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그물, 하늘의 그물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90) 쪽빛 하늘을 바라보며

등록 2005.03.06 06:45수정 2005.03.0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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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사람의 인연


지난 1월 하순, 2005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정기총회에 참석한 뒤 인사동 한식집 뒤풀이 모임에도 따라 가서 저녁 요기도 하고 회원들과 소주잔을 나눴다. 남녀노소가 없는 모임이지만 아무래도 앉다가 보니 원로층에 앉게 되었다. 이기형 시인, 김녹촌 시인, 이시영 선생, 필자 등 네 사람이 한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잠시 후 뒤늦게 도착한 염무웅 이사장이 동석케 되었다.

염 이사장과는 그동안 서로 인사는 나눴지만 술잔을 사이에 둔 대화가 없던 터였다. 동석한 이시영 선생이 나를 자세히 소개하자, 곧 당신 부인이 내가 오래 근무했던 이대부고 졸업생이라는 것과, 나의 전임학교 오산중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결혼식 때 주례로 모셨던 나동성 선생이 당신 모교(공주사대부고) 교장이었다는 등의 말씀으로, 금세 서먹한 사이가 좁아진 느낌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에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좁고 한 핏줄을 나눈 나라는 한두 사람만 건너면 뭔가 서로 연줄이 닿는다.

교사 초년기에는 수업시간 아이들이 교과 밖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많이 졸랐다. 그럴 때면 수업 잘 받으면 들려준다고 달랜 다음, 수업시간 종료 직전에 ‘5분 드라마’라고 하여 내가 읽은 콩트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때는 종이 쳐도 이야기를 마저 해 달라고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때 졸업생들을 만나면 지금도 교과내용은 별로 기억이 없지만 ‘5분 드라마’는 남아있다고 한다. 어느 하루는 군복무 시절의 일화를 한 토막 한 뒤 종이 울려서 교실을 나오자 한 녀석이 잽싸게 따라오면서 물었다.


a 전방 소총소대장 시절, 1969년 겨울 한강 하류. 멀리 뒤로 보이는 산이 북한이다.

전방 소총소대장 시절, 1969년 겨울 한강 하류. 멀리 뒤로 보이는 산이 북한이다. ⓒ 박도

“선생님이 근무하실 때 연대장이 누구였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김아무개 대령이었다”고 대답했더니, 바로 자기 아버지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마침 그 녀석이 졸업반이라 얼마 뒤 졸업식 날에는 왕년의 그 무섭던 연대장이 내 자리로 찾아와서 “박 중위, 아니 박 선생, 철없는 자식 가르쳐준다고 수고했소” 악수를 청하고는 굳이 기념사진까지 같이 촬영하자고 했다.


내가 근무한 이대부고는 개교 때부터 남녀공학이었다. 그 몇 해 뒤에는 한 여학생을 교지편집반으로 지도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아버지도 왕년의 연대장 박아무개 대령이었다.

여러 해 교단에 있었더니 고교 친구 처제, 아버지 친구 아들, 고향 친지 아들 등에다가 제자의 아우 삼형제들도 가르치게 되어 새삼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쓴 뒤부터는 더욱 세상이 좁다는 것을 알게 한다. 무시로 달리는 독자의 댓글에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사는 동창, 제자, 친지들이 지난날을 증언해 주거나 비판해 주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 글이 생명을 얻어 살아남으려면 진실해지지 않고는 발붙일 수 없다.

“도둑질하고는 못 산다”

내 할머니는 늘 “도둑질하고는 못 산다” “거짓말하고는 못 산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아무도 몰래 도둑질한 것 같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고,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어딘가는 있다는 말일 게다.

한때 나랏돈을 도둑질하거나 기업체로부터 정치헌금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검은 돈을 마구 꿀꺽 삼키면서 잘 나가던 정치인들이, 종내에는 쇠고랑을 차고 교도소에서 정치인생을 마감하는 걸 자주 본다. 아마 당사자도 자신이 그렇게 비참하게 끝날 줄은 몰랐을 거다.

노자의 <도덕경> 에 다음의 글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어 보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天網恢恢 疎而不失)”

또, “하늘의 그물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이 만들어낸 법의 그물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법의 그물망을 잘 피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죄는 언젠가는 하늘의 그물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설사 사람이 만든 법망을 요리조리 잘 피해 벗어났다고 할지언정, 끝내 하늘의 그물망에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겠다.

내가 지은 죄는 당대에 벌 받지 않으면 자식 대에 업죄로 남아 두고두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친일파 후손들이 그동안 호의호식했다고 하더라도 역사가 살아있는 한 두고두고 매도당할 테니 얼마나 불쌍한 인생들인가.

깁스한 발 때문에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내며 창을 통해 바라보니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이다. 이 세상 삶이 끝난 다음 하늘의 그물에 갇히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남은 인생, 그동안 이생에서 지은 죄 닦음을 해야겠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사정으로 당분간 서울에서 띄웁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 사정으로 당분간 서울에서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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