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는 현재 조용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2월 10일 북한의 핵무장 선언으로 본격적인 북-미간 충돌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해결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외교적 주도권을 상실하고 조용하게 따라오는 미국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군사 대응을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인디언 섬머처럼 반짝하는 기간 동안 주도권을 쥔 한국 정부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확실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십수 년 동안 고질병처럼 해결되지 않는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행보가 하나의 시사점이 될 수 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핵문제를 평화적 이용단계와 핵무기 개발단계, 이렇게 두 단계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외형상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억제로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핵무기 개발억제가 아니라 폭 넓게 핵에너지 개발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라는 물밑 사정을 잘 알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국제질서는 미국과 미국의 대리인 격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주도하고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은 북한과 이란의 (1) 핵무기 개발억제뿐만 아니라 (2)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마저 억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측이 여러 가지 의심과 의혹을 제기하며 억제하려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단계는 미국도 그 억제 명분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제한된 범위에서 핵에너지를 허용할 수 있어 일정 수준 양보가 가능한 영역이다. 실제 94년도 제네바 합의가 그러한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핵무기 개발의혹에 대해서는 허용과 불가의 OX식 이분법만이 존재하기에 서로 양보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치킨 게임(chicken game)식의 대립 국면이기에 한쪽의 완전한 굴복으로 해결될 뿐 공존이나 타협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단계에서는 타협과 합의의 공간이 있다. 여기서는 상호 생사를 건 충돌을 벌일 필요 없이 타협으로 해결 가능한 공간이 있기에, 핵무기 개발과 핵에너지의 평화적 개발이라는 단계구분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강경한 대이란 압박에도 불구하고 2월 27일 이란과 핵연료 공급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미국도 이제 이란의 평화적인 핵에너지 개발에 대해서는 어찌하지 못하게 되었다.
2월 24일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푸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자리에서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보유에 반대한다는 공조를 약속했으면서도 3일 뒤 이란과 핵연료 공급 협정을 체결했다.
푸틴이 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핵의 평화적 이용과 핵무기 개발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미국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란과의 약속을 지키며 러시아의 국익을 성취한 것이다.
사실 미국이 다량의 우라늄 자체 생산이 가능한 북한과 이란에 대해 핵에너지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내놓는 의심은 끝이 없을 정도기 때문에 그러한 의심을 하나하나 해소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이러한 의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하고 초강대국 미국과 마찰만 초래하는 일이기에 별로 이득이 되지 않는다. 미국의 의심이 근원적으로 통하지 않게 만들어야 핵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미국측의 가혹할 정도의 의심을 완벽하게 해소시켜주기 위해 사용후 핵연료를 다시 러시아로 가져오게 만들었다. 핵무기를 만드는 원료인 사용후 폐연료를 다시 러시아로 가져가게 되면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 수가 없으므로 미국은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심을 근원적으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란은 미국의 의심을 정당하게 회피하면서 평화적으로 핵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란은 러시아와 핵원료 공급협정을 체결해 미국으로부터 핵무기 개발시설이라는 의심을 집중적으로 받는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 등에서 2021년까지 7천㎽(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렇게 되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심은 상당히 해소되면서 동시에 이란이 평화적으로 핵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게 되어 미국과 이란간의 충돌국면이 해소될 수 있게 되었으나 미국의 보수적 지도층은 상당한 반발을 보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적성국인 이란과 북한에서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것조차 지극히 싫어하는 이들의 본심을 잘 보여준다.
공화당 군사위원회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란과 러시아와의 협정을 '비정상적'이란 비법률적인 표현으로 반발하며 오는 7월에 있을 선진8개국(G8) 회담에 러시아의 참여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반발 모습 속에서 오히려 북한과 이란에 대한 그동안의 미국측 압박이 핵무기 개발억제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핵에너지 개발억제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 노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수 지도층의 반발에 대해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러시아는 국제법에 따라 일을 처리해 왔으며, 이란도 핵 개발 프로그램을 가질 권리가 있다"며 그러한 보수지도층의 정서적 반발은 정당성이 없음을 밝혔다.
이제는 이란의 평화적 핵에너지 개발을 억제하는 명분은 정당성을 잃어버린 셈이고, 의심을 하려면 "폐핵연료가 실제로 러시아에 반환되는지를 제대로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북한에 에너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따라서 북한의 사활이 걸린 에너지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해주면서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면 미국의 의심을 해결하면서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기존의 6자회담은 나름대로는 의미가 있겠지만 북한이 6자 회담에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문제의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4년간의 과정이 그러했듯이 미국측의 양보없는 강경한 태도와 북한의 벼랑끝 대치 속에서 합의도출이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의 이해관계를 본질적으로 충족시켜주는 방안을 모색한다면 6자회담과 같은 복잡하고도 지루한 협상과정 없이도 북핵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수 있다. 그것은 이번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 것과 같이 끝없이 제기되는 미국의 의심을 국제법의 테두리 내에서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핵연료의 공급이란 측면에서는 이란과 다른 북한이 어떻게 하면 미국측의 끝없는 의심을 회피하면서 평화적인 핵에너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북한이 원하는 에너지를 공급해주기 위해 원전을 그대로 가동하면서 핵무기의 재료가 되는 사용후 폐연료봉을 북한이 못 만지고, 못 가지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해법의 상당 부분은 94년도 북미 합의에 숨겨져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란에 취한 방식을 한반도의 사정에 맞게 원용하면 북핵 문제도 일거에 풀리게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어집니다.
기자는 <노오(No)라고 확실히 말하지 못하는 한국>(1992) <대북한 핵억제정책과 합리적 선택>(1995) 등의 책과 논문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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