함은 분명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생활의 여유와 조그만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가령 한가한 토요일 오후를 생각해 보세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이런 모습들이 휴대폰이 일상화된 지금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지요.


휴대폰에 포위된 사람들, 정말 편리할까?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휴대폰으로 인해 불필요한 조바심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볼 때면 휴대폰을 구입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들은 수시로 휴대폰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라도 나면 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하기에 바쁩니다. 혼자 있는 자투리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시간들이 지나치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겐 생활의 조그만 여유도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남들 다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해서 간혹 소외감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간단한 술자리를 할 때였습니다. 술자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의 휴대폰 노래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또 다른 친구의 휴대폰이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를 냅니다. 그렇게 수시로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며 노래 소리 때문에 우리의 대화는 내내 겉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긴 이건 어쩌면 나만이 가진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친구놈들은 그 자리에서 걸려온 전화만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시로 전화하고 메시지 보내고 하는 모양들이 무어가 그리 바쁜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퍼뜩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지금 이들 사이에서 섬처럼 고요하게 고립되어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것은 남들과 비슷하지 못한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느끼는 일종의 불안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두려움과 불안감도 순간입니다. 휴대폰이 없는 나에게는 내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놈들은 나와는 전혀 다릅니다. 간혹 즐거운 술자리 모임 분위기에 흠뻑 빠져 어제의 불유쾌함과 오늘의 스트레스를 몽땅 날려 버릴 듯한 순간에도 그들은 내일 직장에서의 일거리에 따르는 고민을 실어 나르는 휴대폰 메시지에 순간의 행복을 몽땅 도둑맞고 맙니다.

나에게는 휴대폰이 없음으로 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니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일상에서 맛볼 수 있는 잔잔한 '감격'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가령 며칠간 집을 떠나 있을 때면 요즘 사람들 대부분은 가족들에게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보고하곤 합니다. 물리적 공간만 다를 뿐이지 그들은 여전히 함께 합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대문에 들어서기까지 그들은 휴대폰으로 서로의 상황을 세세하게 나눕니다. 그러다 보니 좀처럼 이별의 애틋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휴대폰이 없음으로 해서 남들처럼 세세한 사연을 서로 공유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혹 며칠간의 이별 후 가족들 얼굴을 다시금 보는 때면 그 물밀 듯 밀려오는 감격에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있는 동안 평소와는 다른 내용의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간이 있음으로 해서 느낄 수 있는 애틋함입니다. 그러나 휴대폰은 이러한 애틋함을 빼앗아 갑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거죠.

저 별로 안 답답합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들어야만 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은 여전히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니, 휴대폰이 없다구요? 농담하시는 거죠?"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세요?" "사회 생활하시는 데에 불편하겠다." "무지 답답할 것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잠시 알 것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주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들에게 끊임없이 그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인 나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기도 하거니와 각자의 필요와 선택에 따른 문제에 대해서 왜 그들에게 그 이유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자꾸 직면하게 되는지 아직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정작 관심 있게 바라보아야 할 사안에 대해서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도 그냥 그렇게 눈감고 지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듯한 일에 대해서는 기를 쓰고 한번 더 보려는 심리에 대해 나는 그것 역시 약자에 대한 윽박지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나는 이런 윽박지름에 나도 모르게 항복해 버린 소시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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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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