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47회

등록 2005.03.25 07:40수정 2005.03.2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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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잘라 놓은 간이 담겨 있는 접시를 상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두칠과 담천의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안 드실 거요?”


그 말에 두칠과 담천의는 술상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는 두칠과 황원외를 바라보며 담천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제 이곳에서 나를 쫒아내겠다는 것이오?”

담천의는 이들 부부의 말을 듣고서야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쩌면 자신의 앞에 있는 두칠이란 이 사람도 사부의 안배 중 하나일지 모른다. 황원외란 이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색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는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우연처럼 지나왔지만 이제는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신검산장에 가실 때가 되었소.”

두칠의 갑작스런 말에 담천의는 고개를 저었다.


“두형은 다점에서 분명 내가 신검산장으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소. 한데 이제 와서 갈 때가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이오?”

“공자가 지금까지 살아 있기 때문이오.”


아주 간단한 말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담천의의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두칠이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담천의는 씁쓸한 고소(苦笑)를 흘렸다. 여전히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자신은 누군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존재를 아는 이상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술잔을 비웠다. 고기가 구어 지는 냄새는 빈속을 자극하고 있었다. 아이는 자꾸 칭얼대고 있었다. 아마 불편한 엄마의 마음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 것일 게다. 황원외의 아내는 어느 정도 고기가 구어 지는 것을 보고는 일어섰다.

“동(憧)이가 자꾸 보채네요. 조금 더 있으면 익을 테니 당신이 봐주실래요? 소첩은 넣어두었던 옷을 준비해 두어야겠어요.”

그녀는 아이를 안아들고 급히 안채로 향했다. 아마 조금 더 그곳에 있게 된다면 아이가 아니라 자신이 울게 될지 몰라서였을 것이다.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황원외는 급히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
진성현을 끼고 고평(高平)과 양성(陽城)까지 산서성(山西省)의 남쪽 지역의 맡고 있는 개방의 분타주는 동추개(銅錘丐) 하강(厦康)이란 인물이었다. 그는 사십대 후반의 나이로 개방의 인물로는 드물게 개방의 금나수법인 동추수(銅錘手)를 익힌 자였다. 그의 무공수위나 덕망으로 보아서는 장로가 되었어야 마땅할 일이지만 그가 그리 중요치 않은 산서 남쪽 지역의 분타주에 머문 것은 그의 도둑질하는 버릇 때문이었다.

개방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도둑질에 맛이 들린 그는 구걸보다는 도둑질로 허기를 때웠다. 그가 굳이 개방의 위력적인 다른 무공을 제쳐두고 유일한 금나수법인 동추수와 신법인 연쌍비(燕雙飛)에 매달린 것도 아마 도둑질을 잘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둑질로 두 번의 징계를 받아야 했고, 그 두 번째에 그의 왼쪽 귀가 잘려 나갔다. 한번 더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는 다리가 잘린 채 파문을 당할 터였다. 그는 후회했고 그 뒤로 한번도 도둑질을 하지 않은 덕에 그나마 이년 전에 분타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이년 동안 이곳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요 몇 달 전부터 무척이나 바빠지기 시작했고, 총타에서도 이곳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결국 신검산장에서 일이 터지면서 방의 중요인물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자 그는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 중으로 광지선사 일행이 진성현으로 들어 올 것이라는 소식을 수하를 통해 홍칠공(洪七公) 노육(盧陸)에게 보냈다. 하강의 생각으로는 홍칠공 역시 그들과 합류해 신검산장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았다.

그는 이제 성내로 들어가 밤사이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정보를 취합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옆에서 졸고 있는 수하를 보았다. 아직까지 해가 뜨지 않은 시각이어서 며칠 동안 쉴 사이가 없었던 탓에 피곤하기도 할 것이었다.

“득삼(得三)…! 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득삼을 불렀다. 하지만 이 녀석은 깊이 잠들었는지 눈을 뜨지 않았다. 하강은 버릇처럼 득삼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갈겼다. 헌데 놀란 듯 깨어나 궁시렁 거려야 할 득삼은 옆으로 쓰러지며 코에서 피가 흘러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지붕에서 알 수 없는 살기가 그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쇄---액---!

어둠을 가르며 섬광이 작렬하자 하강은 급히 몸을 뉘이며 일장여를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의 등짝에 느껴지는 화끈함은 그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상대를 확인하기도 전에 다시 그는 자신의 전신을 향해 쏟아지는 도기(刀氣)를 피하기 위하여 신형을 세 번 뒤집고, 이장여를 다시 물러나야 했다.

“어떤 놈이냐?”

하강은 급히 타구봉(打狗棒)을 꺼내들며 파고드는 상대의 도기를 막기 급급했다. 하지만 그는 상대의 공격을 모두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헉…! 만도(彎刀)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 헛바람을 흘리며 자신의 허벅지를 베는 도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초승달처럼 굽은 만도였다. 그 주인이 누군가는 생각나지 않았다. 자신을 노리는 자는 그가 상대할 만 한 자가 아니었다. 그의 뇌리에는 오직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는 또 다시 섬광이 작렬하는 것을 보며 몸을 옆으로 굴리며 벽에 구멍을 냄과 동시에 죽을힘까지 짜내어 자신이 익힌 연쌍비(燕雙飛)를 펼쳤다.

그의 신형은 빛살 같았다. 죽음의 공포는 그에게 그가 지금까지 펼쳤던 연쌍비의 묘리를 십분 발휘하게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느껴지는 등짝의 고통은 또 한번 만도가 그의 몸을 베고 지나갔음을 알게 했다. 혈흔이 허공을 그렸지만 튕겨나가는 그의 신형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신형이 나간 다음에야 벽체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투둑---투두둑---

하지만 그를 공격했던 자는 더 이상 하강을 뒤 쫒지 않았다. 이미 어둠을 뚫고 까만 점으로 화해 사라져 가는 동추개(銅錘丐) 하강(厦康)을 쫒기 힘들었는지 아니면 본래부터 쫒을 생각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죽립을 깊게 눌러쓰고 흑의경장을 한 사내는 도망가는 하강을 바라 보다가 아직도 가늘게 숨을 쉬고 있는 득삼을 힐끗 바라보았다. 아마 그의 손가락 하나면 득삼은 죽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산신묘를 나섰다. 그의 뒤로 그와 모습이 비슷한 네명의 사내들이 어디선가 그림자처럼 나타나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
신검산장의 총관 조국명은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닷새째 아무 일도 없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의 도화선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다가 갑작스럽게 새벽에 찾아온 세 사람의 손님은 한명 한명이 아예 그의 혼을 빼놓고 머리를 찌근거리게 하였다. 더구나 마지막 인물을 보는 순간 그는 심장이 멎을 듯 했다. 하지만 일이란 우선 쉬운 쪽부터 처리해야 하는 것이 순서였다.

우선은 두칠(斗七)이었다. 이 자는 이곳에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자였다. 헌데 은연중 전 무림의 이목이 쏠려있는 이곳에 이렇듯 떳떳하게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이 자가 갑자기 미쳤거나 아니면 이제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기다려 온 일이었지만 또한 그의 생전에 움직이는 일이 없기를 바랐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신시켜 준 것은 젊은 청년이었다. 며칠 동안 아팠던지 얼굴은 핼쑥했고, 짧은 수염이 구레나룻을 덮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조국 명으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담천의라 하오. 천중지보(天中之寶) 무극지검(無極之劍)을 찾으러 왔소. 장주께 전해주시오.”

예상했던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너무 젊었다. 젊다는 것은 여러 가지 좋은 점이 있지만 대개 신중하지 못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이 된 일이고, 그 결정에 대해 자신이 할 일은 오직 받아들이는 일 뿐이었다.

“이곳의 총관 조국명이오.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그는 정중히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리고는 그는 시선을 돌려 마지막 손님인 황원외를 바라 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조국명의 얼굴에는 좀 전과는 달리 노기를 띠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애틋한 기색도 섞여 있었다. 이렇듯 상반된 표정이 하나의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확실히 기이한 일이었다.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가?”

노기를 최대한 억누르며 던진 말이었다. 황원외는 그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사실 그를 마주볼 염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제 저녁 그곳을 떠나올 때까지 잘 지내고 있었소.”

“그녀를 산중에 홀로 남겨 두었다는 말이냐?”

이미 소식은 듣고 있었다. 그가 이곳 진성현을 떠나지 않고 외곽의 깊은 산중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은 뜻밖이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멀리 강남이나 중원외곽으로라도 도망가 있기를 바랐다.

삼년 전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온 것을 보았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이미 끝난 일이라고 체념하고 있었지만 그 두 사람이 벌인 일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모른 채 했다. 그렇게라도 두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러기를 바랐다.

“아이와 함께 있소.”

그 말에 조국명은 지금까지 참았던 노기를 터트렸다.

“나쁜 놈! 어린 아이가 달린 네 여자를 그런 외진 산중에 내버려 두려고 그런 짓을 했단 말이냐? 평생을 지켜주지도 못할 것이면서 남의 여자를 데리고 야반도주했단 말이냐? 네 스스로의 처지를 모르고 일순간의 충동에 그런 짓을 저질렀더냐!”

조국명의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당장이라도 황원외의 턱을 가격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갑작스런 조국명의 태도에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담천의와 두칠은 애꿎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들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었다. 조국명과 황원외 두 사람만의 문제였다. 더구나 한 사람은 그 내용을 너무 몰랐고, 또 한 사람은 그 내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끼어들 수 없었다.

“일순간의 충동은 아니었소.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있다 해도 소제는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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