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다?

페트리샤 브로진스키와 제임스 깁슨의 <위선과 착각>

등록 2005.03.20 09:50수정 2005.03.2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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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위선과 착각>

책 <위선과 착각> ⓒ 시아출판사

인간 본성에 대한 이견(異見)이 분분하다. 어떤 철학자는 '백지와 같다'고 말하며 또 다른 철학자는 '악한 본성이 있으나 교육을 통해 선하게 된다'는 등 본래의 인간 본질이 과연 어떤 것인가는 늘 논쟁거리로 남아 왔다.

이와 같은 인간 본성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 속에서 도대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는 철학의 과제로 존재한다. 아마도 그 해답을 찾지 못했기에 그것은 늘 과제로 남는지도 모르겠다.


책 <위선과 착각>은 다양한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 중에서 '비합리적이며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곧 인간'이라는 명제를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란 너무나도 강하게 동물적인 본능에 사로 잡혀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견해에 대해서 반박할 철학자도 있을 것이다.

책의 논리를 따라 가다 보면 과연 인간이란 존재가 그다지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우등 동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라는 것 자체도 불투명한 부분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며 인간들이 세우는 논리 또한 항상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하자가 있지 않은가.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인간들이 내세우는 윤리나 도덕, 규칙 등은 비합리적이고 구속적인 규율에 불과하다. 그 괴상한 규율로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을 옭아매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인 것이다. 책은 '드니 디드로'의 말을 인용하면서 "비판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그 본성을 왜곡하는 비루한 도덕"이라고 꼬집어 말한다.

책의 속표지에 적힌 구절은 타락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1. 잘못을 저지르고 난 후, 후환이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경험이 있다. 2. 사랑하는 이에게 성질을 부리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그가 등장하자마자 화가 폭발한다. 3. 평소에는 이성적이지만, 운전 중 다른 차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야수로 변한다. (중략) 8. 항상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애증의 쌍곡선을 그리며 산다.


위의 질문 중 세 개 이상에 해당 된다면, 당신은 인간의 비합리성에 눈뜨고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이미 오래 전에 동물적 본능과 거리를 두었지만, 그것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당신을 위해 만들었다."


이와 같은 지적에 떳떳하게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답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무척이나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책은 도덕적인 사람들을 일컬어 자기의 본성을 망각하고 '비루한 도덕'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게 사는 위선자들이라고 말한다.


도덕과 규율, 이성과 종교적 가르침 등은 이 책에선 비난 받아 마땅한 '위선'이다. 인간들은 그 위선적 가르침에 복종해 왔으며 그로 인해 자유롭고 근본적인 본능에 대해서는 왜곡된 편견을 갖게 되었다. 책의 저자들은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힌 본능에게 자유를 줄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은 자신이 동물임을 부정하려는 인간에 대한 책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짐승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실제로 당신이 짐승이라서 '맞는 말씀입니다'라며 맞장구 칠 수 있는가? 십중팔구 당신은 모욕감을 느끼며 어떻게든 그것을 맞받아 칠 말을 찾느라 골몰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짐승이고 본능적이며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인간들은 이런 인간 본성을 무시한 채 세상과 인간을 향하여 합리성과 이성, 질서와 도덕, 규칙 등을 준수하고 지킬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딜레마다. 세상과 인간은 본래 비합리적이고 본능적이며 무질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딜레마를 알베르 까뮈는 "인간은 무작위적(無作爲的)으로 움직이는 세계에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가 부조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부조리하며, 이와 같은 부조리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말로 단정 지었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면 인간은 좀더 느슨하고 여유롭게 본능과 자유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는 어찌 보면 통쾌하기 까지 하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사실 합리성과 도덕, 규칙 등에 구속되어 살면서 답답함을 느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현실은 부조리와 비합리성 속에 돌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만 규율과 도덕을 울부짖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 판단엔 어찌 보면 위험이 따르기도 하다. 인간의 이성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본능만 따르길 권고한다면 그것은 일개 짐승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아무리 세상이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할 지라도 그 속에 규칙을 찾아가는 큰 물결과 같은 움직임이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사회의 구속에 앞서 우리 인간의 자유를 찾고 본성대로 살 필요는 있다. 책은 어느 누구도 사회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하면서 "사회는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말할 뿐 본래의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우리 인간은 사회의 구속력 때문에 '인간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굉장히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인간들에게 사회의 통제와 관념에서 벗어나 한번쯤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저자들이 아무리 인간은 '저속하고 본능적이며 비합리적인 동물'이라고 외쳐도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아마도 사회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규율과 이성이라는 법칙을 따르며 사는 데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자기 본능에 충실한 자유로움을 깨달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 싶다. 이 책이 유도하는 바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위선과 착각 - 인간은 정말 동물보다 우월한가?

퍼트리샤 브로진스키.제임스 깁슨 지음, 이채진 옮김,
시아출판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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