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47억원은 어디로 갔을까

[분석] 정치권과 지자체 떨게 하는 LK건설 비자금 사건

등록 2005.03.07 17:27수정 2005.03.0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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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김용규 경기도 광주시장.
건설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왼쪽)과 김용규 경기도 광주시장.오마이뉴스

"검찰에서 비자금 60억원을 조성했다고 진술했는데 맞나?"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최완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용규 광주시장 비리관련 공판에서 변호인이 증인으로 나온 LK건설 권아무개(44. 구속)씨에게 던진 질문이다. 권씨는 이 질문에 순순히 "그렇다"고 답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LK건설 회장인 권씨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일대에 아파트를 짓게해달라며 이 지역 소속인 박혁규 한나라당 의원에게 8억원, 김용규 시장에게 5억원을 뇌물로 건넸다. 절친한 관계였던 박 의원과 김 시장은 뇌물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구속됐다. 문제는 비리가 두 사람에 국한돼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아파트 개발관련 시행사는 LK건설이, 시공사는 이수건설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관(對官)업무에 쓴 돈 수십억"

LK건설 로비스트였던 권씨의 진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나머지 돈을 어디에 썼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대부분 대관(對官)업무에 썼고, 일부는 기타비용으로 충당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권씨가 말하는 '대관 업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권씨는 이미 박혁규 의원과 김용규 시장에게 건넨 뇌물로 대관 업무를 진행한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LK건설 권 회장이 자민련 출신 정치인인데다 2001년 뇌물 혐의로 구속된 김용채 전 자민련 부총재와도 절친한 사이였다는 점이다. 김용채 전 자민련 부총재는 건설교통부 장관을 역임했을 뿐 아니라 한국토지공사 사장을 맡았을 정도로 부동산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박 의원과 김 시장이 구속됐을 때 정가와 지역에서는 두 정치인 뿐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에게 로비가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런 의심이 가능했던 이유는 경기도 광주에서 개발을 둘러싼 로비가 상당히 치열하게 전개됐기 때문이다.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수질오염총량제 시행이 결정되면서 업체들이 아파트 등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서 혈안이 돼 있었다"면서 "투입한 비용을 어떻게든 회수하기 위해서는 사업권을 따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엄청난 로비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수질오염총량제는 지자체별로 할당된 한도 내에서 오염물질 배출 총량을 규제하는 제도로, 목표 수질을 달성하는 개발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004년 7월 지자체 가운데 경기도 광주시가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외형적으로는 광주시가 수질오염총량제를 통해 오염량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제도를 방패막이 삼아 개발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수질오염총량제로 인해 개발사업이 제한됐던 지역에 숨통이 트이면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한 업체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셈이다. 더욱이 수질오염총량제가 시행되면서 광주시는 곤지암리조트 개발 사업을 포함해 23개 지역사업을 발표했다.

나머지 돈은 어디로?

LK건설 권 회장의 로비가 박혁규 의원과 김용규 시장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또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의원과 김 시장이 거액의 뇌물을 제공받은 시점은 2002년 5월에서 2004년 7월 사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는 2002년 6.13 지방선거, 2002년 대선, 2004년 4.13 총선 등 굵직한 선거가 3번이나 진행됐다. 정치권에 그 어느 때 보다 돈의 수혈이 절실했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LK건설 뇌물리스트에 야권 중진급 의원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도 했었다. 대검 중앙수사부(부장 박상길)가 박 의원과 김 시장을 구속시켰을 때만해도 대형사건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권력형 비리를 잡아낸다는 중수부가 나섰기 때문에 이러한 의견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었다.

그런데 1월 6일 박 의원이 구속된 이후 사건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LK건설 권 회장의 수첩에 적힌 뇌물 공무원 명단만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넘겼을 따름이다.

대검 중수부는 LK건설 권 회장의 60억 비자금설이 나오자 "권씨의 주장이 신빙성이 높지 않지만 추가 금품로비가 있었는지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검 중수부가 LK건설 비자금과 관련된 비리를 정말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경제 사정 등을 고려한 배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LK건설 권 회장의 60억원 비자금 조성과 이 돈이 대관업무에 쓰인 것이 사실이라면, 중수부로서는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박혁규 의원과 김용규 시장에게 전달된 8억원과 5억원을 뺀 나머지 47억원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LK건설 비자금이 정치인과 지자체 공무원들, 그리고 또 다른 건설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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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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