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미니홈피 조회수를 올리는 힘

즐거운 대딩일기(18)

등록 2005.03.09 20:15수정 2005.03.10 14:5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미니홈피'란 것이 있다고 처음 들었을 때 그것에 대한 처음 단상은 이러했다.


“귀찮은 세상에 뭐 그런 것을 챙기고 사나. 나 안 해.”

그러나 컴퓨터의 필요성을 처음 절감했을 때도, 휴대폰을 구입하고 싶어서 엄마의 바지자락을 힘차게 잡았을 때도 그랬듯이 친구들 다수의 영향에 밀려 결국 미니홈피를 운영(?)하게 되었다.

여기서 미니홈피란, 말 그대로 사(私)적으로 소규모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것으로 카페나 블로그 따위와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겠다. 즉 홈페이지에 음악을 깔거나 사진을 올리거나, 일기를 쓸 수 있는 기능과 더불어 역시 자기 홈페이지를 가진 다른 사람들의 방문을 기록하는 방명록을 운영할 수 있는 가상공간인 것.

이 미니홈피의 보급 정도는 현재 매우 높은 편이라 웬만한 젊은(혹은 어린) 친구들은 모두 미니홈피를 가지고 있다. 하여 나조차 이미 수개월 전부터 미니홈피에 가입해서 쓰고 있는 중이다.

미니홈피를 운영하며 느낀 가장 큰 장점이란 사람 만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지내던 초등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들을 쉽게 찾을 수 있어 그간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또한 이미 졸업해 떠나온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하여 최근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니홈피를 통해서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은 조회 수와 방명록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저 사람이 왔다 갔다는 것에만 가치를 둔다면 지나치기 쉬운 메인 페이지 조회 수는, 그러나 미니홈피를 운영하는 주인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척도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가장 주목할 만할 부분이다.


남겨져 있는 방명록 글도 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홈페이지를 구경하고 남기는 말이나, 휴대폰으로 사사로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가벼운 말, 행사와 관련된 축하의 말 등 역시 개인에 대한 관심과 인기로 이어지는 방명록 글은 미니홈피를 운영하는데 있어 큰 기쁨이자 중요한 관건인 것이다.

처음엔 콧방귀를 뀔 만큼 미니홈피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 그러나 요즘엔 미니홈피에 대해 기사로 다룰 만큼 열성 팬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하루에도 수시로 들락거릴 만큼 약간은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더불어 무려 거금 천원(?)을 들여, 미니홈피에 까는 배경 음악을 구입하기 위해 ‘도토리’란 것을 10알 충전했다(도토리란 미니홈피상에서 거래되는 일종의 사이버 머니로 친구들끼리 주고받는 것도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 모든 작태들은 친구 만나는 즐거움과 더불어 어떻게 본다면 조회 수에 대해 약간은 집착 증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리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노력들은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조회 수는 하루 두 자리 대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방명록 글들은 쉬이 늘지 않았던 것.

어떻게 하면 조회 수를 높이며 관심을 끌어볼까 고민하던 차에 ‘추억’이라는 한 가지 테마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고등학교 사진에 관련된 이야기다.

카메라 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2003년, 생일을 맞아 나는 어머님께 막 출시된 카메라 폰을 사줄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어머님 이번 생일에 꼭 필요한 것이 있사옵니다. 제발 사주십시오.”
“뭔데. 쓸데없는 거면 안 사준다.”
“꼭 필요한 건데요. 카메라 되는 휴대폰 사주세요.”
“뭣! 휴대폰이라고 안 돼. 대학 가면 사주마.”

어머니는 당시에 고3 수험생이었던 내 처지를 상기시키시며 대학에 붙으면, 아니 네가 정 가지고 싶다면 수능이 끝나는 날 사주겠다고 딱 잘라 상황을 종료시키셨다. 그러나 당시에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생생한 글을 쓰고 싶던 나는 어머니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제가 이번에 글을 쓰려고 하는데 사진이 없으면 안 되겠어요. 카메라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휴대폰 사달라는 건데 사주세요. 네에?”

휴대폰도 안 되는 지경에 카메라가 달린 다소 고가의 휴대폰을 사달라는 공세에 어머니의 반대는 더욱 심해졌으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식상한 수사이긴 하나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식아래 결국 최신식 카메라 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때부터 학교 곳곳, 먼지 날리는 교실 구석부터 더럽기 그지없는 화장실 벽에 이르기까지 내 카메라 폰이 훑지 않고 지나간 공간이 없을 정도로 나는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렇듯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사진들은 <즐거운 고딩일기>라는 연재물에 항상 동행했다.

예측불허하며 순발력이 넘치는 사진들은 그리하여 컴퓨터 속에 하나하나 잔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고등학교 문턱을 넘어오고, 기계고장으로 컴퓨터로 사진 전송이 잘 안되면서부터 작품 활동은 끝이 나기에 이르고 참 안타깝지만 무미건조한 지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치 신나게 치고 놀다가 다락에 쳐 박아 버린, 그리하여 먼지가 쌓인 팽이마냥 카메라 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내 컴퓨터에 대량으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미니홈피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a

ⓒ 서강훈

처음 친구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몇 장의 특기할 사진들을 올린 일은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조회 수가 두 자리 수를 넘어 최고 전성기인 하루 45명 방문(어디까지나 개인통계에 개인 추산)에 다다른 것이었다.

사진에 대한 반응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직접적인 반응은 제일 절친한 친구인 Y로부터 가장 먼저, 그리고 매우 뜨겁게 왔다.

“야 이 자식아! 사진 빨리 지워.”

유난히 붙어 다녔기에 사연도 많고 재미있는 사진도 많은 인물인 Y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듣고 나서 바로, 내게 보인 반응이었다. 나는 이에 대해 별다른 응수를 하지 않기로 했다.

“뭘. 관심 받아 좋으면서. 그리고 애들이 네 사진 많이 퍼가서 지워봤자인걸.”

즉각적인 반응이 없자 Y는 내 홈피 방명록에 전격적인 투쟁의 글까지 올렸다.

“아무개는 각성하라. 친구의 사진을 이용해서 홈피의 조회 수를 올리려는 얕은 속셈 다 보인다.”

역시 단짝은 단짝인가 보다. 뱃속 깊숙한 곳에 있던 내 탐욕까지 파악하고는 투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실제 지배권이 내게 있는 그네의 사진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초상권 운운 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녀석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기로 하고 이번 사건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당사자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것에 비추어, 내 홈피의 조회 수를 많이 올리는 데 기여했던 많은 주변인들은 매우 유희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사진 진짜 웃기더라. 다 내놔. 역시 서 기자…….”

단순한 유희적 반응들이 확실히 많긴 했지만 특별한 의견도 있었다.

“사진 정말 골 때린다. 그래도 그 때 사진 보니까 정말 기분이 좋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어도 잠시 추억에 잠겨서 좋았다. 사진처럼 우리들 반 친구들끼리 우정 안 변했으면 좋겠다.”

허접한 화질의 카메라 폰 사진으로 이런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니……. 잠시 홈피에 올렸던 사진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어눌하고 냉소적인 표정만이 가득했던 내 얼굴에 참으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웃음이 흐른다.

그 때는 무어 그리 웃을 일이 많았는지……. 미소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황뿐만이 아니라 단순한 파일 형태의 사진을 보고 있는 순간에도 번지는가 보다. 따스한 기운에 꽃이 만개할 수 있듯이 사진으로 인한 추억은 과거로 회기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감보다는 더 기분 좋은 아련함을 남기고 있었다.

a

ⓒ 서강훈

카메라 폰 앞에서 풀 한 포기 짧은 머리를 하고 마치 제가 모델이나 되는 양 취한 어설픈 포즈와 상기된 표정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생생함이라니.

단순히 조회 수를 올리려는 야심으로 정리하고자 했던 사진들은 지금도 본의 아니게 인터넷상에서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타고 일파만파 맑은 웃음이 섞인 추억을 전달하고 있다. 오늘도 스크랩 횟수를 살펴보았더니 수 회나 늘어있다. 과연 어떤 녀석들이 퍼간 것일까. 천천히 녀석들의 미니홈피를 돌아봐야겠다.

조회 수를 올리는 힘인 고등학교 때의 치기 어린 사진들은 동시에, 그렇게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추억을 아로새기는 힘이 된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