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과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하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9일 한국을 방문했다. 아시아 순방 중 라이스 장관이 해결책을 모색하겠지만 영국의 파이낸셜 타이즈는 북핵문제의 돌파구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며 비관적으로 평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핵문제라는 모호한 말 속에 숨어있는 개념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한의 핵에너지 개발에 대해 핵무기 개발이든 혹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든 모두 차단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재 북핵문제가 쟁점이 된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십수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었다. 이 과정은 이란의 경우도 비슷하다.
일반적으로는 대량살상무기 방지라는 명분으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억제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결과는 핵의 평화적 이용 및 핵무기 개발 모두에 대한 무차별적인 억제였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더 복잡하고 어려웠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부시행정부의 정책 목표를 보다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북한의 평화적인 핵에너지 개발을 허용할 것인가 혹은 아닌가 하는 입장을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과 선택
북한의 평화적 에너지 개발조차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진다면, 이 부분에서는 분명 한미간의 입장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만약 이 분쟁의 연장선상에서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 상황이 발생하면 남북한 전체는 미국의 세계전략의 희생자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평화적 에너지 이용 부분은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 되면, 해법이 달라진다. 지난번에 분석한 러시아 푸틴대통령의 이란식 해법을 한반도 상황에 접목하여 평화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북한의 핵은 남북경협과 비슷한 개념으로 되어 한국정부는 KEDO와 함께 북한의 핵에너지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평화적 이용에 의한 해법이 국제법과 국제규범에도 부응하고 분쟁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 되지만 이러한 흐름이 국제사회에서 전개되자 부시대통령은 또 다른 장치를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미국이 정한 불량국가들에 대해서는 민간의 상업적 이용조차 허용하지 않도록 핵확산금지조약(NPT) 내용을 수정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5일 보도한 것이다.
아직은 검토 단계이지만 그럴 경우 북한과 이란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조차도 사실상 막혀 전면적 군사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 전쟁을 하지 않는다면 소위 불량국가들에 대한 핵개발 억제는 그들 국가들의 핵주권 침해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대체 연료공급 문제가 서방측의 큰 경제적 부담으로 남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위의 보도내용은 부시행정부 내의 검토단계에 불과하고 여전히 국제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소위 불량국가이든 혹은 아니든 핵의 평화적 이용은 허용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국제법과 규범은 그대로 존중되어야 하며 그 범위 내에서 해법이 모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분단이라는 특이한 상황으로 인해 설령 북한이 미국이 정한 불량국가로 인정되어 신뢰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서방측인 KEDO의 관리 하에서 평화적인 핵에너지의 이용이 가능하기에 평화적인 북핵해법은 여전히 상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행정부는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쟁점에서 먼저 자신들의 정책적 목표를 명확히 하여 한국인들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첫째는 북한의 평화적인 핵에너지의 이용을 허용할 것인가 혹은 아닌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북한의 핵무장으로 더욱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일거에 해소하기 위해 94년도의 북미간 합의로 되돌아갈 의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의 핵문제는 이미 94년도에 북미간 제네바 합의에 의해 해결되었으나 그 이후 양 당사자의 합의사항 불이행으로 새롭게 문제가 확대되었다. 특히 이러한 약속 불이행이 부시행정부 기간에 발생되었음을 감안한다면, 부시행정부는 만약 현시점에서 94년도 북미간 합의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성실하게 그 합의를 지킬 것인지 여부를 명확히 하여 한국인들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지금은 북한의 핵무장 선언으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된 상황이므로 94년도의 북미간 합의로만 되돌아간다고 해도 지금의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된다는 사실을 유의한다면 이러한 점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명확한 견해표명은 대단히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94년도 합의로 되돌아갈 의향을 먼저 표명한다면 문제해결은 극적인 전기를 맞게 되어 북한을 크게 압박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북한은 이미 94년도의 합의에 대체로 만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미국측의 공식적 의사만 확인된다면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이런저런 이유로 약속 이행을 하지 않아 94년의 합의가 사문화되었다고 믿는다면, 북한의 약속불이행을 명분으로 94년 합의를 사문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북한의 약속이행을 강제시켜 양측이 합의를 충실하게 지키도록 하는 것이 순리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이 부분에 대한 부시행정부의 명확한 의사표명이 필요하다.
경직된 회담방식 개선의 필요성
그동안 북핵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던 또 다른 요소로 미국의 전부 아니면 전무식의 경직된 회담방식이 지적되곤 했다. 이것은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에서 지적한 내용이기도 하다. 북한의 전면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듯한 강경 행보는 창조적이고 유연한 대응을 요구하는 한국 일본 중국의 입장을 어렵게 했으며 회담의 진전을 어렵게 했다고 지적되었던 것이다.
특히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요구는 북한과 미국의 힘의 비대칭적 관계를 감안하면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지극히 어려운 요구사항으로 회담을 교착상태에 빠뜨리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94년도의 합의 불이행 사태에서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만약 이러한 불이행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은 북한의 약속 불이행에 대해 군사적으로 강제할 수 있지만, 반대로 북한이 미국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한번 합의되면 어떤 상황에서건 “되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약자에게는 가혹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북한에게는 일방적인 손해로 해석되어 합의를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경직된 회담방식을 차후에도 일관되게 견지할 것인지 혹은 좀 더 유연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또 외형상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이 철회되었다고 해도 내용상으로는 여전히 물밑에서 견지되는지 여부도 회담의 앞날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따라서 회담의 원만한 성공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러한 강경한 회담 방식이 계속 견지되는 것인지 여부가 명확하게 밝혀질 필요가 있다.
19일 한국에 들르기 직전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여 다소간 유연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되지만 회담에서의 실효성을 재고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핵심적 내용에 대한 명확한 입장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 쟁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당사자인 미국의 정책적 목표와 방식에 대해 우려하는 한국인들을 명확하게 이해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진지한 반응이 요청된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노오(No)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한국>(1992) <대북한 핵억제정책과 합리적 선택>(1995) 등의 책과 논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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