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고위직은 대법관 1순위?

참여연대, 대법관 진출 코스 분석 발표

등록 2005.03.21 09:01수정 2005.03.2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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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참여연대가 1970년대 이후 대법관으로 임명된 법관 61명의 이전 직책 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차장직을 포함한 기획조정실장이나 조사국장, 인사관리실장 등 소위 '법원행정처 고위직'을 맡았던 이는 39.3%(23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른바 '로열 로드(Royal Road)'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참여연대가 1970년대 이후 대법관으로 임명된 법관 61명의 이전 직책 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차장직을 포함한 기획조정실장이나 조사국장, 인사관리실장 등 소위 '법원행정처 고위직'을 맡았던 이는 39.3%(23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른바 '로열 로드(Royal Road)'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전경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우리나라 사법부 내부에 공공연한 비밀로 존재하는 이른바 '로열 로드(Royal Road)'가 존재할까.

이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21일 발행한 <사법감시> 제24호 '1970년대 이후 대법관 임명실태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참여연대가 1970년대 이후 대법관으로 임명된 법관 61명의 이전 직책 등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차장 경력을 가진 법관이 전체 24%인 15명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법원행정처 차장직을 포함한 기획조정실장이나 조사국장, 인사관리실장 등 소위 '법원행정처 고위직'을 맡았던 이는 39.3%(23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5공화국 기간인 1980년부터 1987년 사이에 임명된 대법관은 총 20명이었으며, 이중에 서울형사지방법원장으로 재임했던 법관은 20%(4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대법관의 실질적 임명권자였던 정치권력의 의중이 5공화국 중에는 '국가보안법 위반'을 비롯한 시국 사건을 많이 처리한 서울형사지방법원의 법원장에게 몰렸고, 그 직책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역대 23명의 법원행정처 차장이 도달했던 최고 직책을 살펴보면, 73.9%인 17명이 '대법관'에 올라 절대 다수를 차지했으며, ▲헌법재판소 재판관 2명 ▲서울고법원장 2명 ▲부산지법원장과 사법연수원장 각각 1명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는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해 "61명의 대법관들이 임명 당시 직책의 종류만도 모두 29개에 이른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법원행정처 차장'직을 거쳐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비중은 절대적인 셈"이라며 "더구나 절대적으로 법원행정처 고위직을 거친 비율이 높은 것을 보면 대법관이 되기 위한 주요 경로, 즉 '로열 로드(Royal Road)'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법관 인사에 대한 사무와 사법정책에 대한 연구 등을 담당하고 있는 법원행정처가 사법부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절대적이라는 것이고 '엘리트 코스'인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며 "그동안 승진형 대법관 임명이라고 여러차례 거론되면서 비판받아온 사법고시(전 고등고시) 기수 중심의 대법관 임명 실태도 구체적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a 1970년대 이후 임명된 대법관 중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 분포.

1970년대 이후 임명된 대법관 중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 분포. ⓒ 참여연대


1970년대∼최근까지 기수별 순서 벗어나 대법관 임명된 경우는 단 2건

그렇다면, 참여연대가 조사한 기간인 197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이른바 '로열 코스'를 벗어나 대법관으로 임명된 법관 사례는 몇 건이나 될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대법관 임명 총 23회 중 '2회'뿐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지난 1997년 9월에 사시 1회 출신 법관까지 대법관으로 임명되다가 1998년 8월 임명된 조무제 대법관 임명이 처음으로 '기수서열 위주'의 관행을 깬 사례를 남겼다. 사시 4회인 조 대법관은 사시 2∼3회를 뛰어 넘어 대법관 후보로 지명됐다.

그러나 조 대법관 임명 이후 다음 대법관 임명에서는 다시 기존의 기수관행을 돌아가 변재승(사시 1회) 대법관과 이용우(사시 2회) 대법관이 임명되면서 서열위주 관행은 지켜졌다. 2003년 9월에 사시 11회 출신 법관까지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또 한차례 서열위주의 관행을 깬 경우는 지난해 8월 김영란(사시 20회) 대법관이 임명되면서 사시 12∼19회를 뛰어넘었다. 이도 잠시 지난 2월 변재승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된 대법관은 사시 12회 출신인 양승태 법관으로 다시 기존의 서열위주 관행으로 돌아갔다.

참여연대 "로열로드 질주 과정에서 '법관'이 아니라 '법 관료'로 여과"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사법감시> 24호 발행사를 통해 "현재 사법개혁의 논의가 어느새 개혁대상인 사법부가 개혁의 주체로 자리바꿈하고 이들의 관료적 집단의사에 의해 거의 모든 작업이 주도되는 식으로 바뀌었음을 바라보게 되면서 이 로열로드의 존재를 새로이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비판하고 나섰다.

이어 한 소장은 "(로열로드 존재는) 대법관으로 상징되는 사법부의 수뇌부를 충원하기 위한 인력풀이라는 의미를 넘어, 대법관으로의 '승진' 필수과정으로 내부적 불문율이 세습되는 통로로 작용하기도 한다"며 "사법부의 엘리트를 집합시키고 그 능력을 활용하는 싱크탱크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그들을 훈육하고 통제하는 제2의 사관학교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 소장은 "한마디로 이 로열로드를 질주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법관'이 아니라 '법 관료'로 여과되어 버린다"며 "이 과정에서 이들의 '지도'하에 전국의 법원을 일렬로 줄세우면서 근대사법 110년사 내내 떨쳐버리지 못했던, 강력한 중앙집권적 법 관료 체제로서의 우리 사법제도의 병리가 재생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이번 조사는 '시민적 상상력'에 의해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드러난 '로열 로드'의 문제를 계속해서 주시해 사법제도의 진정한 개혁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a 1970년대 이후 신규임명 대법관의 임명 당시 직책 및 전 직책표.

1970년대 이후 신규임명 대법관의 임명 당시 직책 및 전 직책표.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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