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춘래불사춘'...올해 "꽃이 좀 늦게 피죠"

출입기자 산행...1년 전 탄핵 8부능선 가파른 '등산'과 올해의 '정상 레이스'

등록 2005.03.27 16:04수정 2005.03.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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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중에 담소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중에 담소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김당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출입기자들과 모처럼 산행을 함께 했다. 지난해 4월 11일 탄핵기간에 출입기자단과 산행을 함께 한 이후 1년만이다. '봄날 일요일 산행'이 공통점이다.

산행 형식도 1년 전과 마찬가지로 '번개 산행'이었다. 다만 지난해는 일요일 당일 오전 6시30분경에 갑자기 출입기자들에게 '대통령이 오늘 아침(8시 30분)에 기자들과 산행이나 하자고 한다'고 전화로 '번개 산행'을 통보해왔다. 그래서 휴일을 맞이해 늦잠을 '예약'해 놓은 기자들은 부랴부랴 등산복을 차려입고 청와대로 향했다.

이번에는 '여유 있게' 하루 전날 오전에 전화로 '대통령과 청와대 풀기자단 춘계산행' 메시지를 전해왔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조기숙 홍보수석이 온 뒤로 작년처럼 대통령과 산에 한번 가자는 기자들의 요청도 있고 해서 봄맞이 산행이 이뤄진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1년 전보다 30분 가량 늘어난 산행시간과 노 대통령의 '여유'

이번 산행의 등산시간은 휴식시간을 포함해 2시간 30분 가량으로 1년 전보다 30분 가량 길었다. 코스를 전보다 조금 더 길게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만큼 여유 있는 산행이라는 얘기였다. 특히 이번 산행을 1년 전의 이른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산행'과 비교하면 의미하는 바가 작지 않다.

우선 지난해 산행날짜는 봄기운이 완연한 4월 11일이었다. 그에 비해 이번 산행은 아직 4월에 접어들기 전에 이뤄졌다. 그런데도 지난해가 올해보다 더 봄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국회의 탄핵으로 노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산행에서 노 대통령은 '관저생활이 어떻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관저) 바깥이 침침하면 느낌이 덜 할텐데 봄이 오고 꽃이 활짝 피니까 (자연과 내 처지가) 대비가 됩니다"라면서 "한 비서진이 그것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하더라"고 남의 입을 빌려 자신의 처지를 에둘러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또 당시 나흘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겨냥한 듯 "저는 정치적 심판과 법적인 심판 등 두개의 심판을 거쳐야 비로소 봄을 맞이하게 되는 만큼 재판을 앞둔 '피고인' 심정"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자연이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따라서 자연과 마찬가지로 역사에도 섭리가 있어서 몇 사람이 애를 쓰고 바둥댄다고 역사의 흐름이 금방금방 바뀌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담고 아웅다웅하는 것들이 다 부질없는 것 같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작게만 느껴진다."


그에 비해 이번 산행은 작년보다 훨씬 더 분위기가 따스했다. 대통령의 복장부터가 달랐다. 지난해는 소박한 하늘색 재킷을 입고 온 노 대통령은 이번에는 세련된 파란색 재킷에 고급형의 멋진 등산모와 '고글'을 쓰고 나타났다.

재킷과 스틱은 각각 등산 전문용품인 '영원'과 '에코로바' 브랜드였다. 기자들이 모자와 고글이 좋아 보인다고 하자 "우리딸이 사준 것"이라며 흡족해 했다. 고글은 얼핏 보건대 미국의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 즐겨쓰는 명품인 '오클리'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기자들이 허덕거린다"에 노 대통령 "엔진이 좋을수록 소리가 요란한 겁니다"

노 대통령이 나타나자 먼저 와 있던 기자들이 카메라 세례를 퍼붓자 웃으면서 "정치하는 사람은 다른 것 같다"면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보고 인사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오늘은 손님(기자)이 많네"라면서 "옛날엔 여기가 다 사람이 다니던 길이다. 하나 둘이 아니고 오솔길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고 대화를 이끌었다. 홍보수석실에 따르면 기자 60여명이 참가해 작년보다 10명 정도 많을 뿐인데 단박에 알아본 것이다.

노 대통령은 "1·21사태 이후 봉쇄된 이래 지금까지 개방이 안되고 있다"면서 "이걸 서울시민들이 봐야 하는데 못보고 사는 게 참 답답하다. 오늘 손님들이 많이 오신 것도 막힌 길이니 가보자는 호기심이 많이 작용한 것 아니냐"고 해석했다.

노 대통령은 산행중에 조기숙 홍보수석이 "기자들이 더 허덕거리는 것 같다"고 하자 "엔진이 좋을수록 소리가 요란한 겁니다"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올 들어 3차례 산행"이라며 "3월 들어 두 번 왔었다"고 산행 근황을 소개했다. 누군가 "권양숙 여사는 왜 안나오셨냐"고 묻자 "그냥 안오겠다고 해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노 대통령과 권 여사는 청와대 경내를 함께 산책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탄핵심판 기간 노 대통령은 매일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가량 권 여사와 함께 경내 산책을 했다. 또 주말 오전에는 어김없이 북악산에 올랐다. 산행에는 주로 권 여사가 동행을 했고, 가끔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등 가족이 함께 했다.

그래서 탄핵심판으로 노 대통령이 권 여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져 오히려 금슬이 더 좋아진 것 아니냐는 농담도 나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직무정지 기간을 내내 지켜본 청와대 참모들은 직무정지 초중반기를 '춘래불사춘'으로 요약했다.

'등산'이건 '정상 레이스'건 '하산'이건 '산길'은 다 힘들다?

지난해 4월 11일 출입기자들과 산행중인 노무현 대통령.
지난해 4월 11일 출입기자들과 산행중인 노무현 대통령.청와대

돌이켜보면 노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국회의 탄핵으로 권한정지 한 달을 맞은 4월 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나선 북악산 산행은 '기획산행'이었다. 총선 D-4일째 대국민 메시지를 건네기 위해 당시 이병완 홍보수석이 마련한 '고도의 퍼포먼스'이자 사실상의 '사전 선거운동'이었다.

노 대통령은 당시 4·15 총선이 끝나면 한국 정치의 고질인 부패·지역정치가 해소되고 과거의 사생결단식 대결정치보다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국민들의 뜻과 정서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합의 정치가 시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산행에서도 노 대통령은 상생(相生)을 얘기했다. 노 대통령은 "상생 얘기를 하는데 그 상생의 기반이 아직 우리들 마음속에 제대로 잘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아울러 노 대통령은 "우리가 살아온 세기가, 20세기 초에는 세계적으로 극단의 세기를 가장 극단적으로 체험한 것이 우리나라이고, 20세기 후반에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치랄까 사고방식들이 극단적으로 충돌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면서 "이 구조가 제일 어려운 것이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개별적으로 부닥치는 난관들은 충분히 극복할만한 역량을 우리 국민과 국가가 축적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서로를 아직까지 인정하기 어려운, 상생의 사고를 갖기 어려운 심리상태다"고 덧붙였다.

북악산 정상(342m)애서 한 기자가 "작년에는 '춘래불사춘'이라고 말했는데, 올해는 어떠냐"라고 묻자 노 대통령은 "올해는 꽃이 좀 늦게 피죠. 은유적으로 표현할 사건이 없지요"라고 피해갔다.

노 대통령은 "정상에 오르기가 힘든데, 정상(대통령직)의 2년과 향후 3년에 대한 소감은 어떠냐"고 묻자 "준비 안 한 아이템이다"고 전제하고 "여전히 힘들죠"라면서 "자꾸 새로운 일이 또 생기고. 힘들지 않은 게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1년 전의 가파른 탄핵의 8부 능선을 넘었던 '등산'이건 지금의 '정상 레이스'건 아니면 그 뒤의 '하산'이건 '산길'은 다 어렵고 힘들다는 얘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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