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가 삐딱하게 유럽보기

예니네 가족 텐트메고 유럽가기 18

등록 2005.03.18 21:32수정 2005.03.19 08:56
0
원고료로 응원
여행사의 직원들이나 혹은 해외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상황이나 일정에 대한 안내 역할을 할 때 ‘그 정도야 알겠지’ 라고 아주 쉬운 일로 치부해버리고 대충 대충 설명해 버리는 일이 많다.

하긴 대충 해 주어도 또 어떻게든 일은 처리되게 마련이고 죽도록 고생을 하고도 나중에는 허허 웃으면서 재미있었던 추억으로 넘겨버리기 마련이니 애써 자세히 설명을 할 필요도 없고 혹은 그야말로 스스로 해결하는 여백의 미를 남기기 위해 생략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런 일이 닥칠 때마다 아이들 때문에 입 밖으로는 차마 못 내고 속으로 욕을 골백번은 해 주었다.


한국에서 자동차 여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동차 여행에 대한 책자를 사 보기도 했지만 모두들 그리 큰 어려움은 없고 깨가 쏟아지는 재미만 있는 걸로 묘사되어 있었다. 길 찾기는 너무 쉽고 사람들은 아주 친절하며 조금만 신경을 쓰면 불편한 것은 전혀 없는 걸로 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이 좋은 버전을 왜 사람들이 이용을 안 할까 의아할 정도였다.

지금에야 생각하니 그렇게 여행기를 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여행이 처음이 아니며 영어도 유창하고 소위 외국문물이 낯설지 않은 여행전문가이거나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 앞에서 언급했듯이 어느 수준을 깔아놓고 서술했으니 그야말로 유럽이 초행길인데다가 영어도 ‘버벅거리는’ 나는 도무지 책에 써 있는 대로 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a 진짜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피사의 사탑

진짜 금방 쓰러질 것 같았다.-피사의 사탑 ⓒ 유원진

대부분 영어로 표기가 안 되어 있는 이정표는 짐작으로 때려잡아서인지 번번이 틀리기가 일쑤이고 사람들의 친절도는 우리나라보다 못하며 관광객을 위한 무료 편의시설도(유료는 많지만) 우리나라보다 나은 곳이 별로 없었다. 시내를 다니면서 자주 화장실 때문에 불안하였고 주머니를 뒤져 동전이 있어야 안심이 되곤 했다.

실제로 로마에서는 점심 먹은 것이 안 좋아 화장실을 찾아 헤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테르미니역 앞에서 찾았다. 그러나 유료화장실임을 깜빡 잊고 식구들과 함께 차에다 가방을 두고 와서 동전이 없었다. 일을 먼저 보고 자동차에서 가져다주겠다고 사정을 하였으나 거절을 당하고 돈을 가지러 차를 세워 놓은 곳까지 한참을 뛰다가 하마터면 길에 앉아 일을 치를 뻔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주머니에 항상 동전이 쩔렁쩔렁해야 안심이 되었다.

a 다시오고 싶었는지 예니는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졌다

다시오고 싶었는지 예니는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졌다 ⓒ 유원진

나는 지금도 생각하되 누가 우리를 보고 불친절하다 하는 건 이해할 수가 없다. 혹 영어가 안 되다 보니 부끄럽고 당황하여 황망히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은 있을지언정 불친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떨 때는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크기와 위치의 이정표가 이쪽이다 저쪽이다 하며 경쟁하듯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운전자 머리위로 지나가는 커다란 이정표는 눈 먼 장님만 아니면 아무리 시력이 나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고도 선명하다.

주로 고속도로만 다니고 시내운전은 많이 하지 않은 까닭에 툴툴거리기에 한계는 있겠으나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우리나라 이정표보다 잘 만들어진 것을 유럽 어디에서도 보지 못하였다. 잘 되어있다는 유럽의 이정표들 중에서도 가장 잘 정비 되어있다는 독일이 우리나라와 견줄 만 하였다. 그러한 독일도 대부분을 독일어로만 표기해 놓았을 뿐 영어표기는 거의 없었다.


또한 우리나라는 서울 시내 아니 전국의 어디를 가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는 어김없이, 다소 모자라다고 할 이도 있겠으나, 무료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이면 화장실이지 무료 화장실은 또 무슨 말인가 할 정도로 우리에겐 유료화장실의 개념이 없다. 그 청결도 또한 유럽의 유료화장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a 바티칸 돔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광장

바티칸 돔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광장 ⓒ 유원진

여행 내내 한 번에 오백원이 넘는 돈을 내고 화장실을 다니며 혹은 터무니없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 콜로세움이니 에펠탑이니를 들어가며 무지하게 억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리도 관광객들에게 화장실 사용료를 받자고 한다거나 경복궁 입장료를 올려 받아야한다고 주장하면, 외국인들에게 어떻게든 더 잘 해줄 것이 없는가를 찾느라고 애쓰는 판에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뭐 그렇게 억울해할 것까지야 있느냐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하여튼 여행 내내 그런 씁쓸하고도 기이한 생각들이 떠나지 않아 기어코 꼭 필요한 돈이 아니면 쓰지 않았고 한 달 가까이를 한 끼도 식당에서 사먹지 않고 해먹었다. 아 로마에서 피자한판 사먹었구나. 사 먹는 것만이 꼭 현지식은 아닐 터, 아내야 끼니마다 메뉴를 짜느라 힘이 들었겠지만 오히려 사 먹는 것을 한사코 반대한 것은 그녀였다.

a 로마에서 피자먹기-고르기를 잘못 골랐다

로마에서 피자먹기-고르기를 잘못 골랐다 ⓒ 유원진

어느 책에서 어떤 부인이 유람선에서 센 강의 야경을 보고 빠져 죽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써 놓은 것을 보고 처음 계획에는 없었으나 다소 과장이 있다하더라도 ‘그 아름다움이 얼마만 하기에’ 하는 마음에 다소 비싼 값을 치르고 배를 탔다. 에펠탑에 불이 들어오고 강의 양쪽 건물이 조명을 받아 멋있게 보이기는 하였으나 도무지 죽고 싶기는커녕 겨우 뱃삯이 아까울까말까 한 수준이었다.

단지 관광대국답게 어떻게 해 놓아야 관광객들이 쓰려고 가져온 돈을 욕을 안 먹고 쓰게 만들까를 철저하게 늘 연구하는 자세를 성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할 정도로 치하할 만하다 하겠다. 앞으로 여러 곳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이야기도 하겠지만 유럽이 우리의 관념 속에서 다소 과대포장 되어 있다는 것이 갔다 온 사람의 솔직한 심정이다. 하기야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니지만.

지구별 가족의 일원인 그들을 만나보고 인사하고 어떻게 사나하고 호기심으로 들여다보고 하는 일련의 행위는 누가 우수하고 누가 열등한가의 문제는 아니다. 그 문화는 다르면 다를수록 기쁨은 배가 되는 것이며 그 속에 순수가 많이 녹아 있으면 있을수록 인류애적 동료의식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파리가 암회색의 도시라면 로마는 황갈색의 도시이고(건축물을 짓는 재료 때문이리라), 런던에서는 목이 뻣뻣해지는데 니스에서는 아무데나 앉고 싶어진다. 문화의 다양성이 주는 기쁨은 인간의 본능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유럽이 특별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겠다.

유럽이 특별하다면 항공료와 물가가 비싸서 돈과 시간에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여행하기가 쉽지 않아서 기대치가 올라가 있고, 또 한 번 다녀간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아름다움을 격찬하니까 뭔 말인지도 모르고 듣고 앉아 있다가 오페라 끝에 기립박수까지 하는 스타일로 유럽을 이야기하니 가보지 않은 이들이야 한번 가기가 소원일 수밖에 없다.

한 군데 몰려있어서 비싼 항공료 내고라도 가기만 하면 한꺼번에 여러 군데 둘러보기가 용이하고 그래도 문명이 앞선 사회인 까닭에 안전해서 여행하기는 좋다. 그러나 유럽을 꿈꾸는 이들이여, 다소 과장되어 있는 환상들을 깨고, 이웃을 만나러 갔다 온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하라. 그리고 다녀와서는 제발 오버 좀 하지 마라. 애들이 웃는다.

스페인 광장 계단에 온 식구가 앉았다. 아이들은 영화 속의 누구처럼 아이스크림을 먹고 앉아 있다. 필자는 광장을 꽉 메운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생각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가. 영화라는 매체가 없었으면 스페인광장으로 이름붙인, 아름답기는 하지만 사진보다 훨씬 작은 이곳에서 저토록 황홀한 표정으로 거닐지는 않을 것이다.

a 세계의 거리예술가들이 모인 라보나 광장-한국인은 없었다

세계의 거리예술가들이 모인 라보나 광장-한국인은 없었다 ⓒ 유원진

그러고 보면 여행이란 자신이 와 보고 싶었던 곳에 서서 스스로에게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묻고 대답해가는 일련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 구석구석에서 두발로 땅을 딛고 서서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을 지구별 여행자들이 그리워진다. 지금 유럽의 하늘아래 융성했던 제국의 땅, 로마에서 휴일을 보내며 뜬금없이 티베트의 별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으나 꿈으로만 가지고 세월을 보냈다. 스스로 늘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왔으나 그역시 요즘은 '글쎄'가 되었다.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이 고민한다. 오마이에 글쓰기는 그 고민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