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만에 아내에게 국을 대접했으나...

조금 짜더라도 남편 성의를 생각해 주세요

등록 2005.03.15 00:06수정 2005.03.1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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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부터 애들 엄마가 다시금 운동화 끈을 조여 맸습니다. 지난해 9월경부터 운동을 하지 않았으니 근 반 년만에 다시 시작하는 운동입니다. 그래서인가요. 뒤에서 지켜보니 어째 뛰는 모습이 가볍게 보이지 않고 뒤뚱뒤뚱 오리가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하긴 그럴테지요. 출퇴근은 매일 차량을 이용하고 직장에서는 다섯 걸음 이상 움직일 일이 없으니 그동안 어디 뛰는 시늉이라도 낼 기회가 있었겠는지요.


애들이랑 지켜보고 있자니 나는 답답한 마음만 드는데 큰녀석은 제 엄마가 뛰는 발걸음에 맞추어 연신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격려도 보내고 보조도 맞추어줍니다. 물론 제 엄마는 녀석의 구호를 들을 수야 없겠지요.

그런데 이런 큰애의 격려도 소용없이 제 엄마는 이내 걷기 시작합니다. 이제 겨우 백미터나 뛰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걸으면서 왼쪽 허리를 주먹으로 콩콩 두드리는 걸 보니 허리가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합니다. 뛰기 전에 스트레칭을 충분히 해주어야 하는데 대충 하는 시늉만 해서 그런지 아직 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더 보고 있자니 괜히 답답한 마음만 들어 애들을 차에 태우고 장터로 향했습니다. 애들 엄마가 지금 뛰는 코스를 다 돌기 위해서는 빨라도 한 시간은 걸릴 겁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오늘 저녁 찬거리를 마련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애들 손을 잡고 생선이라도 한 마리 사서 구워볼려고 어물전을 어슬렁거리는 데 아줌마가 소리칩니다.

"갓 잡아 온 겁니다. 한 마리 사서 잡숴보세요. 국 끓이면 아주 시원할텐데."
"한 마리에 어떻게 합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생태를 보는 순간 나는 이미 그것을 사려고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돈을 꺼내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심심하면 먹었던 국이 바로 명태국이었습니다. 명태국도 물론 한 가지가 아니라 고기 상태에 따라 생태국이며 동태국이며 북어국이며 하는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내가 어른이 되고 한참 후였습니다. 요즘은 금태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비싸서 그렇답니다. 그렇지만 내게 있어 어릴 적 명태국은 심심하면 밥상 위에 오르는 아주 흔하디 흔한 국이었습니다.

유난히 굵고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고기 한 토막과 말간 국물에 몇 조각 무를 두둥실 띄우고 있는 국그릇을 받아 거기에 보리밥을 말아 먹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명태국을 먹을 때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뜨거운 국물을 연신 숟가락으로 훌훌 퍼 드시면서 '어, 시원하다. 어, 시원하다'라고 하시는 말씀이 그때는 왜 그렇게 수수께끼 같이 들렸는지요.


끈에 대롱대롱 매달린 명태를 한 마리 들고 공중전화 부스로 가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기요 명태국, 아니 생태국 어떻게 끓여요?"
"뭐 어떻게 끓여. 무 썰어 집어 넣고 양파 있으면 넣고, 그리고 마늘하고 파하고 넣고 소금으로 간 맞추면 돼. 소금 너무 많이 넣으면 못 먹으니 조심하고. 그런데 왜? 명태 샀냐? 그거 애들 먹일 때 조심해얄텐데. 목에 가시 걸리면 안 먹는 것만 못해."

a 싱싱함이 그대로 묻어 나는 재료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싱싱함이 그대로 묻어 나는 재료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 김영태

그렇습니다. 생태국 끓이기가 이렇게 간단한 줄 미리 짐작하고 생태를 사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오랜만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국이니만큼 애들 엄마한테 생색내기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와서 생태국을 끓이겠다니 애들 엄마는 극구 만류합니다. 비싼 생선 다 망치지 말고 그저 잠자코 있으라는 겁니다. 난 자신 있다는 걸 보이기 위해 말없이 생태를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내 칼솜씨를 보여 주었습니다. 명란을 조심스럽게 골라 내고 내장을 깨끗하게 훑었습니다. 냄비에 무를 썰어 넣고 물을 붓고 끓이는 것까지 보여주자 애들 엄마는 잠자코 물러 섰습니다.

무가 어지간히 익을 때가 되어 토막난 고기와 마늘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양파와 대파도 넣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간단한 수학문제를 공식에 맞추어 풀이하듯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a 이렇게 정갈하게 만들었지만 짜다고 그러네요

이렇게 정갈하게 만들었지만 짜다고 그러네요 ⓒ 김영태

그런데 애들 엄마를 위해 큰 맘먹고 행주치마를 두른 보람도 없이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냥 숟가락에다 소금을 조금 따라서 맛을 보면서 넣으면 될 것을 소금통을 통째로 들고 흔들다가 그냥 산만한 소금 덩어리가 사정없이 냄비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아차 싶어 숟가락으로 얼른 걷어 냈지만 역시나였습니다. 그래도 먹지 못할 만큼 짜지는 않는 것 같아 일단 애들 엄마 국그릇에 한 그릇 정갈하게 떠 담고난 후에 애들 엄마를 서둘러 불렀습니다.

"먹어봐. 조금 짠 맛이 나겠지만 그거야 명태가 원래 바닷가에서 평생 짠물만 먹다가 왔으니 그렇겠거니 하면 될 거야."

내 말에 애들 엄마는 미심스런 눈짓을 하더니 이내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습니다. 이게 과연 얼마만입니까. 결혼하기 전 내 자취방에 놀러 왔을 때 한끼 밥을 대접하기 위해 된장국을 끓여준 이후 근 10여년만에 처음입니다. 이 순간에 애들 엄마는 그걸 기억할까요.

그러나 나의 달콤한 감회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뭐랬어요. 내가 한다고 했잖아요. 물이라도 한 대접 더 넣고 끓여야지. 이걸 대체 어떻게 먹어요."
"난 별로 짠지 모르겠던데…."

그러면서 한 숟가락 떠먹어 보자 역시 조금 짠맛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래도 이 정도면 남편 성의를 보아서라도 그냥 말없이 먹어주면 안 되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애들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을 먹으면서 뜨겁네, 차네, 짜네, 맵네 하며 온갖 불평을 쏟아내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것도 또 어쩔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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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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