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랑해요"

아내가 학교에서 작은아이를 만났습니다

등록 2005.03.10 08:20수정 2005.03.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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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 아빠, 새하가 한 표 차이로 봉사위원에 떨어졌대요.”
“아깝다!”


저는 아쉽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새하가 방에서 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저는 새하 방으로 가서 위로를 해줍니다. 한 표 차이로 떨어졌지만 열심히 도와주라는 말을 유독 강조합니다. 새하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는 다시 주방으로 갑니다. 아내가 김치를 담그고 있습니다. 열무김치입니다. 아주 맛있어 보입니다.

“어제 담갔잖아?”
“당신이 다 드셨잖아요.”
“그랬었나. 너무 맛있었어.”
“정말 그랬어요? 여보, 고마워요.”

아내가 제게 ‘뽀뽀’를 합니다. 아내는 그랬습니다. 말 한마디에도 쉽게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어디 아내뿐이겠습니까. 모든 여자들이 다 그럴 겁니다. 저는 아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요놈들이 가만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작은놈 산하가 놀려댑니다.

“언니야, 엄마가 아빠 볼에 뽀뽀했다.”

저는 작은놈을 높이 치켜듭니다. 제법 묵직합니다. 저는 녀석의 뺨에 뽀뽀를 해줍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작년에 녀석은 많이 아팠습니다. 폐렴으로 두 번을 입원했습니다. 교통사고도 당하고 마을 아이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잘 이겨냈으니 여간 고마운 게 아닙니다.


“산하는 학교에 잘 다니고?”
“그럼요. 22층에 사는 ‘혜원’이하고 같은 반이에요.”

a 작은아이 '산하'입니다. 옆에 있는 아이는 친구 '혜원'이입니다.

작은아이 '산하'입니다. 옆에 있는 아이는 친구 '혜원'이입니다. ⓒ 박희우




산하는 지난주 금요일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그 날 입학기념으로 노래방에 갔습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동요를 많이 배웠는지 한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아내는 30분을 연장하면서까지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 산하가 어땠는지 알아요?”
“무슨 일 있었어?”
“오늘 제가 학교엘 가지 않았겠어요.”
“학교에는 왜?”
“오늘 제 차례잖아요. 학교도서관 정리하는 날 말이에요. 그런데 있지요. 학교에서 우연히 산하를 만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산하가 담임선생님께 저를 인사까지 시키는 거예요. ‘우리 사랑하는 엄마’라고요.”

아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때의 흥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딸만 둘입니다. 그래서인지 주위 사람들이 제게 우스개 소리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박 계장님은 환갑 전에 사위보기는 어렵겠습니다.”

저는 서른 아홉 살에 첫아이 새하를 낳았습니다. 마흔 한 살에 둘째 아이 산하를 낳았습니다. 새하는 ‘새롭고 하얀 마음으로 살아라’란 뜻입니다. 산하는 ‘산처럼 하늘처럼 높고 깨끗하게 살아라’란 뜻입니다. 모두 한글 이름입니다.

제 나이 올해로 마흔 여덟 살입니다. 늦게 얻은 아이들입니다. 정년도 10년이 남질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장래가 걱정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 이것 때문일 겁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는 아이들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하의 ‘새’와 산하의 ‘산’을 합치면 ‘새산’이 됩니다. 서로 힘을 합쳐 ‘새로운 산’을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당신 또 비벼서 잡수실 거지요?”
“그럼. 이번에는 큰 양푼에 비비지 그래. 당신하고 같이 먹게.”

아내는 찬장에서 큰 양푼을 꺼냅니다.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습니다. 아내는 열무김치에 밥을 비비기 시작합니다. 된장국도 떠 넣습니다. 아내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흐릅니다. 저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참기름을 꺼냅니다.

“열무비빔밥에는 참기름을 듬뿍 넣어야 맛이 있더라고”

오늘 저녁은 열무비빔밥에 된장국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는 더없이 풍성한 만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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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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