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 거목 신창균 범민련 명예의장 별세

향년 98세... 빈소는 서울삼성병원

등록 2005.03.05 21:35수정 2005.03.06 02:59
0
원고료로 응원
a 2003년 4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승훈 신부의 장례식에 참석한 신창균 선생.

2003년 4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승훈 신부의 장례식에 참석한 신창균 선생.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신창균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쪽 본부 명예의장이 5일 밤 9시 9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자택에서 9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신 명예의장은 한 평생을 항일독립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 몸바쳐왔다.

신 명예의장은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이 당수로 있던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활동했고 1949년 남북지도자연석회의 당시 김구 선생과 함께 김일성 주석과 단독회담을 가졌다. 이후 신 명예의장은 범민련 의장 등을 맡으면서 통일운동에 앞장서 왔다.

지난 2004년 12월22일에는 제1회 백범정신실천상을 수상했으며 회고록 <가시밭길에서도 느끼는 행복>(1997, 해냄)을 남겼다.

빈소는 서울삼성병원(강남구 일원동)에 마련될 예정이다.

다음은 지난 2004년 9월9일 <한겨레>가 신창균 명예의장을 인터뷰 하면서 신 의장의 통일염원을 표현한 대목.

신 의장은 근현대사의 산증인이요, 민간 통일운동의 거목으로 불린다. 그는 해방 이후 무려 59년간 통일운동의 최선봉에 서 있었다.


그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통일운동의 스승들인 백범 김구, 몽양 여운형, 죽산 조봉암 선생을 떠올리곤 한단다. 그는 통일된 조국에서 자신은 문지기를 해도 행복할 것이라고 했던 김구 선생의 숭고한 족적의 만분의 일이라도 분담하는 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정작 할 말은 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을 만났건만 몸이 따라주지 않은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귀가 많이 어두어져 보청기가 없이는 남의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고, 다리에 힘이 풀려 오래 서 있기도 벅차다.


며칠 전에는 허리까지 다쳐 누군가의 부축을 받지 않고는 움직이기도 버겁다. 하지만 그의 진보적인 생각은 열혈청년이 좇아가기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그가 토해내는 말 속에는 흔들림 없는 의지와 진취적인 정신이 살아 숨쉬는 듯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4. 4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5. 5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