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월 된 딸아이의 멋진 말 "나 사랑 안 해"

등록 2005.03.08 00:28수정 2005.03.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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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쫑알쫑알 중국 방언'을 해 대는 딸아이


딸아이 민주가 서서히 말하는 법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란 말은 곧잘 하는 편이고, 서서히 다른 말들도 트이고 있습니다. 아직 16개월밖에 안 됐지만, 그렇게 하나 둘 말을 깨우칠 때면 얼마나 신기하고 흐뭇한지 모릅니다.

16개월 된 우리 딸 민주입니다. 아빠가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하니,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저 눈망울을 볼 때면, 그리고 쫑알쫑알 말 짓하는 딸아이를 볼 때면 모든 피곤과 시름은 한순간에 떠나간답니다.
16개월 된 우리 딸 민주입니다. 아빠가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하니,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저 눈망울을 볼 때면, 그리고 쫑알쫑알 말 짓하는 딸아이를 볼 때면 모든 피곤과 시름은 한순간에 떠나간답니다.권성권
평소에 민주는 혀 꼬부라지는 중국말을 쫑알쫑알 해댑니다.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제 딴에는 무척이나 열심히 해 대는 말 짓입니다. 그럴 때면 왜 그럴까, 나는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른 집 아이들도 저 나이 때에 다 저런 말을 할까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혹시 옛날 살던 집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또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살던 곳이 인천에 있는 중구청 화교 동네였습니다. 집집마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곳이 다 화교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곳곳에 들어 서 있는 자장면 집들,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화교 상점들, 그리고 내가 살던 곳 역시 화교들이 머물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한국 사람들처럼 한국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합니다. 누가 봐도 한국 사람들 같아 보입니다. 아침이나 점심 인사를 건네도 오로지 한국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러나 끼리끼리 같은 화교들만 모이면 그들은 곧장 중국말로 말을 바꾸어 버립니다. 도무지 한국 사람이 낄 틈도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유창한 중국말만 해댑니다.

더군다나 자기네들이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면 그들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오직 중국말뿐입니다. 심지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속에서 들려오는 방송도 다 중국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서 한국말은 머나먼 다른 나라말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오로지 중국말로 이야기하고, 중국말로 웃고, 또 중국말로 떠들어댑니다.


그래서 그랬다면 너무 지나친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때 옆집에 살던 화교들이 밤마다 중국말로 떠들어댔기 때문에 우리 딸 민주가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밤마다 대여섯 명씩 한 방에 모여서 중국말로 떠들어대고 웃던 그들 소리에 딸아이가 깼던 적이 많습니다. 물론 벽이 허술하여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막아 주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들이 질러대는 중국말이 더 컸기 때문이지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내 딴엔 그들 소리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딸 민주는 지금 중국 방언을 열심히 해 대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번지르르한 말은 아니고, 누가 들어 봐도 초짜들이 하는 그런 '쫑알쫑알 중국 방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딸 민주만이 해 대는 참 재미있는 말짓입니다.

<2>'나 사랑 안 해'를 멋지게 해 대는 딸아이

그런데 얼마 전에는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회 유아실에서 있던 일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예배하는 곳과는 달리 어린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곳이 그 유아실인데, 그곳에서 재미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평소 우리 딸 민주는 그곳에서 다른 집 아이들과 함께 잘 어울려 노는 편입니다. 그리고 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집 엄마나 아빠한테도 잘 안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집 어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면 딸아이는 내 등에 업히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쫑알쫑알 별별 말 짓을 다 하다가도, 잠자기 몇 분 전에는 꼭 한두번 업히려고 야단을 피웁니다. 그럴 때면 내 몸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딸아이는 전혀 아랑곳 없이 막무가내로 달려 듭니다. 그러니 나로서는 그 웃는 얼굴을 어찌 당해내겠습니까. 그저 순식간에 허물어질 뿐입니다.
저녁이 되면 딸아이는 내 등에 업히려고 야단법석을 떱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쫑알쫑알 별별 말 짓을 다 하다가도, 잠자기 몇 분 전에는 꼭 한두번 업히려고 야단을 피웁니다. 그럴 때면 내 몸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딸아이는 전혀 아랑곳 없이 막무가내로 달려 듭니다. 그러니 나로서는 그 웃는 얼굴을 어찌 당해내겠습니까. 그저 순식간에 허물어질 뿐입니다.권성권
그런데 그날따라, 우리 딸 민주가 한 아주머니의 무릎 위에 앉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의 딸과 아들이 민주를 째려 보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네들의 영역을 왜 너 같은 꼬맹이 녀석이 침범하느냐,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주가 일어서자 그 두 녀석이 우리 딸아이를 밀쳐 냈습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딸 민주는 그들을 사랑스레 안아 주려고 다가섰습니다. 그런데도 그 두 녀석의 심술이 가라앉지 않았던지 우리 딸 민주를 손으로 막아섰습니다. 도저히 너와는 어울릴 수 없다는, 너는 저 멀리 떨어져 있어야 된다는, 그런 말투요 몸짓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그 순간, 정말로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내도 놀랐고, 그 두 아이의 엄마도 놀랐고,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여러 명의 부모들도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건 우리 딸 민주가 순식간에 내뱉은 한마디 말 때문이었습니다.

"나 사랑 안 해."

그 순간 그들 두 녀석도 멈칫 놀랐고, 두 녀석의 엄마와 내 아내도 서로 얼굴을 보며 놀랐습니다. '너희가 날 받아 주지 않으니 나도 너희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하는 말 뜻인 것 같았습니다. 16개월 된 딸아이로서는 도저히 내뱉지 못할 말을 너무나도 똑똑하고 분명하게 해 대고 있었으니 모두가 놀랐던 것입니다.

얼마나 순식간에 내뱉은 말이었던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들 멈추어 섰고, 모두들 민주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모두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때 비로소 우리 딸 민주가 확실히 말문이 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 순간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감이 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라 그날을 생각하면 그냥 어리벙벙해질 뿐입니다. 그래도 그 말이 왜 그렇게 깜직하고 또 흐뭇하게 들렸던지, 얄밉게 내뱉은 우리 딸 민주의 말짓이었지만 무척이나 기쁘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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