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택시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낙안에서 13년간 택시업을 하는 최관호씨

등록 2005.03.13 03:03수정 2005.03.13 14:2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3년간 낙안사람들의 손과 발이 되어 순천으로 벌교로 밤낮없이 달려다닌 택시기사 최관호(49)씨.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과 환하게 웃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낙안읍성이 관광지이기에 늘 웃는 얼굴로 모든사람을 대한다면서 창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낙안민속택시 최관호씨
낙안읍성이 관광지이기에 늘 웃는 얼굴로 모든사람을 대한다면서 창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낙안민속택시 최관호씨서정일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밝게 웃는 모습에서 '비록 시골이지만 관광지라 형편이 좀 나은 모양이다'하고 생각하면 큰 오산. 연간 400만 명이 찾는 유명 관광지이지만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수입으로치자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모두 자가용으로 들어왔다가 휙 하고 둘러보고 가니 손님 태운다는 게 그리 녹록치만은 않은 상황이기 때문.

"행사가 없는 때는 비교적 한가해요"라고 말하면서 휴식하고 있는 최관호씨에게 낙안의 이모저모를 들어본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고 자연스레 재미난 얘기 거리가 있지 않았겠나 싶어서였다. 더구나 시골인 점을 감안하면 도심지와는 다른 뭔가 재미있는 얘기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택시는 기사에게 있어 전부다. 쉬는 시간에 이곳 저곳을 살피고 또 정비하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이며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면서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다
택시는 기사에게 있어 전부다. 쉬는 시간에 이곳 저곳을 살피고 또 정비하는 것은 손님에 대한 예의이며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면서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다서정일
"관광 오는 사람들이 말다툼을 많이 하나 봐요?"

올 때는 함께 차를 타고 와서 구경을 잘 하다가도 나올 땐 따로 떨어져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푸념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하기야 여행지에서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으랴, 대부분 티격태격하기 마련이다. 여기 보자고 하면 저기 보자는 사람, 힘들어서 조금 쉬었다 가자고 하면 혼자 가 버리는 사람, 아이스크림 먹자고 하면 몸무게 타령하면서 핀잔 주는 사람 등 여행지에서 싸울 거리는 천지에 널려 있다.


그런 분들이 차에 타면 무조건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물어서 정말로 가는 척하다가 뒤를 돌아보면서 말을 걸어 맞장구를 쳐 준다고 한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화해를 유도한다는데 그렇게 화해시켜준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면서 자신은 싸운 사람들 화해시켜주는 도사라고 말한다. 관광지에서 택시업을 하는 기사다운 말이다.

그래도 예전이 좋았다는 최씨는 벌이도 그렇지만 훈훈한 인정을 그리워하는 듯 했다
그래도 예전이 좋았다는 최씨는 벌이도 그렇지만 훈훈한 인정을 그리워하는 듯 했다서정일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여전히 낙안은 나이든 노인 분들이 많이 사는 시골이기에 택시에 타고 내릴 때 신경이 가장 많이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짐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내려서 짐을 실어드려야 "택시하는 뉘집 자식 사람 됐구만" 한단다. 시골에선 아직도 입소문이 빠르다는 얘기를 넌지시 건네는 최관호씨, 시골 정서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강조한다.


갑자기 자살얘기로 화제가 바뀌니 "자살은 옛날에 더 많이 한 것 같다"고 말한다. 특히 농촌에선 더 더욱 그랬는데 집집마다 농약과 제초제 병이 있어 행여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으면 충동적인 행동으로 그걸 마셔 심심찮게 병원으로 실어다 주곤 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주검으로 돌아올 땐 괜히 죄지은 듯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며 힘들었던 시절에 죽음은 늘 가까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연간 400만이 찾는 낙안읍성이지만 단 3대밖에 없는 택시, 예전엔 가난해서 택시를 타지 못했고 지금은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어 이용하는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다. 그래도 예전이 나았다고 얘기하는 최관호씨의 표정에서 감이며 떡을 건네며 "살펴가소"라고 말해주던 그때 그 시절의 인정을 그리워하는 듯했다.

덧붙이는 글 |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낙안읍성 http://www.nagan.or.kr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낙안읍성 http://www.nagan.or.kr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송고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치매 걸린 아버지 댁에 온 남자... 그가 밝힌 반전 정체 치매 걸린 아버지 댁에 온 남자... 그가 밝힌 반전 정체
  2. 2 한식에 빠진 미국 청년, 이걸 다 만들어봤다고? 한식에 빠진 미국 청년, 이걸 다 만들어봤다고?
  3. 3 경찰까지 출동한 대학가... '퇴진 국민투표' 제지에 밤샘농성 경찰까지 출동한 대학가... '퇴진 국민투표' 제지에 밤샘농성
  4. 4 민교협 "하나마나 기자회견... 윤 대통령, 정권 이양 준비하라" 민교협 "하나마나 기자회견... 윤 대통령, 정권 이양 준비하라"
  5. 5 김 여사 감싼 윤 대통령, 새벽 휴대폰 대리 답장 일화 공개 김 여사 감싼 윤 대통령, 새벽 휴대폰 대리 답장 일화 공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