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인터넷은 농기구?

정보화 교육 열기로 뜨거운 낙안이곡배마을에 가다

등록 2005.03.16 02:04수정 2005.03.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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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방울 비가 내리지만 마을회관의 열기를 식히지는 못한다. 뒷좌석까지 빼곡히 들어찬 주민들은 숨소리 하나도 조심스럽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의는 깊어지고 넓어진다. 토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회원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2년전 정영환 할아버지는 컴퓨터를 전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까지 있다는데 남들보다 한발 먼저 회관에 와서 공부하는게 그 비결이라고 말한다.
2년전 정영환 할아버지는 컴퓨터를 전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까지 있다는데 남들보다 한발 먼저 회관에 와서 공부하는게 그 비결이라고 말한다.서정일
지난 15일 오후 2시, 낙안배 이곡 정보화 마을의 정기교육이 있던 마을회관은 교육열기로 뜨거웠다. 총 3시간의 강행군이었지만 칠순을 넘긴 촌로도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리를 뜨지 않고 질의응답 시간까지 갖는다. 2002년 정보화 마을로 지정된 후 2년이 지났지만 시작 초기의 열기가 식지 않은 낙안이곡배 정보화 마을.

"이제는 내가 가르쳐 준다니까."

2년 사이에 채팅은 물론 개인홈페이지까지 만드는 실력으로 발전한 정영환(63) 할아버지, 이제는 남들이 컴퓨터를 가르쳐달라고 한다면서 지난날을 회상했다.

텔레비전이 유일한 할아버지의 낙이던 어느 날, 화면에 '저희 홈페이지 주소는 www~ 하면서 알아듣지도 못한 말'들을 하기에 도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했던 정 할아버지. 때마침 낙안이곡배 마을이 정보화 마을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교육을 신청하고 인터넷을 접하게 된 것. 그 후 인터넷은 할아버지에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줬다.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을회관 뒷좌석까지 빈틈없이 앉아서 열심히 교육을 받고 있는 낙안이곡배정보화 마을 회원들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을회관 뒷좌석까지 빈틈없이 앉아서 열심히 교육을 받고 있는 낙안이곡배정보화 마을 회원들서정일
교육을 위해 멀리 광주에서 내려 온 정보통신담당관 나천수 과장, 정보화 마을 설립을 주도한 산증인이자 터줏대감이다. 낮엔 근무하고 퇴근 후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길 6개월, 겨우 자리가 잡히나 했지만 농촌 정보화는 산 너머 산.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라면서 "관과 민이 똘똘 뭉쳐야 성공합니다"라고 강조하면서 마이크를 잡는다.


교육은 정보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정신교육 프로그램에서부터 고객에게 제품을 보낼 때 감사의 편지를 쓰는 실무교육까지 세심하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또한 은행이 부족한 시골인 점을 감안한 인터넷 뱅킹 교육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정보화 마을의 산증인 나천수 과장은 정보화 마인드를 강조하면서 관과 민이 함께 뭉쳐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가자고 역설한다
정보화 마을의 산증인 나천수 과장은 정보화 마인드를 강조하면서 관과 민이 함께 뭉쳐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가자고 역설한다서정일
회원 한 명이 갑자기 손을 들더니 "이곳에 정보화 마을을 하나 더 만들어 주면 안 됩니까?"라는 약간 어색한 질문을 해 온다. 하지만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뜻만은 충분히 공감한다. 이렇듯 지난 2년간 이곡마을은 정보화 마을로 지정된 후 그 효과를 충분히 인식했다. 비록 전자상거래를 통해 매출이 급속히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시너지 효과를 본 것.


그 후 쏟아지는 질문과 건의사항은 하나같이 심도 깊은 얘기들이다. 홍보와 지원문제 낙안읍성과 연계해서 판매하는 방법 인터넷에서 잠정고객 개발 등 직접 컴퓨터를 사용하고 인터넷을 하지 않은 사람은 끼어들지 못할 정도다. 앉아서 듣고 있는 기자에게도 그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농촌은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 정보화 마을과 열심히 참여하는 회원들이 서 있다.

백내장 수술을 해서 눈이 좋지 않다는 칠십중반의 한 할아버지 하지만 맨 앞줄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나눠준 프린트물을 읽고 있다.
백내장 수술을 해서 눈이 좋지 않다는 칠십중반의 한 할아버지 하지만 맨 앞줄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나눠준 프린트물을 읽고 있다.서정일
'풍광수토가 아름다운 산. 바다. 들녘에서 생산된 전남 농수산물을 사주세요'라고 적힌 김황희씨의 명함을 받아들면서 그녀가 이 시골마을에 신발이 닳도록 드나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정보화 마을을 이루고 있는 두 축인 민과 관,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오늘처럼 너나없이 열심히 해 보자. 그러면 고객은 담 너머 기웃거릴 것이다. 문 열고 '어서 오세요'라고 친절하게 안내만 하면 정보화 마을의 마당에 그들은 서 있을 것이다. 이제 농촌에서 인터넷은 농기구다. 어느 누가 잘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만 남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직하게 배 농사 지었습니다. 
낙안배이곡 정보화마을
http://nagan.invil.org/

덧붙이는 글 정직하게 배 농사 지었습니다. 
낙안배이곡 정보화마을
http://nagan.inv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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