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논리로 점철된 식민지배 미화 발언

과거사 정리가 절실하다는 방증

등록 2005.03.05 15:31수정 2005.03.0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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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사시미 칼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두 무리가 있다. 이들 무리들은 매일 힘겨루기를 했다. 싸움에서 이긴 쇠파이프 패거리는 이웃에 사는 사람에게 일격을 가해 실신시킨다. 깨어난 이웃에게 이들은 일을 시키며 근근이 연명할 수 있는 양식만을 준다. 목숨을 부지한 그 이웃은 말한다. "사시미 칼에 찔렸으면 죽었을 거야. 축복이지 않아"라고.

이야기 둘. 어릴 때 자장면을 사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40여년을 노예생활을 한 이가 있다. 오랜 시간 폭력에 길들여져 온 그는 도움의 손길도 처음에는 거절했다. 폭력에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삶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축사 같은 공간과 노예적 삶이 그가 인지하는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는 그의 사연이 세간에 알려져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요양 치료중이다.

자유시민연대의 공동대표라는 분이 일본 극우 잡지에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는 축복 같은 일이었다'는 취지의 글을 최근 써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러시아에 한반도가 강점당했다면 더욱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란 점과, '동질적인 뿌리인 한국문화가 일본에 의해 더욱 발전했다'는 것이 그 글의 요지라고 전한다. 경악할 노릇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글을 쓴 이의 논리가 극우 지식인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상술한 두 가지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일부 우익인사의 이러한 그릇된 이해(理解) 때문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들여다보자. 사시미 칼이건 쇠파이프건 이웃을 가격한 건 명백한 잘못이다. 어떻게 대항할지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힘을 기를 때까지 기다리자거나, 다른 이웃의 도움을 청하자는 식으로 말이다. 괄괄한 이라면 뒤는 생각지도 않고 냅다 박치기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시미 칼에 찔리지 않고 쇠파이프에 맞아서 축복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고 하자. 짐작컨대 이러한 사고의 근저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전제되어 있다. 사시미 칼을 잘 쓰는 이에게 그걸로 찔리는 건 죽는 게 확실하고 쇠파이프로는 맞아도 부상이지 죽지는 않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생각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가정(假定)을 근거로 해서 사고한다면 과거 행위에 대한 평가 자체를 내릴 수 없게 된다. 달리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시미 칼을 든 이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법이 있는가. 혹은 폼만 그럴싸하지 실상은 힘도 못 쓰는 사람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정을 하자면 말이다.

중요한 점은 과거에 행해졌던 사건 자체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쇠파이프 패거리가 이웃에게 공격을 가해 부상을 입혔다는 점 말이다. 사시미 칼이 아니라고 쇠파이프에 의한 폭행을 미화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과거를 통해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35년을 잊지 않으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35년 간 벌어졌던 수탈과 착취의 역사가 명백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假定)으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건 어불성설일 뿐이다.

이런 얄팍한 논리는 노예근성에 의해 개발된 게 아닌 게 생각이 든다. 절대적 타자를 설정해 놓고 그것에 의해 자신을 규정내리는 노예근성 말이다. 이것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독재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확대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 글이 언론에 보도된 후 시민들이 보이는 반응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또한 제대로 된 과거사 정리가 시급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치권 및 시민사회의 관심이 절실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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