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기념관 박정희 현판은 역사의 수치"

[현장] 곽태영씨, 철거요구 1인시위... 안의사숭모회측 "안된다"

등록 2005.03.25 21:26수정 2005.03.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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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5일 곽태영 민족정기선양회 회장이 남산 '안중근기념관' 앞에서 박정희 친필 기념비 철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5일 곽태영 민족정기선양회 회장이 남산 '안중근기념관' 앞에서 박정희 친필 기념비 철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안중근 의사 모독하는 일본군 중위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가 쓴 글씨 현판을 즉시 철거하라. 왜군장교 박정희가 쓴 윤봉길 의사 사당 현판을 분쇄하여 민족정기 드높인 양수철 애국자를 즉각 석방하라. 우리 독립군 학살범이 쓴 전국의 현판을 완전 철거하는 것이 진정한 과거청산이다."

곽태영(70) 민족정기선양회 회장은 이러한 주장이 담긴 피켓을 들고 25일 오전 10시 무렵 서울 남산공원 '안중근기념관' 정문 앞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기념비 철거 1인시위를 벌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 곳을 관리하는 '안중근의사숭모회(이하 숭모회)' 관계자에게 둘러싸여 제지를 받았다.

"이곳은 애국지사의 전당이다. 대통령의 휘호를 철거하라고 소란을 피우는 것은 안 의사에 대한 모독이다. 이곳은 박 대통령의 도움으로 지어진 기념관이며, 휘호는 안 의사 100주년을 기념해 내려주신 것이다. 우리가 누구 덕에 살았는데 그러나. 그 분(박정희) 덕에 살았다."

숭모회 최명재 사무국장은 이렇게 목소리 높여 말하며 박 전 대통령 친필 기념비 철거주장에 적극 반대했다. 최 사무국장 등 숭모회 관계자 3명은 장철규 <한겨레> 사진기자에게 "왜 이런 것을 취재하냐"고 반발하는 등 험악한 욕설과 완력을 행사하며 취재를 방해하기도 했다.

최 사무국장은 "박 대통령께서는 남산 일대를 현충사와 동격으로 성역화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안 의사를 숭모한 분이시다, 이러한 대통령의 휘호를 철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일본군인을 지낸 것은 과거지사다, 군사쿠데타를 했든 어쨌든 대통령을 지낸 분을 모독하지 마라,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다"고 주장했다.

최 사무국장은 또한 "재정이 어려워 기념관을 준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박정희 대통령께 말씀드리자 정부 지원을 지시해 기념관을 준공하게 됐다"며 "대통령께서 안 의사를 위해 남산 주변을 성역화하라고 지시해 추진위까지 만들어졌는데 갑자기 서거하시면서 무산됐다, 살아 계셨다면 남산 성역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숭모회측 "박 대통령은 안 의사를 숭모한 분"


a 숭모회 관계자들이 곽태영 회장의 1인 시위를 방해하는 등 박정희 친필 기념비 철거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취재기자에게 욕설과 완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숭모회 관계자들이 곽태영 회장의 1인 시위를 방해하는 등 박정희 친필 기념비 철거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취재기자에게 욕설과 완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남산 성역화, 10.26으로 무산

박정희는 '안중근기념관'을 정부 지원으로 준공케 한 뒤 숭모회로 하여금 지난 79년 9월 안중근 의사 탄생 100돌을 기념해 안중근 기념관 정문 앞에 자신이 쓴 '민족정기(民族正氣)의 전당(殿堂)'이란 친필 기념비를 세우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 당시 숭모회 회장으로 있던 이은상과 박정희는 "안중근 의사의 위격(位格)을 이 충무공과 동격으로 높이는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위해 청와대 정무수석 고건, 문공부장관 김성진, 서울시장 정상천 등으로 '안중근 의사 성역화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와 숭모회는 성역화 장소를 두고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강남지역의 국유지 10만평에 건설하기로 한 반면, 숭모회는 남산공원 부지 1만평에 건설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입장 차이를 보이다가 10.26 사태로 인해 성역화 추진이 무산됐다.
곽태영 회장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 95주년을 하루 앞두고 벌인 언쟁에 대해 안타까움과 불쾌감을 함께 표시했다.

그는 숭모회 관계자들의 '박정희 숭모' 발언에 대해 "박정희가 써먹은 우민정책이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 있는지 보여주는 어이없는 결과"라며 "독립군을 때려잡던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가 쓴 친필 기념비가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 정문에 걸려 있다는 것은 역사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곽 회장은 또한 "박정희는 자신의 친일행적을 감추려고 정부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기념사업 등을 회유했다"며 "결국 박정희에게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나 안중근 의사를 진정으로 모신다면 박정희 현판을 고집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숭모회의 박정희 전 대통령 흠모는 단체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1963년 숭모회가 설립된 이래 역대 회장 가운데는 친일 경력자와 친독재 인사가 더러 포함돼 있어 민족단체들로부터 안중근 의사의 항일정신을 위배하고 있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 왔다.

역대 숭모회 회장은 윤치영(친일단체 '임전대책협의회' 회원, 이승만 비서실장, 5공 국정자문위원 역임), 이은상(5공 국정자문위원 역임), 백두진(일제하 '조선은행' 근무, 유신정우회 의장, 국회의장 역임), 최태섭(크리스천아카데미 이사장, YMCA 재정위원장 역임), 정원식(국무총리 역임), 노신영(안기부장, 국무총리, 민정당 고문 역임), 안응모(치안본부장, 내무부장관, 자유총연맹 총재 역임) 등이 며, 민정당 국회의원 출신인 황인성 전 국무총리가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숭모회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교육연구원 강당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95주기 추념식을 연다. 이날 행사에는 박유철 국가보훈처장과 안 의사 추모사업을 전개해 온 일본측 관계자 40여명도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기 위해 숭모회와는 별도로 결성된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는 25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95주년 추모행사 및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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